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62
다양한 국가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공부해 보는 것은 꽤 좋은 경험이라고 자신한다.
한국의 의무교육과정에서 손 뗀 지 약 10년이 되어가기 때문에 지금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모르나,
주입식이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붙는다고 알고 있다.
반면, 캐나다에서의 교육은 완벽히 반대편에 있다.
어학연수이기 때문에 온전한 정규 학업 과정은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이 요구된다.
수업은 전부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게 구성되어 있고,
토론에 참여하지 않으면 종합 평가 점수는
처참해진다.
선생님마다 비중을 다르게 두는 경향은 있으나,
영어 레벨이 높아질수록 학생의 기여도가 커진다.
나는 intermediate에서 시작해
advanced를 거쳐 IELTS 수업을 듣고 있는데,
시험을 대비하는 반임에도 불구하고
고급의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들을
수행해나가야 한다.
유일하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은 afternoon + class 시간인데,
이때조차도 상당히 추상적이고 심오한 주제에 대해 논의한다.
최근에 '삶'이라는 테마로 토론했던 날이 여전히 기억에 맴돈다.
한국 학교, 혹은 학원에서 과연 나의 삶, 목표, 미래에 대한 허황된 꿈을 논의한 적이 있던가.
계산기를 두드리면 몇 초 안에 끝날
수학 문제에 놀아나고,
기억해 봐야 사는 데 도움 안 되는 옛시조나
달달 외워가며 시험을 준비했던 때와는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이곳에서는 "뭐가 될래?"가 아니라,
"뭐 하고 싶어?"를 묻는다.
70살에 학사 학위를 취득한 할머니를
예시로 제시하며
언제든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마무리 멘트로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최고의 선생님이 있다.
캐나다 사람들이 왜 행복한 국민 2위에 올랐는지
감히 예상 가능하다.
이들은 서로를 단지 응원할 뿐,
꿈의 가치나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대만 학생이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고 말할 때도, 투표하겠다는 장난 섞인 응원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하기 싫은 일을 관두고, 진로를 변경하기 전에 한국을 도망치듯 빠져나왔으면서,
현실을 조금이라도 더 잊고자 하루에 만족하며 살았던 내가
귀국까지 대략 두 달을 남겨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번 질문은 조금 다르다.
뭐 하고 먹고살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대책 없다. 너 대체 뭐 되려고 이 모양이냐? 가 아니라,
난 뭘 잘할 수 있는지, 뭘 하면 즐거운지,
최종적으로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를 되새긴다.
너무 먼 미래가 아니어도 괜찮다.
한국에 돌아가면, 잊고 살았던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밥 한 번 더 먹기 위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기획 일을 다시 시작해 보겠다.
부끄럽다고만 생각했던 글쓰기도 매일 다듬어가며 조금씩 끄적여보겠다.
사랑하는 삶을 살고, 삶을 사랑했던, 참 열심히 살다 간 사람.
내 묘비에 새길 문구에 떳떳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