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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14. 2020

캐틀린스 포레스트 파크

* Day 19 / 20201012 월요일

@Catlins Forest Park / Ocean View Recreational Reserve Brighton(Dunedin)


어제 내린 비로 흠뻑 젖어 있는 차 안에서 둘 다 악몽을 꾼 우리는 찜찜한 기분으로 새 날을 맞았다. 오늘은 더니든으로 간다. 더니든이 최종 목적지이긴 하지만 가는 길에 있는 큰 삼림 지역인 캐틀린스의 여러 포인트들을 들러가며 천천히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할아버지 부고 소식으로 마음 한편은 슬프고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함에 한 없이 아쉽고 안타깝지만,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와 환경 속에서 계속 그 감정을 가지고 살 수는 없었다. 아파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조금 이기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캐틀린스는 키위(뉴질랜드 로컬)들이 관광객들을 피해 휴가를 보낼 만큼 숨겨진 로컬 명소라고 선배의 남편이 강력 추천해 준 곳이었다. 남편은 캠프장 터가 안 좋은 것 같다는 핑계로 일찍 하루 일정을 시작하고 싶어 했다. 남편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 나는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하면서 아직도 생생한 악몽에서 깨고 싶어 제안을 따랐다. 아침도 거르고 도망치듯 캠핑장을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하루 묵은 캠핑장은 지형적으로 남섬에서도 남쪽 끝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의미는 있지만 우리에게 좋은 잠자리를 선물해 주진 않았던 남쪽의 캠핑장이다.

캠핑장 도착했을 때 맞춰 햇살이 비춰서 찍은 사진


먼저 Curio Bay Cliffs에 도착한 우리. 경치는 정말 멋있었지만 일단 배가 고프고 허기가 지니 안 그래도 추운 바람이 더 차게 느껴졌다. 결국 식빵에 잼을 발라 커피와 함께 차 안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남편은 바다표범을 보고 싶어 했지만 바다표범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날씨라도 맑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흐린 날씨에 찬 바람이 시려 경치고 뭐고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 했던 Curio Bay Cliffs


차를 타고 가다가 만난 작은 표지판. Koropuku Falls였다. 차를 세우고 바로 옆에 폭포가 있는 게 아니라 왕복 40분 정도 숲길을 걸어야 한단다. 날이 흐려서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오늘 일찍 캠핑장을 떠난 결정 이후로 잘한 선택이었다. 쉽게 경험하기 힘든 습기 가득 찬 정글 같은 트랙을 걸으니 기분이 맑아졌다. 코로 들이마시는 공기도 너무 상쾌해서 몸속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트랙의 주인공인 폭포보다 가고 오는 길이 더 인상 깊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Maclean Falls. 구글 지도에서 볼 때 맥린 폭포는 코로푸쿠 폭포보다 훨씬 커 보였다. 이 곳도 역시 가는 길을 잘 만들어 놓아서 걷는 재미가 있었다. 캐틀린스 지역이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오늘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 분들이었다. 차를 타고 가며 보이는 표지판들이 여럿 보여 멈춰서 들르고 싶은 마음과 달리 간밤의 나쁜 꿈 때문인지 몸이 따라주지 않았던 우리(보다는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쭉 이동했다. 남편이 꼭 보고 싶던 Jack's Blowhole로 가는 길은 다리가 끊어져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해서 아쉽지만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살짝 우울해했던 우리 남편.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던 코로푸쿠 폭포 트랙

제주도 월정리 해변과 흡사했던 KaKa Point. 이 곳이 어떤 의미로 Point 인지도 모르는 우리는 제주도 바다를 잠시 추억하며 근처 Nugget Point light house로 이동했다. 날이 흐려서 등대가 빛을 발하진 않았지만 등대 근처에 있는 초콜릿 부스러기 같은 작은 섬들이 신기해서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눌러보았다. 그래도 꽤 멋있는 풍경이어서 가길 잘했다 싶었다.

Nugget Light house


지금은 더니든에 한 해변가에 있는 캠핑장이다. 저녁밥을 뚝딱 해 먹고 해변가에서 산책을 하다가 바위틈에서 홍합을 발견한 우리는 몇 개 캐서 야식으로 홍합탕을 끓여 먹었다. 국물 맛이 정말 끝내준다. 내일 아침에는 이 국물로 라면을 끓여 먹을 생각에 신이 난 우리. 오늘은 지갑을 한 번도 열지 않아서 괜히 뿌듯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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