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독서모임에서 발표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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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문구가 이 책을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이라는 부제는 <에이트>라는 책의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지성 작가의 2019년 신작 <에이트>는 인문학이 미래사회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제목이 말하고 있는 ‘에이트’는 ‘8’을 뜻하는 숫자다.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여덟 가지 방법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철저한 자료 준비와 검증을 거쳐,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인류의 급변하는 발전 상황을 소상히 파헤치고 우리로 하여금 미리 미리 대비하라고 경고하는 메시지가 책의 전반에 흐르고 있다.
인공지능의 실체를 잘 알고 있는가?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를 우리는 지금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그 시대는 먼 미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던지는 화두는 이러한 것들이다. 이것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이전의 그 어떤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것이어서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실리콘밸리, 월스트리트,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면서 미래의 권력을 선점하고자 노력한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벌이는 이벤트를 할 때까지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경악하며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의식이 달라진 건 없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앤디 모칸의 일화를 소개한다. 폭발 사고가 난 석유시추선 갑판 위에 있던 그는 아파트 17층 높이의 갑판 위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살았지만 다른 168명은 우왕좌왕하다 그만 희생되고 말았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인공지능 시대가 코 앞에 다다랐는데 세상이 바뀐 것도 모른 채 멍하니 있다가 안타까운 최후를 맞을 것인지, 아니면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바다로 뛰어들어 살아남을 것인지 결정하라고 한다.
Part2에서는 10년 뒤, 당신의 일자리는 없다 -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 VS 지시를 받는 사람) 라는 제목과 함께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대니얼 내들러’라는 청년이 <켄쇼 테크놀러지>라는 인공지능 기업을 창업했는데, 세계 최대 금융 투자 기업인 골드만삭스가 이 회사에 전폭적인 투자를 했고, 인공지능 ‘켄쇼’가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그 결과 600명의 트레이더 중 2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되었다. 이것이 비단 이 회사만의 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곧 닥쳐올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체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데 있다. 의사, 약사, 판검사,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교사, 공무원, 기업 임직원, 운전기사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으로 예견된다는 것이 정말 큰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이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은 빅E(big empathy bility), 미들E(middle empathy bility) 리틀E(little empathy bility)으로 설명하고, ‘창조적 상상력’은 빅C(big creative imagination), 미들C(middle creative imagination) 리틀C(little creative imagination)로 설명한다.
서울대 공과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2090년의 한국 사회는 인공지능 로봇이 대부분의 직업을 대체한 결과 한국인의 99.9997%가 프레카리아트가 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때문에 난민 수준의 사회적 · 경제적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끔찍한 미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저자는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을 여덟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디지털을 차단하라.
이것은 역설 중의 역설이다. 인공지능은 IT기술이 이루어놓은 최첨단 과학인데 이를 멀리하라는 것은 틀린 주장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유명 사립학교에는 IT기계가 한 대도 없고 컴퓨터가 발명되기 이전 형태의 교실을 운영한다. 입학처장인 베치 앤더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이들이 자기 내면의 힘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을 할 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놀고 대화하면서 타인들과 공감하고 조화를 이루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이다.
둘째, 나만의 평생유치원을 설립하라.
몬테소리 교육의 핵심 가치는 ‘자유’, ‘몰입’, ‘성취’인데 이것을 발 빠르게 수용해 기업문화로 정착시킨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당신은 이미 지혜로우니 알아서 하라!”를 표어로 내걸고 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을 거치게 되어 있는데 그때 가졌던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나이 들면서 잃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되살려 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
저자는 말한다.
“당신 안의 어린 아이를 다시 발견하라. 그 아이와 대화하라. 그 아이와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라. 때론 놀이터로 가라. 거기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라. 그러면서 배워라. 자유롭게 마음껏 노는 법을!”
셋째, 노잉을 버려라. 비잉하고 두잉하라
‘노잉’(knowing) 위주의 교육을 버리고 ‘비잉(being)’과 두잉(doing)’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비잉(being)’은 자기 인식을 통해 조직 구성원과 고객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가치와 신념 등을 만드는 것이고, ‘두잉(doing)’은 기존 기술에 혁신을 일으키거나 새로운 사업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지난 100년 동안 추구해왔던 ‘지식’(knowing)교육을 ‘공감능력’(being)과 ‘창조적 상상력’(doing)을 기르는 교육으로 바꾸었다.
