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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한송이 Jul 06. 2023

기꺼이 거리두기

18화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였다.

마을에 꼭 하나씩은 있던 주민센터 또는 행정복지관.

여긴 생각하던 집, 바쁘지 않고 심심한 삶, 감정에 따라 바뀌는 날씨로 나를 놀라게 하더니, 머물다 가는 이들을 위한 센터는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질 않았다.

관리자가 상주해야 관리가 될 텐데, 그래야 누가 어디에서 머무르는지 알 텐데, 없었다.


"건너 들은 얘기도 없어? 인상착의라든가."


정혜림은 고개를 저었다.


기대한 내가 바보지.


"었으면 내가 너한테 왔겠어?"


그랬다.

나는 김이한과는 쌍둥이처럼 친밀했으나, 그의 여자친구이자 내 과거의 친구였던 정혜림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나와는 완벽히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혜림은 공주였다. 아니, 더 가까운 건 여왕.

외모부터 부티가 났다.

타인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뛰어난 결단력, 꽂힌 건 무조건 하고 마는 것조차도 왕 스타일이었다.


나야 뭐, 평범 평범 평범이었고.


왕족답게(?) 약속시간에 늦어도 뛰지 않았고, 김이한이 항상 기다려야만 했다.

내가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게 바로 거기부터다.

약속은 신뢰를 쌓는 기본적인 상호작용인데, 여기서 어긋나니 당최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 네가 이렇게 숨이 차도록 달리다니,

뇌사 상태가 된 연인을 찾아 여기까지 오다니,

마음만큼은 진심이었구나.


"삼각관계 뭐 이런 거였어요?"


숨이 벅차 호흡을 고르기 위해 잠깐 걸음을 멈췄다.

옆집 청년이 물을 건네며 슬그머니 물었다.


오해할 만 하지만, 아니었다.

정혜림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겠지만, 우린 정말 친구였다.

서로를 응원하면서 기꺼이 멀어진 베스트 프렌드.

그래서 다시 달렸다.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멈춰 세우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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