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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스타 KM Jan 19. 2024

코골이 쓰리 콤보

잠버릇

비행기를 타는 건 설레는 일이다. 어릴 적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나는 신혼여행지를 가며 첫 비행을 경험하였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업그레이드되어서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홍콩으로 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싱가포르에 거주하면서 비행기를 타는 것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서 달리면 구름보다 더 높이 가지요

달보다 더 높이 갑니까 그럼요

별보다 더 높이 갑니까 그럼요


틀린 가사를 내 멋대로 부르며 동요가 절로 머릿속을 맴돌다. 즐거운 마음에 콧노래도 나온다.

이번에 한국은 8개월 만에 들어간다. 늘 그리워하는 곳이어도 서울에 도착하면 식구들, 친가 방문 게다가 병원, 은행 등 볼 일이 많아 정작 보고 싶은 친구들과 지인들은 시간을 짬짬이 내서 만난다.

아들 쏭이와 함께 캐리어를 택시에 싣고 창이공항으로 향하면 그때서야 한국 가는 것이 더 실감 난다.

택시가 터미널 입구에 부드럽게 정차를 하면 캐리어를 꺼내 자동문을 지나 출국수속을 밟는다.

유후~ 공항 스멜~

공항의 높은 천장 아래로 느껴지는 공기와 향은 특별하다. 몇 년 사이 공항에 무인 출국 수속을 할 수 있게 몇 십 대의 기계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면 변화하는 시간들이 느껴지기도 하고, 새로운 시스템에 버벅거리는 나를 보면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보다 느리게 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마치 변화와 내가 화살 양끝에 서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행기에 올랐다. 제발 이번엔 조용한 비행시간이 되길.

그 기대는 늘 기대일 뿐이던가!

사람들이 한 두 명씩 착석을 하기 시작하면 얼마가지 않아 쉽지 않은 비행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비행기 타기 전부터 우는 아기 소리가 들린다. 뜨악!!! 그러나 어쩌랴(아기라고 울고 싶어 울겠니) 그 아기가 내 뒷자리에 앉아 의자를 발로 차며 울기 시작한다.

내 앞의 여자는 옆 사람과 중국말을 하며 의자를 뒤로 확 젖혔다.

앞 뒤 쌍방공격이다.

그 순간 난 비행시간 편하게 가는 걸 포기한다.

‘6시간 동안 울지는 않겠지. 6시간 의자를 뒤로 젖히진 않겠지.’

마음을 내려놓았어도 몇 시간은 건질 수 있을까 미련이 남는다.

다행히 식사가 나오고 스튜어디스가 앞사람에게 의자를 세우라고 얘기하고 식사를 나눠준다.

국적기에서 나눠주는 비빔밥.

그 맛~ 먹어 본 사람은 안다. 이 나라 비행기 저 나라 비행기 뭐니 뭐니 해도 기내식은 한식이 좋다.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다 먹은 쏭이는 나의 것을 더 먹는다. 친절하게도 스튜어디스가 밥을 더 준다. 그 어느 식당보다 종업원도 친절하고 밥도 맛있는 비빔밥 맛집이다.

식사를 다 마치고 불이 꺼진다. 어느 결에 무거운 눈꺼풀에 눈을 감으며 꾸벅꾸벅 졸다. 네다섯 번 눈을 떴다 감았다 하지만 감는 시간이 더 길어지며 스르륵 잠이 든다.

그런데 채 10분도 되기 전에 거하게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

불 꺼져 조용해서 더 잘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코 고는 소리가 커질수록 비행기 안은 더 조용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생각이던가.

드르렁드르렁 푸~~를 반복하며 사운드는 점점 커져간다.

그때 아기도 잠시 멈췄던 울음을 다시 시작하며 잠투정을 하기 시작한다. 누가 더 오래갈까. 막상막하다.

마치 게임을 하는데 누구의 승일지 내 귀는 두 사람을 심판하고 있다. 둘 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코골이의 승.

