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신간임에도 서점 매대에 높이 쌓아올려져 진열된 여러 권을 봤던 기억이 있다. 언뜻 표지만 보기에도 내용이 궁금해지고,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씌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이 책을 펼쳤다.
스웨덴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읽는 내내 이 책의 독후감을 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내용이 많은 것은 둘째 치고라도, 이야기의 시점이 현재와 과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2005년 5월 2일부터 6월 16일까지의 사건과, 과거 인생 100년간의 사건이 교차되어 전개된다.
책이 나온 이듬 해에 상영된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유료 영화 사이트를 통해 다시 한 번 이 책의 내용을 접했다. 책에서 다룬 이야기들 중 몇몇이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게 생략되지 않았더라면 좀 더 영화가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이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는 장면 같은 것.
때는 2005년 5월 2일 월요일이다. 이날은 주인공 ‘알란’이 100세를 맞이하는 날이다. 말름셰핑의 양로원에서는 이를 축하하기 위해 시장과 지역신문 기자들도 달려왔지만 주인공은 1층 창문을 넘어 도망친다. 바로 버스 터미널로 향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매표소 창구 직원에게 묻는다. 뷔링에역까지 가는 차표를 끊고 차를 기다리는 동안, 조폭 조직원 청년 ‘볼트’가 잠시 트렁크를 맡아달라고 하고는 화장실에 들어간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자 알란은 트렁크를 들고 버스에 올라 뷔링에역에서 내린다. 역 부근 외딴 집에서 만난 ‘율리우스’는 알란을 맞아들인다. 잃어버린 트렁크를 찾으러 뒤늦게 따라 온 볼트는 알란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기절하고, 알란과 율리우스는 볼트를 냉동고에 집어넣는다. 이튿날 냉동고에서 시체로 발견된 볼트를 처리하기 위해 알란과 율리우스는 페달을 밟아 추진하는 궤도차에 볼트의 시신을 싣는다. 이웃 마을의 철강 공장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에 쌓여있던 컨테이너 중 하나에 시체를 옮겨 싣는다. 이후 시체는 배로 옮겨지다 이집트 선원이 홍해에 던져버린다.
1905년 5월 2일에 태어난 알란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다. 러시아에 건너간 아버지는 15제곱미터 남짓한 소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독립공화국으로 선포하고는 그 땅을 지키려다 러시아 정부군 병사에게 총을 맞는다. 아버지 사후 2년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다소 철학적인 말을 남긴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 그때 알란의 나이는 15세였고, 그는 농가 뒤편 자갈 채취장에서 다양한 폭발물들로 온갖 종류의 실험에 열중한다. 이어 니트로글리세린사에서 사환으로 일한 뒤 다이너마이트 회사를 차리고 열심히 일한다. 이후 자갈 채취장에서 사고가 한 번 터진 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조치된다.
100세 노인의 양로원 탈출 사건 후, 경찰에선 아론손 반장이 알란 일당을 뒤쫓기 시작한다. 알란과 율리우스는 컨테이너에 볼트의 시체를 옮겨 싣고 뒤돌아가는 길에 핫도그 장수 베니를 만난다. 베니는 임시 운전사로 채용된다. 스몰란드의 숲지대로 들어선 차는 ‘호숫가 농가’ 앞에 다다른다. 그곳 주인은 ‘구닐라’라는 40대 여자로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다.
정신병원에서 4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24세가 된 알란은 본인이 살던 집에 갔다가 다이너마이트로 집을 폭파시킨다. 일자리를 찾아 떠난 그는 헬레포르스네스의 주물공장에서 대포 제조 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에 취직한다. 폭약 전문가로 입사한 그는 스페인 동료 에스테반을 만나고, 그와 함께 스페인 혁명에 참가하기 위해 공장을 떠난다. 석 달에 걸쳐 유럽을 가로질러 스페인에 당도한 그들은 전쟁에 참가하고, 에스테반은 적군의 박격포탄을 맞아 즉사한다.
또, 공화군이 교각 위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기 전에 프랑크 총통에게 위험을 알려 그의 생명을 구해준다. 그에게 융숭하게 대접 받은 후, 알란은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한다. 총통의 절대적 신임을 보장하는 추천서까지 받아 승선했지만, 스페인 선박은 미국 뉴욕항에 입항한다. 이민국에서 국장은 핵을 개발하는 로스앨러모스에 알란을 보내 연구원들에게 커피 나르는 일을 하게 한다. 거기서 만난 핵 개발 총 책임자 오펜하이머에게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에 기뻐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알란을 초대해 융숭하게 대접한다.
2005년 5월 3일, 노인 탈출 사건 다음날부터 아론손 반장은 경찰견과 조련사를 대동하고 알란 일당을 찾아나선다. 한편, 호숫가 농가에선 알란, 율리우스, 베니, 구닐라가 함께 지내게 되는데, 구닐라가 기르는 코끼리 ‘소냐’도 한 가족이다.
2005년 5월 9일, 조폭 조직의 일원인 ‘양동이’는 마침내 호숫가 농가를 찾아낸다. 마당엔 코끼리 ‘소냐’가 싸놓은 배설물이 진창을 만들어놓고 있다. 총을 들고 알란 일당을 위협하던 ‘양동이’는 뒤로 주춤거리다 자빠지고, 후피동물 소냐가 엉덩이로 양동이를 깔아뭉갠다. 볼트에 이어 양동이까지 조직원 두 명이 죽었다.
1945년 트루먼 대통령은 알란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인다. 중국 국민당의 수장인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을 도와 그녀의 부하들에게 다리 폭파하는 법을 훈련시켜 달라는 것이다. 알란은 쑹메이링과 그녀의 개인 경호원 20여 명과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에 내린다. 상하이까지 배를 타고 이동하며 몇 가지 일을 겪는다.