넷째, 생각의 전환, ‘디자인 씽킹하라’
어린이 환자가 MRI기계에 들어가 검사를 받는다는 것은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MRI를 개발한 ‘더그 디츠’가 이 문제점을 발견하고서 해결하는 데는 스탠퍼드대 D스쿨로부터 받은 ‘디자인 씽킹’ 교육이 유효하게 작용했다. 교육을 받고 돌아온 그는 어린이들과 대화하고 놀면서 오랫동안 잊었던 ‘동심’을 다시 일깨웠다. 아이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키웠다. 그 결과 아이들이 MRI기계를 괴물이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기구로 인식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우주선이나 해적선을 연상시키는 사진과 조형물을 붙여 아이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몰아내고 놀이하듯 MRI기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스탠퍼드대 D스쿨의 디자인 씽킹은 5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계: 공감하기
2단계: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기
3단계: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 내기
4단계: 시제품 만들기
5단계: 시험하고 검증하기
다섯째,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일깨우는 무기, 철학하라.
‘피터 틸’이 창업한 빅데이터 분석 기업 <팰런티어>의 CEO는 창업 초기부터 ‘엘릭스 카프’가 맡고 있다. 그 이유를 피터 틸은 이렇게 말한다. “엘릭스 카프에게는 철학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엘릭스 카프는 탁월한 경영능력과 IT기술을 갖추고 있고, 인공지능에도 정통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인간 고유의 능력인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최고의 도구다. 그러므로 철학하는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일이 없다.
철학적 사고 능력은 ‘트리비움’(trivium)을 통해서 기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철학을 하는 세 가지 길, 즉 문법학, 논리학, 수사학을 의미한다. ‘문법학’은 철학서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 ‘논리학’은 철학서에서 터득한 철학자의 사고법을 도구 삼아 내 생각을 하는 것, ‘수사학’은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나누는 것, 즉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다. 하버드, MIT같은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이 셋 중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수사학’이고 그중 특히 ‘글쓰기’를 가장 중시한다고 한다.
여섯째, 바라보고 나누고, 융합하라.
예일대 의대에서는 미술 수업을 최고로 꼽는다. 의대생들은 교수와 함께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다른 학생들과 의견을 나눈다. 미국과 유럽의 사립학교들에서는 역사 교육을 할 때, 역사적 사건의 결말을 상상하게 하고 이를 글로 쓰고 발표한 다음, 진짜 역사의 결말을 비교해보게 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이 방식 또한 트리비움(trivium)을 활용한 교수법이다.
일곱째,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경험하라.
미네르바 스쿨은 하버드대 · 예일대 · 스탠퍼드대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으로 유명하다. 이 대학의 기숙사는 한국, 미국, 영국, 독일, 대만, 아르헨티나, 인도에 있어서 학생들은 4년동안 이 도시들에 거주하면서 현지문화와 산업을 배운다.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회들을 연결하는 능력을 배양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덟째, ‘나’에서 ‘너’로, ‘우리’를 보라
봉사를 통해 공감과 창의성을 배양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공감과 창의성을 가진 봉사를 인공지능은 따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부와 봉사는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므로 인공지능을 지배하며 살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상의 여덟 가지 방법을 통해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배당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류는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과 지시를 받는 사람으로 나뉜다고도 말한다. 참으로 서글프고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것이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라면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자 IT기술을 발달시켰으나 오히려 그 기술에 지배당할 수 있다는 역설이 참으로 무시무시하다.
스탠퍼드대 D스쿨에서 진행하고 있는 존 스타인벡의 <본노의 포도> 문학 수업에는 ‘트랙터 경작’사건을 다룬다. 소작농이 농사짓는 땅에 트랙터 한 대가 들어옴으로써 농사짓는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만들고 고향을 떠나게 한다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변화하는 세대에 적응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도태자로 남을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