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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호 Nov 08. 2024

이미예의「달러구트 꿈백화점」을 읽고

오래 전에 독서모임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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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지 소설답게 화려한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 표지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화같은 표지 그림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호기심은 구매로 이어진다.

  해리포터 류의 책이 아닐까 추측하면서도, 구매하기 전에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피지도 않았다. 그냥 호기심 가득한 채로 저자의 스토리텔링을 따라가고 싶었다.


  주인공 페니는 꿈백화점에 입사하고 싶어하는 취준생이다. 1차 서류심사에 통과한 그녀는 면접시험을 준비하면서 인터뷰 요령 책자로부터 관련 문제집까지 몽땅 있는대로 섭렵한다. 단골 카페 2층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는 페니 앞에 털복숭이 녹틸루카가 나타나 시험문제에 대해 아는 체를 하더니 책 한 권을 건네주고 사라진다.

  면접 날 페니는 달러구트 앞에서 합격에 도움이 안 되는 대답을 한다.

  “현실에서 겪지 못할 일들을 체험한다고 하더라도 꿈은 절대 현실이 될 수 없어요.”

  이대로 면접을 끝내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녹틸루카가 주고 간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대답한다. 대답을 들은 달러구트는 페니에게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말한다.


  출근 첫 날, 백화점에서 1층 매니저 ‘웨더’ 아주머니를 만나 설명을 듣는다. 2층부터 5층까지 돌아다니면서 각 층의 매니저를 만나본 후 몇 층에서 일하고 싶은지 알려달라고 한다. 1층에는 아주 고가의 인기상품, 한정판, 예약상품들을 취급하는데, 2층에서는 더 보편적인 꿈을 판매하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 코너로 소소한 여행이나 친구를 만나는 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 등이다. 2층 매니저는 ‘비고 마이어스’라는 남자인데 다가가기 어려운 깐깐한 인상을 가졌다. 3층에 올라가니 이곳은 좀 더 자유분방한 분위기다. 3층의 매니저 ‘모그베리’는 흥분하기를 잘하고 투덜거리는 성격의 여자인지라, 페니는 다시 4층으로 피신하듯 올라간다. 4층은 낮잠용 꿈을 판매하는 곳인데 얕은 잠을 많이 자는 동물들이나 온종일 잠만 자는 아기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4층의 매니저 ‘스피도’는 모든 것이 빨랐다. 말도 빠르고 동작도 일처리도 빨랐다. 이윽고 5층으로 올라가서는 페니의 고교 동창인 ‘모태일’을 만난다. 이곳은 매니저가 따로 없고 각자 재주껏 자유롭게 꿈을 파는 곳이다. 1~4층에서 팔다 남은 꿈을 할인판매하는 곳인데 판매한 수량만큼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다. 페니는 결국 1층에서 일하기로 하고 웨더 아주머니에게 일을 배운다.


  신입인 페니에게 첫 번째 임무가 주어진다. 창고의 금고에는 ‘설렘’이 유리병 2개에 들어있는데 그것을 은행에 가져가 예치하는 일이다. 은행에 가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옆에 와서 말을 건다. 밖에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으니 따라오라고 말하고는 유리병 하나를 집어들고 나간다. 남자를 따라 나갔다가 페니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그는 사라지고 없다. 페니는 ‘설렘’ 한 병을 도난당한 후 백화점에 돌아와 용서를 구한다. 이에 달러구트는 너그럽게 용서해준다.


