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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21. 2020

다시 넬슨.  

* Day 22 / 20201015 목요일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 오늘은 우리의 뉴질랜드 홈그라운드 넬슨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크라이스트처치 근처에 있는 캠핑장에서 넬슨까지 여섯 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다. 오빠도 나도 엉덩이가 터질 것 같고, 근육들이 쑤셔서 힘들었지만 넬슨으로 간다는 사실에 내심 둘 다 설레고 편안했던 것 같다. 여행 내내 함께 한 긴장감이 슬슬 풀리면서도 지금 가는 곳이 집이 아니라 곧 떠나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니 풀이 죽었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우리의 진짜 집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어디에 머물든 그곳이 우리의 영원한 소유와 종착지가 될 수 없다는 데까지 다다르면 늘 그렇듯이 나그네처럼 여행하듯 살아야지, 욕심이 적어진다. 그 순간만큼은.

땅을 디디고 섰지만 하늘을 바라보며 살자.


사실 나는 살짝 지친 것도 같다. 추운 날씨에 계속 캠핑장을 옮겨 다니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줄곧 이동하는 게 나에겐 꽤나 스트레스였다. 물론 이것은 둘만의 여행을 위한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틀 안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주변 상황이 바뀌는 캠퍼밴 생활은 내가 가지고 있는 딱딱한 그 어떤 틀을 매일 깨야한다. 특히 '결벽증' 별명을 갖고 있는 엄마 밑에서 자라 엄청 깔끔을 떠는 나에게 공중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이 닦는 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지금도 물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 많이 내려놓은 나를 보니 이제 캠퍼밴 여행이 제법 익숙해진 것도 같다.



오늘 오빠는 615km를 운전했다. 중간에 오빠가 가고 싶어 했던 캐슬힐에 들르고 형님이 추천했던 카이코우라에서 간단하게 저녁도 먹어서 저녁 9시가 넘어 넬슨에 도착했다. 캐슬힐은 오빠가 꽤 고민하다가 결정하고 간 곳이었는데, 전 날 눈이 내려서인지 경치가 숨 막히게 멋있었고 길을 조금 돌아왔지만 너무 잘 선택했다고 오빠에게 말해주었다. 카이코우라에서 들른 바비큐 키오스크는 여행객들의 높은 평가에 비해 너무도 쌀쌀맞은 주인아주머니의 낮은 서비스로 실망스러웠다. 생각보다 바닷가재 가격도 비싸서 다른 저렴한 식사로 그냥 저녁 한 끼 '때웠다'.

쌀쌀했던 주인아주머니처럼 따듯하지 않았던 식사



넬슨 표지판을 보자마자 온 문자. "Hi, When will you get into Nelson?" 우리의 친구, Jonathan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 갈 때도 어떻게 알고 연락이 먼저 와서 만났었는데, 이번에도 그는 이미 넬슨에 있었다. 마치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늦은 시간이었지만 "It's now or never."(지금 아니면 이제 못 만나!)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말에 정말 마지막인 것처럼 느껴져서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만났다. 서로의 상황을 위해 기도해주며 축복해 주었던 우리의 마지막 만남, 왠지 모르지만 우리 또 만날 것 같다. Someday!

언제나 고맙고 반가운 친구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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