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입장에서 ‘잠’을 소재로 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호기심 가득한 도전이 될 뿐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닿을지 예상하는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기억」이라는 소설에서 ‘최면’을 통해 자신의 전생과 만난다는 설정을 했던 반면에,「잠」에서는 잠을 통해 미래와 과거의 자신과 만난다는 설정을 한다. 일반인들의 상상력이 닿기 어려운 영역까지 작가는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다소 허무맹랑하고 뜬금없어 보이는 설정이 좀 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스토리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또한 단문 위주의 서술 방식과 등장인물들 간의 간단명료한 대화가 독서의 속도를 높여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의 역량이나 상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파리 시립병원에서 여성 수면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카롤린 클라인’이 아들의 여자친구 ‘샤를로트’에게 잠은 잘 자느냐고 묻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잠’에 대한 그녀의 철학을 말하고, 현재 추진 중인 ‘비밀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잠의 세계에 신기원을 열게 될 거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들인 ‘자크 클라인’과 여자친구 ‘샤를로트’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새벽에 잠이 든 카롤린은 1시간 만에 몸을 일으킨다. 몽유병 환자인 그녀는 주방으로 걸어가 스테이크를 꺼내 접시에 담고 유리잔을 넘어뜨려 깨진 조각에 발을 다친다. 그리고는 지상 20미터 높이인 슬레이트 지붕 위로 걸어갔다 돌아온다.
‘자크’의 아빠인 프랑시스 클라인은 항해사다. 단독 요트 항해 부문에서 화려한 우승 경력을 보유하고 있던 아빠의 우승 비결은 쪽잠이었다. 아내인 카롤린으로부터 배운 과학적인 수면법에 힘입어 요트를 타고 5일 1시간 13분만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기록을 세운다.
자크는 4살 때 우연히 ‘죠스’ 영화를 보고, 식인 상어에 대한 공포심이 무의식 깊은 곳을 건드려 상처를 받았다. 그 이후로 물에 대한 공포를 갖는다. 아홉 살이 되면서부터는 키가 잘 자라지도 않고 병이 끊이질 않는다. 올바른 수면법을 통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엄마는 자크에게 수면의 1~5단계를 설명해주고, 숙면을 유도해준다. 그 노력 덕분에 아들은 차츰 나아져 정상으로 회복된다. <꿈속 여행>을 더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카롤린은 다섯 번째 단계인 ‘역설 수면’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4단계에서는 발가벗고 있거나 적에게 쫓기거나 이빨이 빠지는 꿈을 꾸지만 5단계에서는 하늘을 날고, 사랑을 나누고, 적을 물리치는 꿈을 꾼다고 말해준다.
자크가 열 세 살이 되던 해, 아빠인 ‘프랑시스’는 단독 요트 항해 세계 일주 신기록에 도전하지만 실패하고 상어에 물어뜯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 이후 아들은 이불에 오줌을 싸는 야뇨증이 생긴다. 카롤린은 아들의 야뇨증을 치료하기 위해 유도몽을 시도해본다. 최면술사가 대상자에게 최면을 걸어 전생을 말하게 하듯이, 엄마는 아들이 자는 동안 꿈 내용에 개입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유도몽으로 야뇨증을 치료한다.
자크가 열 일곱 살이 되어 바칼로레아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날, 새벽에 괴이한 소리에 잠이 깬다. 폭발음이 들리는 주방으로 간 자크는 엄마를 발견한다. 엄마가 DVD디스크에 버터를 바르고 햄과 치즈를 얹어 전자레인지를 돌리고 있다. 레인지 안에서 불꽃이 사방으로 튀고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몽유병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아들로부터 새벽에 일어난 일에 대해 들은 엄마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맹세한다.
의대생이 된 자크는 <낮잠 카페>란 곳을 알게 되고, 영화를 전공하는 ‘샤를로트’를 거기서 만난다. 둘은 퐁텐블로의 빌라에 있는 샤를로트의 집으로 향한다.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정사를 나눈다. 이윽고 잠든 샤를로트가 괴로워하며 심한 잠꼬대를 한다. 잠에서 깬 그녀가 악몽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홉 살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가 ‘크리스틴’이라는 여자와 재혼했고 그 새엄마가 요구르트 통을 샤를로트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새엄마는 자신이 유산한 태아를 요구르트 통에 담아 샤를로트의 얼굴에 들이밀면서, 샤를로트를 진저리 치게 싫어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런 악몽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자크는 샤를로트가 유도몽을 꾸게 한다. 그녀를 괴롭히던 악몽의 기억을 다른 행복했던 기억으로 대체시켜 다시는 똑같은 악몽에 시달리지 않게 해준다.
