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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한송이 Jun 11. 2024

적당한 생존기

어쩌다 보니 밴쿠버, D-133

아는 것은 힘이다.

모르는 것은 약이다.

그래서 뭐가 나한테 도움 되는 건지 모르겠다.


겸손은 미덕이다.

자기 PR 시대이다.

그래서 어떡하라는 건지 감을 못 잡겠다.


결국 가장 헷갈리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적당히".

적당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사건이 있었다.

수업 시간, 각자의 국가 혹은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소개하는 챕터가 있었다.

여기서 발견한 특징은, 한국인들은 한국을 소개할 때 자꾸만 유사한 영어 표현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

예를 들어 전을 한국식 피자라고 한다든지 떡을 팬케이크라고 한다. 

추석을 땡스기빙이라고 소개하는 경우도 봤다. 

왜? 우리나라 이름으로 설명하면 안 되나?


불고기나 비빔밥은 그저 불고기와 비빔밥일 뿐이다.

고유명사는 고유명사 그 자체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시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내 주장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설날을 Chinese New Year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는 말이다.


너무 나서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자연스레 상황에 녹아들도록 교육받은 한국인은 어디에서든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교실 내에서도 한국인은 행동, 성적, 수업 태도로도 다른 아시아인과 구별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조금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못 알아듣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꾸만 영어나 다른 나라 문화를 차용하지 말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내용을 덧붙이거나 상상할 수 있도록 말했으면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적당히는, 이 경우에, 딱 여기까지다.


한국에서의 적당한 내 행동은 무엇일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면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밴쿠버에 온 뒤, 그저 매 순간 감사하면서 살기로 한 다음부터, 조금씩 마음에 평온함이 생겼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러한 여유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늘 바빴고, 정신없었고, 무언가에 쫓기는 삶을 살았으니까.

위에선 우리가 당당해지길 바란다고 했지만,

직장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큰 편이 아니라 숨는 편이다.


한 달 이상 외국에서 지내면서 성격이 밝아진 게 느껴질 정도로 변화하는 중이지만,

돌아간 뒤의 나는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올 것만 같다.

나서면 나댄다고 평가하고, 묵묵히 할 일만 하면 사회성이 없다고 평가되는 한국에서 적당히란 어렵다.


그래도 적당히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많이 안다고 하더라도 모두 티 내지 않고,

겸손하더라도 필요할 때는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이곳에서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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