  어릴 때부터 꿈백화점의 단골이었던 ‘정아영’은 자취 4년차 28세 직장인이다. 그녀는 요즘 들어 거래처 직원 ‘현종석’에게 마음이 끌린다. 단골 손님 정아영이 꿈백화점에 와서 꿈을 고르는데 페니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을 권한다. 꿈 값은 항상 후불로 지불하게 되어 있고, 손님이 만족하지 않으면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정아영은 구입한 꿈을 꾸고 난 후 요금을 ‘설렘’으로 지불한다. 한편 현종석은 ‘옛 애인이 나오는 꿈’을 2년 전부터 계속 구입해온 터였다. 처음엔 그 꿈을 꾸고는 울면서 깼었지만 그후론 괜찮아졌다고 한다. 꿈에 대한 감흥이 없으니 돈을 지불하지 않았고, 백화점 입장에선 꿈값을 날린 셈이 된다. 이에 달러구트는 현종석에게 그 꿈을 더 이상 사지 말라고 하며 ‘설렘’ 한 잔을 따라주며 들이키라고 권한다. 이후 정아영과 현종석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이미 7년 전에 육군 만기 전역을 한 올해 29세 청년이 꿈을 꾼다. 인구절벽 시대에 군대에 갈 청년들이 부족해지자 병무청에서는 만 30세 미만의 전역 군인을 대상으로 신체 검사를 재실시하여 재입대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온다. 이윽고 이발 의자에 앉자 이발사가 사정없이 남자의 머리카락을 잘라낸다. 냉랭한 금속이 닿는 감각이 두피에 전달되고 머리카락이 후두득 떨어짐과 동시에 등에서 땀이 비오듯 흐른다. 잠에서 깨자 참았던 욕을 쏟아 부으며 일어났고, 3초만에 ‘진짜 현실감’이 온몸을 뒤덮는다.


  한편,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도 넘은 스물 아홉 살 아가씨도 꿈을 꾼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진땀만 흘린다.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옆에 앉은 학생은 중얼거린다. “이번 시험은 왜 이렇게 쉬워?” 그 말을 듣고 더욱 긴장한다. 친구들은 시험지를 넘겨가며 풀고 있는데 여자는 한 문제도 풀지 못한다. 그러다 잠이 깬다. 여자는 허공에 대고 한숨 쉬듯 말을 뱉는다. “정말 지긋지긋해.”


  뒷골목에서 무시무시한 꿈만 제작한다는 ‘막심’이 달러구트와 계약을 체결하며 악몽을 팔았던 것이다. 환불을 요청하는 손님들이 백화점에 밀어닥친다. 후불제이기 때문에 환불해줄 것도 없지만 악몽에 시달린 손님들은 원통함을 호소하러 몰려든다. 손님들이 달러구트에게 불만을 쏟아내자 그는 말한다. “여러분이 구매한 것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입니다.” 그러면서 ‘구매 확정 서약서’에 손님들이 스스로 자필 서명을 했다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간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손님 중 절반은 계약을 철회하고 절반은 꿈을 계속 꾸기로 한다. 결국 트라우마를 극복한 손님들은 꿈값을 지불하고,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다. 


  웨더 아주머니는 ‘꿈 제작자 정기총회’를 알리는 메시지를 페니에게 보여준다. 달러구트가 초대받은 것인데 그 외 1명이 더 갈 수 있다. 이번에는 웨더 대신에 페니가 가는 것으로 결정한다. 정기총회 장소는 협회장인 니콜라스의 오두막이다. 오두막에는 최고의 꿈 제작자들이 모인다. ‘와와 슬립랜드’, ‘야스누즈 오트라’, ‘아가냅 코코’, ‘애니모라 반쵸’, ‘막심’이 도착한다. 이들은 손님들이 노쇼(No show)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토론한다.