엄마가 말했던 비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날이 되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병원으로 불러들인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잠의 단계는 역설수면인 5단계가 끝이지만 이제 6단계를 실험할 차례다. 실험실에는 인도 바라나시 출신의 요가 수행자인 ‘아킬레시’가 대기하고 있다. 5단계를 지나 6단계까지 내려간 아킬레시는 다시 5단계로 올라오지 못하고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비밀을 다짐했지만, 이튿날 최대 일간지 1면에 의료 사고 소식이 실린다. 카롤린은 수면 내과 과장인 ‘자코메티’ 앞으로 불려가고 둘은 심하게 다툰다. 카롤린은 그 이후로 사라져버리고, 자크는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한다.
자크는 엄마가 실종된 후 불면증에 시달린다. 도박 중독자들, 섹스 중독자들이 모이는 회합에 참가해서 자신의 불면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참가자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거기서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쥐스틴을 알게 된다.
자크가 꿈을 꾼다. 붉은 모래섬에 와 있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다가온다. 스물 여덟 살인 자크 앞에 20년 후의 자크가 나타난다. 엄마가 추진했던 수면 6단계가 성공해서 마흔 여덟 살인 자크가 스물 여덟 살인 자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엄마는 말레이시아의 세노이족과 함께 살고 있다고 전한다. 그들은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에 훨씬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며, 엄마는 수면에 대해 그들에게 배울 것이 있어서 그곳에 갔다고 한다. 그들과 엄마는 현재 위험에 처해있으니 빨리 가서 도와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젊은 자크는 가지 않겠다고 저항한다. 마흔 여덟 살 자크(JK48)가 손가락을 튕기자 스물 여덟 살 자크(JK28)는 수면 마비 상태가 된다. JK28 이 엄마를 구하러 가도록 하기 위해 JK48 이 물리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윽고 JK28 이 반 시체 상태가 된 것을 알게 된 쥐스틴과 파트리크(마약 딜러)는 JK28을 물에 던져버리려 한다. 결국 다급해진 JK28 은 엄마를 구하러 가기로 약속하고는 JK48에게 도움을 청한다. JK48 은 JK28 이 5단계, 4단계, 3단계, 2단계, 1단계를 거쳐 꿈을 깰 수 있게 도와준다. JK28 이 꿈을 깨자 쥐스틴과 파트리크는 도망간다.
엄마를 구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자크는 프랑스 대사관을 찾아간다. 대사관 직원인 문화 담당관은 ‘프랑키’라는 기자를 소개해준다. 프랑키는 세노이족을 통해 자신의 병을 고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말레이시아에 취재를 왔다고 한다. 아편 중독자이기도 한 그는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쓰러져 잠이 들어버리는 기면증을 앓고 있다.
자크와 프랑키는 코끼리 두 마리를 빌려 타고 세노이족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세노이족들이 있어야 할 밀림엔 나무가 없고 벌목한 흔적만 보인다. 농장 근처에 있는 일꾼에게 물어보니 세노이족은 벌목꾼들을 피해 동쪽으로 떠났다고 한다. 두 사람은 코끼리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동쪽 해안으로 달린다. 어부의 오두막을 발견하고는 거기에서 살고 있는 노인에게 세노이족의 행방을 묻는다. 1년 전에 300명 정도의 원주민들이 짐을 싸들고 해변에 와서 사흘간 야영한 후, 큰 배가 와서 그들을 모두 싣고 갔다고 한다. 뚱뚱한 금발 머리 서양 여자가 세노이족의 우두머리 같았다고도 한다. 자크는 그 서양 여자가 바로 자신의 엄마 카롤린임을 직감한다.
JK28 이 꿈을 통해 JK48 을 만나서 엄마가 있는 곳을 알아낸다. 자크와 프랑키는 쌍동선을 타고 엄마가 있다는 섬으로 향한다. 자크는 JK48 이 미래를 말해주던 것을 떠올리면서 프랑키에게 묻는다.
“앞으로 당신한테 벌어질 일을 다 알고 조언도 해줄 수 있는 미래의 당신과 꿈 속에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면 뭘 물어보고 싶어요?”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예요. 나 혼자 실수도 해가면서 마음대로 살겠어요. 옆에서 정답을 귀띔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시험 보는 재미가 있을까요? 실패할 위험이 없으면 성공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죽음의 공포가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세노이족이 정착해 살고 있는 섬에 두 사람이 도착한다. 처음엔 그들을 결박하더니 나중에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맹인 여자(샴바야)가 나타나 이것저것을 묻는다. 그리고는 마담 클라인(자크의 엄마 카롤린 클라인)이 세노이족을 섬까지 데려왔다고 말한다. 그곳은 카롤린이 돈을 주고 산 섬이란다. 그런데 어느 날 잠수부들을 실은 배가 나타나더니 해저 동굴 탐사 스포츠를 위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섬 근해에 있는 블루홀을 발견한다. 그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업자들이 카롤린에게 섬을 팔라고 제안했다가 안 되니까 나중엔 협박을 하더니 야간공격까지 했다는 것이다.