아기는 엄마가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기내 복도로 안고 나가기도 하면서 울음을 달래 보려고 애쓴 덕에 울음을 그치는 시간이 있었는데 코골이는 4시간이 지나도록 같은 데시벨로 귀를 공격하며 계속 점수를 획득했다.

‘이 시끄러운 상황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

나는 화장실 갈 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귀에 개인 이어폰을 낀 사람들이 많았는데 노이즈 캔슬링인가 보다.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나 싶었다.




공항에 도착해  출퇴근 시간이라 공항철도로 이동을 했다. 공항철도도 좌석이 지정되어 있었다. 마중 나온 남편과 나란히 앉아 기내에서 틀어주는 뉴스도 보고 창밖도 보면서 한국을 느끼고 있을 즈음 대각선 앞자리 코 고는 소리 무지하게 크게 들려온다.

또 코골이와 한 공간에 있다. 하루에 두 번 다른 사람의 코 고는 소리를 경험하다니~ 이럴 수 있나 싶었다.

이동시간 1시간 남짓 그 소리를 들으며 가야 했다.

드르렁드르렁 푸우~ 드르렁드르렁 푸우

강약을 섞어가며 리듬을 잘 타는 것이 초보가 아닌 베테랑이었다.

철도의 소음보다 반복되는 코 고는 소리에 모두의 귀를 기울이게 하는 그는 대체 누구인가 궁금했다.

대단하다고 느낄 무렵 코 고는 소리가 잠시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다가 끊어졌다.

모두가 조용해지는 순간이었다.

3초 정도 후

푸~~~

아주 길게 날 숨을 쉬며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서울역에 도착해서 짐 챙겨 내리려고 하는데 의자 위로 빼꼼히 코골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드러나는 그 모습을 본  순간 ‘아~ 그랬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 체구도 작은 할머니였다. 게다가 보청기를 끼고 계신 할머니였다.

한 순간에 그러려니 이해되는 이 감정은 뭐지.




그리고 며칠 후 부산을 가기 위해  KTX에 올랐다. 기차는 그것의 설렘이 있고 낭만이 있어 마음을 들뜨게 한다.

KTX 얼마 만에 타보는 열차이던가.

특실은 좌석도 넓고 쾌적했다. 겉옷은 벗어서 창문 옆에 걸고 짐은 머리 위로 올리고, 서울역서 사 온 빵은 의자 앞 테이블에 올려놓고 앉았다.

그렇게 10분이 지난 후 고추장 볶음 냄새로 코를 찌르는 이 분은 누구시던가?

이 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코골이로 2호차 안의 사람들을 웃게 해 준 주인공이다. 

코를 고는 것이 상상이 되는 전형적인 외모이다. 덩치 좋다.

이미 음식을 먹을 때부터 알아봤다. 쩝쩝거리는 소리는 코골이 드라마의 복선과도 같았다. 음식을 어찌나 맛깔나게 먹던지 이곳이 기차 안인지 식당 안인지 싶을 정도였다. 이쯤 되면 트림도 하겠지 싶었는데 예상 적중! 시원하게 두 번 하더니 식곤증인지 잠을 자기 시작했다. 베개에 머리 대면 자는 사람의 타입인가 보다. 등받이에 머리를 붙이자마자 자는 사람처럼 트림한 지 몇 분 안 돼서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가 역대급으로 다채로웠다.

드르렁으로 시작해 캭 거리기도 하고, 끊어 곯기 그러다가 심지어 골룸의 소리까지.

그 순간 그 열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엄마, 공룡 소리가 나." 쏭이가 한 말에 나 또한 웃었다.

사람들의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릴 때 나도 웃었다. 짜증이 날 상황인데 너무 심하면 웃음이 나오는 경우 딱 그런 경우였다.

흔치 않은 경험을 한국에서 이동 중에 경험했다.

이번 한국 여행의 추억에 이 세 분을 콤보로 묶어두었다.

쓰리 콤보!!!

다음번엔 이갈이 쓰리 콤보를 경험하게 되려나 생각하며 웃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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