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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호 Oct 28. 2024

‘마크 트웨인 자서전’을 읽고

이 글은 작년에 썼습니다. 독서모임에서 발표하기 위해서 쓴 글이니 참고해주세요.



‘마크 트웨인 자서전’을 읽고


- 민경호


  독자들은 책을 통해 위대한 문인과 만난다. 작품을 통해서 그 책의 저자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저자의 삶을 속속들이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본인의 자서전을 썼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가 익히 아는 마크 트웨인은 본인의 자서전을 통해 독자들과 한결 친숙해지는 길을 택했다. 그는 장차 자서전이 몰고 올 파장을 미리 예상했다. 그래서 본인이 세상을 떠나고 100년이 지나기 전에는 절대로 자서전을 출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내가 마크 트웨인 자서전을 처음 읽은 것은 2008년이었다. 자서전 쓰기 전문 강사로 활동하던 나는 이 책에서 얻은 내용을 강의에 활용하고자 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책을 꺼내든 이유는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독후감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책의 ‘엮은이 서문’ 에도 나와 있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트웨인이 쓴 것은 아니다. 구술한 내용도 섞여 있기 때문에 ‘페인 판’과 ‘드보트 판’ 마크 트웨인 자서전에는 엮은이가 쓴 내용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방대한 자료 중에서 엮은이가 내용을 취사선택하기도 했다. 또한 일반적인 형태의 자서전과는 서술 방식이 좀 다르다는 측면도 있다. 사건을 시간 순으로 서술하지 않았고, 트웨인이 저술한 순서에 따라 배열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혹평하기도 한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고 무작위의 난잡한 내용이 담겨있다면서.


  하지만 ‘반 도렌’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마크 트웨인은 초일류의 작가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고 즉, 방대하고 풍요로운 웅변의 보고를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풍요로움은 최고 정점의 표현까지 도달한 수많은 문단과 페이지에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 예술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관심이 억눌려 있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더욱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있다.”


  이 자서전의 구성 방식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 독후감에서 줄거리에 집착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독자로서 인상 깊게 읽었던 내용에만 초점을 맞춰 조명해보기로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이 책엔 목차가 없으며, 각 에피소드를 구분 짓는 소제목 대신에 1~79번까지의 번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느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본문 첫 페이지에는 출생연월일이 나온다. 이는 매우 구태의연한 방식이지만, 자서전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도입부의 형태라 하겠다. 1835년 11월 30일 미주리 주 몬로 카운티의 플로리다에 있는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도입부에는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특히 12~13세 즈음에 삼촌의 농장에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던 이야기는 내가 자서전 쓰기 강의를 할 때 흔히 인용해서 설명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대목은 문장의 유려함이 대가의 품격을 대변해주고, 소년 마크 트웨인의 행복한 감상과 느낌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이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당시 사회의 모습까지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들이 나열된다. 특히, 당시에 노예를 사고 파는 행위는 정당한 거래였고 군주조차도 이에 동조했다고 하는 대목에선 격세지감마저 들게 한다.


  트웨인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명목으로 테네시의 광대한 땅 10만 에이커를 사들였지만 그로부터 40년이 지나는 동안 그 부동산은 전혀 경제적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끝난다.


  어머니는 너무나 몸이 허약해서 40세 때 이미 만성적인 병자였지만 88세를 무난히 사셨다. 마르고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마음은 누구 못지 않게 넉넉하고 인자한 분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마크 트웨인의 아내와 상당히 유사하다.


  마크 트웨인은 어린 시절에 실제로 아무도 못 말리는 악동이었다. 크고 작게 일어나는 모든 사고의 중심에 그가 있었고, 어머니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긴 것만 해도 일곱 차례에 이른다고 한다.


  어느 날 오후, 트웨인은 친구 ‘짐’의 침실 창문 위쪽에 말벌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불보를 뒤집어 쓴 채 말벌을 끌어모은다. ‘짐’이 침대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자 촛불을 끄고는 모아두었던 말벌이 짐에게 달려들게 했다. 결국 짐에게 얻어터졌지만 웃음보를 터뜨리고 만다.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탈진한 정도로,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맞으면서도 계속 웃었다고 한다.