자크가 꿈을 꾼다. 꿈에서 JK48을 만난 자크는 자신에게 곧 참극이 벌어질 거라는 말을 듣는다. 잠에서 깬 자크가 길을 걷다가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다. 부동산 개발 관광 전문 회사의 전무인 ‘압둘라 키암방’이라는 사람이 세 배의 가격을 쳐줄테니 섬을 팔라고 한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고문하겠다고 협박한다. 사흘간 잠을 못 자게 한 다음 자크가 미쳐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잠을 자게 해준다. 즉시 깊은 잠에 빠져 JK48을 찾아가자 어서 잠을 깨라고 다그친다. 잠을 깬 자크는 몸이 묶인 채 바다에 던져질 찰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 프랑키와 세노이족 세 명이 나타나 자크를 구해준다.
전열을 가다듬은 후 자크와 프랑키, 세노이족 열 명이 특공대를 만들어 ‘키암방’의 배를 공격해 접수하고 현대식 장비까지 빼앗아온다.
다시금 꿈을 통해 JK48 과 만나고 그로부터 조언을 듣는다. ‘착한’ 부동산 회사를 접촉해서 섬을 그들에게 매각하겠다고 제안하면 그들이 ‘키암방’으로부터 섬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해준다. 꿈에서 돌아온 자크는 세노이족에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한다. 키암방의 경쟁자들을 접촉해 이 섬에 호텔을 짓고, 소수에게만 자각몽 수련 코스를 제공하자고 한다. 결국 세레니티스 어소시에이티드 회사를 매각 업체로 선정한다.
자크는 섬에 처음으로 왔을 때 만났던 맹인 여자 ‘샴바야’와 결혼하겠다고 세노이족에게 선언한다. 아홉 달이 지난다. 샴바야가 아들 ‘이카르’를 낳는다. 그리고 16년의 세월이 흐른다.
자크는 오랜만에 꿈을 통해 JK48을 만나려 한다. 그러나 그는 16년의 세월이 흘러 JK44 가 되었고, JK48은 JK64 가 되었다. JK64는 JK48에게 프랑스 파리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엄마 카롤린이 파리에 있는데 가서 도와주라고 한다. 자크가 처음에 섬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그 사흘 전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엄마가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는 적잖이 놀란다. 그 일에 관해 자크가 샴바야에게 묻는다. 자크가 섬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자크를 알아보았고, 섬 북쪽에 정박해놓은 자신의 배를 타고 도망갈 때까지 자크를 붙잡고 있으라고 샴바야에게 부탁했단다. 엄마는 수면 6단계를 발견하기 위해 연구를 해야한다면서 파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자크가 파리에 가겠다고 하자 샴바야와 이카르도 따라 나선다. 그들은 파리로 향한다.
파리의 엄마 집으로 돌아온 자크는 지붕 위를 걷고 있는 엄마를 발견한다. 발작 중인 몽유병 환자를 절대 깨우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너무 위험해보여 다가갔지만 엄마는 그만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코마 상태가 되어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수면 내과 과장인 ‘자코메티’는 엄마와의 악연이 있었던지라 교류가 끊어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엄마의 사건이 터진 후 그도 병원에서 해고됐고 그 이후에 몽마르트에 모르페우스 클리닉을 개원했다고 한다. 2층 건물인데 아래층에서는 수면 질환을 치료하고, 위층 실험실에서는 수면 6단계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는 지금 수면 5단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이며 의식이 돌아올 확률은 2퍼센트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엄마를 모르페우스클리닉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수면 6단계(솜누스 인코그니투스)에 대한 연구는 더 진전이 있었고 이제 그것을 적용해 엄마를 살릴 차례다. 이에 앞서 자크가 먼저 실험 대상자가 된다. 자코메티, 샴바야, 이카르, 샤를로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크는 수면 5단계를 지나 6단계까지 내려간다. 자크의 눈 앞에는 섬유로 된 가지들을 뻗은 부들부들한 붉은빛 소관목들이 우거진 덤불숲이 보인다. 자신의 뇌 안에 자리잡고 있는 뉴런들이다. 그곳은 무의식의 세계이기도 하다. 거기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트라우마까지 맞닥뜨리게 된다. 미래의 자신과도 만나 여러 가지 신비한 이야기도 듣는다. 그리고 무사히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로 돌아오며 자신감이 붙은 자크는 얼른 엄마를 구하기 위해 준비한다. 수면 5.8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엄마를 6단계까지 내려가도록 유도한다. 엄마도 자크가 체험한 것처럼 6단계에서 미래의 자신과 만나고 난 후 서서히 현실로 돌아온다. 5단계, 4단계, 3단계, 2단계, 1단계, 그리고 현실로... 자크가 엄마를 안아 침대에 데려가 눕힌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아기처럼 그녀가 몸을 옹송그린다. 아들은 엄마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주고 나서 사랑스럽게 얼굴을 매만진다. 세상 밖으로 나온 자신에게 엄마가 해주었던 것과 똑같이.
이 책에서 보여준 작가의 상상력은 일반적인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하다.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법한 소재와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에는 찬사를 아낄 필요가 없다. 그만큼 독창적이고 신선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앞으로 이어질 작가의 활동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