  12월엔 ‘올해의 꿈’ 시상식을 한다. 백화점 직원들은 시상식을 시청하기 위해 1층 로비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12월 한 달에 판매고를 가장 많이 올리는 사람은 산타클로스로 활동하는 니콜라스였다. 그가 15년 연속 수상을 했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달의 베스트셀러 상은 ‘애니모라 반쵸’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대망의 그랑프리를 누가 가져가게 될지 모두 궁금해한다. 사회자가 발표한다. ‘킥 슬럼버’가 만든 ‘절벽 위에서 독수리가 되어 날아가는 꿈’이 영예를 안게 된다. 목발을 짚고 연단에 등장한 ‘킥 슬럼버’는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 드는 날도 있을 겁니다. 올해의 제가 바로 그랬죠. 저는 이번 꿈을 완성하기 위해 천 번, 만 번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꿈을 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벽 아래를 보지 않고, 절벽을 딛고 날아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완성할 수 있었죠. 저는 여러분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꿈이 그런 여러분에게 영감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겁니다. 큰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20대 중반을 지나 스물 아홉 살이 된 남자 가수 지망생은 또 한 번 기획사 오디션에 낙방하면서 관계자로부터 조언을 듣는다. 노래 안에 가수만의 색깔이 묻어나지 않으니 자작곡을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남자는 웹을 검색하던 중 ‘꿈에서 영감을 얻은 천재들’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다. 폴 매카트니는 꿈 속에서 ‘예스터데이’를 작곡했다고 한다. 남자는 꿈백화점에 가서 ‘영감을 얻는 꿈’을 달라고 한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없다고 했지만, 달러구트는 그 남자에게 숙면 캔디를 하나 선물한다. 남자는 꿈 속에서 멜로디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멜로디로 곡을 만든다. 다행히 음악 관계자들의 반응이 좋았고, 그는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달러구트를 찾아간다. 달러구트는 단지 숙면 캔디를 줬을 뿐이라고 답하고, 그 멜로디는 이미 손님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이라며 축하해준다.


  평소에 따분함을 느껴온 한 남자가 꿈 백화점에 가서 낮잠용 꿈을 찾는다. 달러구트는 그에게 ‘타인의 삶(체험판)’을 권하고 그는 꿈을 받아온다. 얼마 전, 야스누즈 오트라가 신상품 ‘타인의 삶(체험판)’을 만들었다는 것을 달러구트가 페니에게 알려주었고, 페니가 오트라의 집에 찾아가 체험판을 받아왔다. 그 ‘타인’이란 다름 아닌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가수다. 그 성공한 가수가 음악 프로그램에 나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다가 남자는 낮잠을 잔다. 꿈에 나타난 그 가수의 삶은 형편없었다. 8년간 무명생활을 하던 가수의 삶을 그 남자는 15분간 꿈을 통해 체험한 것이다.  


  볼이 홀쭉한 중년 여성이 달러구트와 이야기하고 있다. 손님이 원하는 꿈을 제작자에게 의뢰하면 제작자가 만들어 백화점에 납품하고, 그것을 손님이 원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한다. 달러구트는 손님이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는다. 손님은 그 꿈을 남편과 딸, 부모님에게도 보내겠다고 한다.


  5살 난 딸을 둔 부부는 아이가 또래들보다 말이 느린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발달센터며 치료실을 전전하며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을 때 말문이 터졌다. 그러나 어느 날, 머리가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한 딸은 그 해를 넘기지 못했다.


  그 젊은 부부가 꿈을 꾼다. 먼저 떠나보낸 딸을 꿈속에서 만난다. 꿈속의 아이는 말이 유창하다. 아빠는 자꾸만 미안해서 애처롭게 아이를 쳐다보는데 오히려 아이는 아빠에게 힘을 준다. 잘 놀고 있겠다고, 착하게 잘 있겠다고 약속도 한다.

  페니가 달러구트에게 말한다.

  “달러구트 님.”

  “왜 그러니?”

  “전 이 일이 참 좋아요.”

  “나도 참 좋단다.”

  기다리던 손님이 저 멀리서 가게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이내 문이 열린다.

  “어서 오세요, 손님!” 페니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오늘은 아직 좋은 꿈이 잔뜩 남아 있답니다!”


  이 소설은 상상력에 영감을 달아 더 멀리까지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아기자기한 구성이며 레트로한 감성, 디즈니적인 상상력이 더해져 추운 겨울에 따뜻함을 느끼게 해줄 이야기 모음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날 벽난로에서 장작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을 때, 밖에 나갔다 돌아온 식구들이 언 손을 비비며 함박 웃음을 던지는 모습을 말이다. 그와 같은 푸근함, 아련함, 꿈에 그리던 로망이 다가온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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