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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Nov 08. 2020

11개월 만에 발 디딘 수도, 웰링턴

* Day 26-27 / 20201019-20

@Wellington (Apollo Lodge Motel)


드디어, 드디어... 뉴질랜드의 수도다. 이 곳에 사는 11개월 동안 제일가고 싶었던 곳, 테파파 박물관이 있는 웰링턴에 왔다. 그런데... 생리가 터져 버렸다. 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보통의 월경기와 다르게, 예정보다 일찍 시작한 이번 월경기는 몸과 마음에 묵직한 신호를 보낸다. 점점 바닥이 보이는 여행 경비가 한몫 보탰는지도 모르겠다. 페리를 타고 오며 형님과 아주버님이 생일선물로 보내준 숙박 바우처를 써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사실 캠핑카 족인 우리에게 홀리데이파크 이상은 사치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오늘만큼은 깨끗하고 편안한 곳에서 자고 싶었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웰링턴에서는 말이다.

북섬으로 갑니다!


감사하게도 형님이 예약해 준 모텔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에서도 추천할 만큼 오랜 역사가 있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호평이 나있는 곳이었다. 뉴질랜드 시민권자인 형님 말로는 뉴질랜드의 모텔은 한국의 그것과는 다르게 개인, 가족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싱크대 없는 것 빼고는 완벽했던 곳이었다. 몸은 무거웠지만 모텔에 짐을 풀고 바로 테파파 뮤지엄으로 향했다.

우리가 묵은 모텔, Apollo Lodge Motel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박물관이자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 뉴질랜드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전쟁, 환경 등 여러 테마로 구성되어 있었다. 직접 눌러보고 작동해 보면서 참여하게 하는 느낌의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미술관, 식물관을 좋아하는 아내와 다니면서 점점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남편은 이곳이 지금까지 경험한 박물관 중에 제일 재밌었던 박물관이라고 한다. 더니든의 오타고 박물관도 좋았지만 단연 테파파였다!


뉴질랜드의 역사를 보면서 '조금 더 일찍 박물관에 왔으면 나의 1년이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 나라의 역사를 미리 알았으면 사는 동안 더 많은 게 보이고 경험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갈 때 되니깐 깨닫게 된다, 아쉽게. 앞으로 어느 곳에 잠시라도 머물게 되든 그 지역의 유래와 배경을 알려줄 수 있는 곳을 찾아가 봐야겠다. 한국에 가면 오빠가 관심 있어하는 '전쟁' 박물관도 오랜만에 가 봐야지.  




@Waverley (Aotea Rotary Community Park)


우리 남편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찍고 싶은 것도 많다! 나는 그런 남편이 참 아이 같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면서도 나와 참 다르구나 싶다. 남편은 Wellywood 간판이 있는 언덕에서 사진도 찍고 싶었고 웨카 우드에도 가고 싶어 했다. 그래 다 하지 뭐! 언제 여기 다시 올 지도 모르는데.


시내와 가까웠던 숙소에서 아침 10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우리의 캠퍼밴은 그대로 둔 채 웰링턴 시내 구경을 나섰다. 아침을 두둑이 먹고 온 터라 배는 고프지 않았다. 여행 경비가 줄어들수록 지혜가 생긴다. 어디를 나서기 전 밥을 든든히 먹고 나간다거나, 미리 점심 대용을 만들어서 돌아다닌다거나. 특히나 맛있는 음식 맛보기 힘든 뉴질랜드에서는 비싼 외식비를 최대한 아끼려고 한다. 돈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즐기면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다.


웰링턴에서 마시고 싶었던 커피를 마셨다. 세 가지 다른 스타일의 플랫화이트를 마셔봤는데 기본이 제일 맛있었다. 그냥 기본 플랫화이트 두 잔 마실 걸. 시내를 걷다가 문득 들어간 곳은 크라이스트처치의 리버사이드 마켓보다는 시장에 가까운 정감 있는 분위기의 푸드코트였다. 나는 핫팟 쌀국수, 오빠는 밥과 함께 세 가지 반찬을 선택해서 둘 다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공차 카페에서 후식으로 버블 밀크티를 마신 나. 왜 뉴질랜드에서 마시는 공차 버블티가 더 맛있는 것 같지?


뉴질랜드 수도에 가면 국회의사당 Beehive를 빼놓을 수 없지! 갔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다. 기자들이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제신다 아던님이? 우리도 기다려보자. 조금 지나고 나니 국회의사당에서 우르를 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누구지? 누구지? 호기심 폭발한 우리도 기자들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기자들 옆으로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두 명 보이고 나온 사람 중에 초록색 넥타이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한 걸 보니.. 이 분들은 뉴질랜드 정당 중 하나인 Green Party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녹색당인가? 아무튼 이 분들 나름 국회의원인데 옷차림이 편안해 보이고 무언가 소신 있는 인상들을 가지셔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상 깊었다. 그 와중에 옆에서 사진도 찍어달라고 하는 귀염둥이 내 신랑.  


The Weta Cave에 가면서 남편이 가고 싶었던 Wellywood 간판도 보았지만 사진은 찍지 못했다. 사진 찍기 애매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무리하는 거 싫어하는 아내의 눈치를 본 남편의 포기였다. 긴 여행을 하며 서로의 여행 방식을 파악하고 간혹 눈치도 보며 포기도 하고.. 그렇게 함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배우고 있는 우리다.   

https://www.traveller.com.au/welcome-to-wellywood-plan-to-erect-giant-sign-pv42 (Wellywood 간판 사진)


그나저나 이제 도시에 조금만 있어도 피로감이 몰려온다. 서울 가면 어떻게 살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벌써부터 걱정하면서 우리는 뉴플리머스(New Plymouth)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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