알란은 육로를 통해 스웨덴까지 가기로 작정한다. 티베트를 횡단하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 유럽을 통과하는 대장정에 돌입한다. 산간마을에서 낙타 한 마리를 구해 여행하다가, 역시 낙타를 탄 세 명의 이란인과 합류한다. 이들은 마오쩌뚱의 지도편달하에 교육을 받은 공산주의자였는데, 이란 국경 순찰대에 붙잡힌 후 그들의 짐 속에서 공산당선언이 한 부씩 발견되어 그 자리에서 총살된다.
2005년 5월 9일, 율리우스는 죽은 ‘양동이’를 포드 머스탱 뒷좌석 아래에 욱여넣고, 베니는 파사트를 타고 뒤를 따른다. 차에 불을 지르기 위해 기름을 사려고 주유소에 갔다가 시체가 실려있는 머스탱을 도난당하고, 그 차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로 보내졌다가 폐차된다.
알란 일당은 코끼리까지 태우고 이동하기 위해 노란색 버스를 구입해 개조한다. 조직의 보스 예르딘이 조직원을 찾아 호숫가 농가에 도착했을 때는 알란 일당이 노란색 버스를 타고 달아나고 있을 때였다. 버스를 추격하던 예르딘의 BMW 차는 버스에 받혀 20미터를 날아가 전나무 둥치에 부딪힌다.
1947년 이란에서 체포된 알란은 감옥에 갇혀 퍼거슨 신부를 만나고, 둘은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이란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서 알란은 트루먼 대통령과 통화하고 즉시 여권을 발급받는다. 처칠이 영국으로 돌아갈 때 한 자리를 얻어 타고 런던을 거쳐, 마침내 스웨덴에 도착한다. 스웨덴 엘란데르 수상이 알란을 원자력 프로젝트에 합류시키기 위해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알란의 자격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한다. 알란은 자격 미달로 퇴짜 맞는다.
2005년 5월 9일, 예르딘은 죽지 않고 숨이 붙어있어 베니가 치료해준다. 알란 일당은 노란 버스를 타고 ‘베니’의 형 ‘보세’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베니는 보세를 끌어들여 공범으로 만든다. 예르딘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자, 왕년에 보세와 둘도 없는 친구였던 보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1948년, 알란을 소련으로 데려가기 위해 낯선 남자가 접근한다. 그를 따라 도착하니 잠수함이 대기 중이다. 물리학자 유리 보리소비치와 함께 소련에 도착한다. 한편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 책임자인 베리야 원수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납치해오려 시도하다 그의 동생인 헤르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잡아온다. 알란은 스탈린, 유리 보리소비치 포포프, 베리야 원수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스탈린을 염장 지르는 이야기를 하고 비밀 경찰의 지하 감방에 갇힌다. 이후 헤르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알란은 블라디보스토크의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진다. 수용소에서 5년 3주일을 보낸 알란은 헤르베르트와 함께 탈출하기로 마음 먹는다. 폭발물이 든 컨테이너에 불을 붙여 연쇄 폭발로 수용소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헤르베르트와 함께 빠져나온다.
다음 목표를 북한으로 정하고 한참 걷다가 소련의 메레츠코프 원수가 탄 차를 습격해 원수가 입은 군복을 빼앗아 입는다. 원수의 차를 타고 알란과 헤르베르트는 소련과 북한 간의 국경을 통과한다. 두 사람은 김일성과 마오쩌뚱이 있는 방 안까지 들어갔는데, 그 순간 진짜 메레츠코프 원수가 뒤따라 들어와서 두 사람이 가짜라는 게 들통난다. 알란이 마오쩌뚱의 아내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하자 마오쩌뚱은 거액의 달러와 함께 두 사람을 휴양지 발리에 보내주도록 조치한다.
발리에서 휴양을 즐기는 동안 헤르베르트는 웨이트리스 아만다를 알게 되고 결혼까지 한다. 아만다는 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정치를 시작한다. 이어 파리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가 된다.
2005년 5월 26일에는 살인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프리카 지부티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서 스웨덴 시민이 죽었는데 경찰에서는 그 사람이 알란 일당의 첫 번째 희생자인 ‘볼트’라고 하며,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로 보내진 시신도 ‘양동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사건 담당 라넬리드 검사는 그동안 헛다리를 짚었음을 인정한다. 그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알란 일당은 혐의가 없다고 말하고, 다음날 오후 3시에는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겠다고 공언한다.
라넬리드 검사는 부랴부랴 알란 일당에게 찾아가고, 그들은 이미 짜놓은 각본대로 스토리를 만들어 자신들이 무죄라고 주장한다. 드디어 다음날 오후 3시 기자회견에서 라넬리드 검사는 알란 일당이 무죄라고 선언한다. 애초에 경찰견이 냄새 맡은 것은 시체 냄새가 아니라 노인에게서 나는 냄새였다면서.
알란 일당은 거금을 내고 보잉747 여객기를 전세 내어 휴양지 발리에 도착한다. 저녁엔 성대한 만찬을 즐긴다. 베니는 구닐라에게 청혼하고 다음날 결혼한다.
독자인 나로서는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이야기의 독창성이나 신선함, 그리고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의 면모는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전체 맥락에서 살짝살짝 벗어나는 이야기들이 장황하게 서술되는 것에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줄거리를 정리하기 어려웠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또, 서로 색깔이 다른 소재를 강제로 연결시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도 억지스럽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또, 픽션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지만 살인이 완전범죄로 끝난다는 것도 독자로서는 이내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이렇게 풀어나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