  또, 내가 강의 소재로 자주 사용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트웨인이 열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장난을 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 당시에 홍역이 번져 수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윌 보웬’이라는 친구 역시 병을 앓고 있었다. 어떻게든 장난을 치고 싶었던 지라 그에게 가서 홍역을 옮아올 작정을 한다. 앞문을 통해 친구의 집에 들어가려던 시도가 실패한 뒤, 뒤뜰로 몰래 들어가 뒷길을 따라 방으로 들어간 후 윌 보웬의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홍역에 걸렸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이외에도 장난을 좋아했던 마크 트웨인의 일화가 계속 이어지는데 실제로 본인이 경험했던 이같은 일화를 그의 작품에도 다수 녹여냈다고 고백한다. ‘톰 소여의 모험’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9세 때의 기억은 소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소개된다. ‘메리 밀러’는 그의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다치게 한 여성이라고 말한다. 트웨인이 9세, 그녀가 18세였다. 하지만 그녀는 소년을 업신여겼고 소년은 세상이 정말 냉혹한 곳이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단다. 그리고선 이내 그녀보다 한 살 위인 ‘아티미시아’에게로 마음을 돌렸는데 그녀는 업신여기지도 놀리지도 않았다고 회고한다.


  마크 트웨인이 교육을 받았던 곳은 한니발에 있는 보통학교와, 그의 형 오라이언의 신문사였다. 1850년에는 신문사에서 <한니발 저널>지의 식자공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기사를 발표했다. 1853년 세인트루이스로 나가 <이브닝 뉴스>에서 일하고, 그 후 뉴욕, 필라델피아 등지를 떠돌며 견습기자로 일했다. 1857년에 미시시피강의 수로 안내원이 되고, 1861년에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귀향해서 남군의 비정규군에 잠시 입대하고, 형을 따라 네바다로 가서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은광을 찾아서 전국을 방황하며 다니기도 했고, 1862년에 네바다 주 버지니아 시의 <테리토리얼 엔터프라이즈>의 기자로 일했고, 1863년에는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최초로 사용했다. 그의 본명은 ‘사무엘 랭혼 클레멘스’인데, 미시시피강에서 측심수가 사용하는 구령이 ‘마크 트웨인’이다. 그 뜻은 ‘증기선의 안전 항행 수역으로 수심 두 길, 약 3.7 미터’다. 1864년에는 캘리포니아로 가서 샌프란시스코 <모닝 콜> 기자로 일했고, 1866년부터는 샌드위치 섬 (오늘날의 하와이) 취재 여행을 마친 뒤 강연자로 활동했다. 1870년에 올리비아 랭돈과 결혼했고, 1876년에 대표작 ‘톰 소여의 모험’을 발표했다.


 1894년에 출판사의 파산으로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고, 1895년부터는 엄청난 부채를 갚기 위해 부인과 딸 ‘클라라’를 데리고 세계 일주 강연 여행을 다녔다. 1896년에 큰딸 ‘수지’가 사망하고, 1900년에 미국으로 귀국하여 뉴욕에 거주했다. 1904년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부인이 사망하고, 1909년 막내딸 ‘진’이 사망했다. 그리고 위대한 작가는 1910년 4월 21일 뉴욕에서 별세했다. 75세로 생을 마감한 마크 트웨인은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미국의 셰익스피어’, ‘미국 문학의 링컨’으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작가다.


  책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가족들의 죽음은 커다란 안타까움으로 독자를 몸서리치게 만든다. 막내딸 진의 죽음에 대한 서술로 이야기는 끝난다.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글로 풀어내는 작가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기란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도 억장이 무너질 일인데 큰딸, 아내, 막내딸까지 잃은 사람의 마음을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수많은 에피소드로 소개되지만, 한 개인의 일생을 낱낱이 한 권의 책에 담아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가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생의 순간들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독자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다가온다. 때로는 영감과 상상력으로, 때로는 연민으로, 공감으로. 그리고 경외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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