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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스타 KM Apr 06. 2024

호구는 호구가 위로한다

똑순이와 호구의 중간 어디쯤

내 주위에는 세 명 이상만 모이면 그중엔 꼭 똑순이가 있다.

알뜰함은 기본이 사리에 밝고 손해를 보며 살지 않을 것 같은 친구가 꼭 있다. 그들이 보기엔 좀 손해 보며 사는듯한 사람들은 답답해 보이나 보다.

“언니, 호구잖아. 하하하. 언니 지난번에도 돈 더 내고 오지 않았어?”


ㅅ은 워낙 말을 시원시원하게 하는 성격이다. 낯을 가리긴 하지만 일단 친해지면 정도 많다. 우리는 10년이 넘은 사이로 단어 따위에 연연하는 것을 뛰어넘은 사이 됐다. 나는 '호구'라는 단어가 주는 껄끄러 마음이 비집고 들어오기 전에 우리 관계의 끈끈함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 마음의 꺼림칙함을 원천봉쇄해버리려 했다. 그러나 일부 소심한 내 탓에 그 말이 며칠 동안 생각이 났다. 나 또한 가끔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어서인가 보다. 

호구란 무엇인가
호구란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다음 국어사전)

그러나
나는...
나는 어수룩하게 그리고 또 이용하기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으나 가끔 호구 짓을 한다


일단 ㅅ이 나를 호구를 본 시발점은 아파트를 매도했을 그 시점.

우리 옆 아파트에 살던 ㅅ은 전세로 살고 있던 아파트를 부동산 가격이 오를 시점에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이 아파트가 오래됐으니 자기한테 팔라고 해서 좋은 가격에 사서 생활하다가 몇 억이 오른 시점에 팔고 단독주택을 매입해서 월세를 받으며 살고 있다.

반면, 나는 아파트 가격이 올랐을 때 대출 안고 아파트를 사서 부동산이 제일 얼어붙어서 가격이 많이 떨어졌을 때 손해 보고 팔고 나왔다.

1년 지나 한국 들어가 ㅅ을 만났을 때 그녀가 나에게

“언니, 지금 아파트값 오르고 있어. 언니, 좀 가지고 있다 팔지 왜 그랬어…”

(뭘 왜 그래. 난들 알고 그랬겠니 ㅠㅠ)


몇 년이 지나 ㅅ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험 얘기가 나왔는데

“언니, 보험은 뭐 있어?”

“내 거랑 남편 거 그리고 애들 거 있는데 보장액이 얼마 안 되는 것 같던데. 조금 내니 그러나 봐.”

“언니, 보험은 예전에 들었던 게 좋은 게 많아. 이젠 만기환급형 같은 거 없어. 그리고 보험은 이렇게 드는 게 좋아. 그리고 들어놓은 보험은 잘 알아뒀다가 해당되는 게 있으면 청구해서 돈 받아야 해. 언니, 지난번 그거 돈 받았어? 

보험 설계사처럼 보험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난 들었지만 결론은 모  다.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못 할 것 같은 느낌. 내 영역 밖인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보험과 관련해서 세금을 절세하는 방법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더니 보험으로 세금을 절세하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이어갔다. 내 멍한 표정을 그녀가 읽었을까 그때쯤

“언니가 한국에 있으면 내가 싹 다 알려줄 텐데. 내일 다시 싱가포르에 들어가니 아쉽다. 하하하”



며칠 후 나는 집에 와서 액셀로 자산현황 표를 만들었다. 보험이며 세금이며 내가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금액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될 것 같아서 표에 내역을 기재하기 시작했다. 적다 보니 빈칸이 많이 생겼다. 내가 정확히 모르는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한국에 살 때는 내가 다 도맡아 하다가 싱가포르로 오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이 하게 되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매번 묻고 기록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빈 공간이 생기는 거다. 액셀의 공간을 채워나가고 있을 무렵 호주 사는 친구의 전화가 왔다.

20년의 우정을 훌쩍 넘어선 나의 베스트 프랜드


문득 과거 찐 호구짓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일명 금사건 ㅋㅋ

대학생 때 청량리역 광장에 천막 같은 것을 친 곳 바닥에는 금색의 목걸이 반지 같은 것이 세탁기 앞 빨랫감만큼 쌓여 있었다.

“저거 뭐야?”

“진짜 금은 아니겠지.”

“아저씨 이거 진짜는 아니죠?”

우리는 이거 저거 만지면서 아저씨께 물었다.

“이건 18k만큼 질이 좋은 거야.”

우리는 서로를 권해주었다.

“싸니 골라봐. 근데 이거 18K니? 뭐라고 적혀있는데. 우리 목걸이도 사고 우정 반지도 할래?”

 우리는 여러 개를 사서 각자의 집으로 갔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보여줬더니

“아니, 이런 걸 뭐 하러 샀어. 며칠 지나면 반지 낀 손가락에 반지 자국이 회색빛으로 묻어날 텐데.”

“아냐. 엄마, 이거 18kpg 인가 뭐라고 적혀있어. 금이 조금은 있는 거 아닐까 ”

“그래서 그게 금이 아니라는 거야”

나는 그때 알았다. 14K. 18K. 24K로 끝나야 진품. kpg 어쩌고 저쩌고는 아니라는 것을 ㅜㅜ

호구 둘이 다니면 이런 일이 생긴다.




그녀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호주로 이민을 가서 지금껏 그곳에서 살만한 터전을 이루기까지 강한 정신력을 지닌 친구다.

그러나

정신력이 강한 호구도 있다. 그녀다.

여러 번의 돈을 주변에 빌려주고 못 받은ㅜㅜ  음… 정신력과 생활력은 강한데 호구짓을 간혹 하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돈도 빌려주고 못 받는 것이 여러 번인 크고 작은 일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녀만큼은 아니기에 나는 그녀와 통화를 이어가다가

“네가 그렇게 힘들게 번 돈 잘 지켜. 괜히 허튼데 소비하지 말고. 못 받을 돈은 빌려주지도 말고. 나처럼 호구라는 소리 들을라. 하하하”

“그럼, 이젠 안 그러지. 괜찮아. 좀 여유가 생겼어. 남편도 정신 차렸고… 그리고 네가 무슨 호구니. 그 정도는 다 경험하면서 사는 거 아냐? 물건 좀 비싸게 사면 어떻고, 세금 좀 더 내고 살면 어때. 그게 뭐 문제니. 너 호구 아니고 똑순이. 하하하

“야, 호구들끼리 이런 얘기하니까 아주 웃긴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와의 전화는 웃음 반으로 끝이 다.


살다 보니 똑똑인 줄 알았는데 헛똑똑이가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고, 호구인 줄 알았는데 인생의 홈런을 쳐서 히어로가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 것 아닌가 하며 

이런 생각을 내 마음에 얘기며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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