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안쪽_27.
오래 전 방을 한 칸 줄여서 이사를 가야하는 바람에 서재였던 나의 방을 없애면서 그 방에 있던 꽤 되는 책들이 집안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중 일부의 책들은 거실이나 안방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책들은 박스에 담아 베란다 구석에 정리해 둘 수밖에 없었는데, 신간서적들에 속하면서 사회생활에 활용이 되는 책들은 선택되고 문학이나 고전적인 책들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젊은 시절부터 은밀하게 나의 영역에 속했던 문학관련 책들은 뒷전으로 밀려났을 뿐 아니라 박스에 갇혀 찬바람이나 더운 햇빛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한 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운명의 그 책들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보낸 끝에 얼마 전 내가 개인 연구실을 별도로 마련하면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갇혀있던(?) 책들을 풀어내기 위해 책 상자를 개봉하면서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난감한 경우를 겪게 되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겉모습이 흉한 상태인 박스를 보는 순간 불안하기는 했는데, 그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나 그 안의 책들의 처참한 모습에 크게 실망한 것은 물론 죄책감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두어 개 박스의 책들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스며든 채 오래 방치한 탓인지 책으로서의 모습과 기능을 못할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책들이 주로 시집, 문학 이론과 문학 비평집들이었고 20대 시절에 제대로 읽히지도 않았지만 의욕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곤 하였었던, 한때 내가 매우 아끼던 책들이었기에 실망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조지훈, 정지용, 윤동주, 이육사 등의 시집 등은 신간이 아닌 책을 지인들을 통해 입수한 것들이었는데 형편없이 손상되어 있어서 몹시 속이 상하였다.
나는 70, 80년대에 순수한 열정으로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고 번민하면서 그 책들을 읽었고, 글을 쓰고자 노력하며 기대하는 만큼의 글이 쓰여 지지 않는 것에 힘들어 하기도 하고, 그 책들을 통해 대안을 찾으려 의지하곤 하였었다. 그런데 나의 무책임함과 소홀함이 이런 배반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었고, 이 처참함의 원인은 나의 무관심한 방치 탓이니 나는 유구무언을 넘어 죄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조만간 때가 되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 책들을 읽어내려고 생각하면서 지난 십여 년 동안 한 데로 밀어내어 이렇게 철저히 상처를 주고 있음은 생각지도 않은 채 문학에의 의지와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모순적인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내 앞에 돌아온 그 책들을 맥없이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회생시켜보고자 며칠에 걸쳐서 나름대로 열심히 그 훼손된 책들을 손질하였다. 정기구독을 하였던 월간, 계간의 문학잡지들은 회복이 전혀 불가능하니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보내져야 했는데, 오래 간직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남았다. 그런데 손질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책의 내용에 눈길이 가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손질하면서 넘겨보는 페이지에서 예전에 내가 남겨 놓았을 흔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 흔적들은 줄을 긋기도 하고 메모를 하거나 또는 메모쪽지에 비교적 긴 글들을 써놓은 채 책갈피 되어 있기도 하였다. 지난 세월동안 나의 기억 속에서 잠시 사라져 있었지만 그 흔적들을 보는 순간 놀랍게도 그때와 연관된 에피소드와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듯 하였으며, 그 기분이 조금은 특별하기까지 하였다. 그때의 감정 그대로 일수는 없겠지만 그 작가들과 그 저작에 대한 당시의 내가 가졌던 감정과 갈망이 연관되어 떠올려 지는 듯하였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신대철의 "무인도를 위하여", 김영태의 "북호텔", 이승훈의 "남자의 방",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조지훈의 "시선집",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선집", "휠더린의 시집"과 "휠더린 연구" 등 상처 입은 책들을 들추면서 그 책에서 얼핏 엿보이는 그들과 나의 교감, 나의 열망, 그들을 쫒고자 했던 기대, 그와 관련하여 당시의 내가 겪었던 갈등과 절망, 번민과 슬픔, 왠지 모르는 분노까지 담기거나 얽혀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김현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프랑스 비평사", "바슐라르 연구", 임헌영의 비평집 "민족문학의 길", 김춘수의 "의미와 무의미" 등에서는 20대의 내가 진정 이런 책을 읽으며 고민하고 배우고자 하였는가 하는 놀라움까지 느껴지기도 하였다.
아무튼 훼손된 오십 여권의 문학책들을 손질하고 조금은 쓸모 있는 책으로 돌려놓으려고 애쓰면서 지난 세월에서의 연이은 기억과 자연스런 연대기의 회상과 더불어 얽히고 간단치 않았을 수도 있었을 지난 시절에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거나, 지금 시각으로는 거르고 극복하고 또는 퇴색했을 젊은 정신과 지금의 성숙된 정신과의 공존 등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으론 아이러니한 경우가 아닌가 하면서도 이런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은 어떤 면에서는 불행 속에서 찾은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손질을 어느 정도 하고 나니, 내용을 읽어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앞으로 나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 책들을 정성을 다하여 다시 읽어 보리라 다짐하였다. 더 이상 그 책들은 보존하기도 누군가에게 읽도록 권할 수도 없게 되었으니, 마지막으로 고이 보내드리는 심정으로 그리고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나의 마음의 일부를 전해보려 하면서 이 불편한 심정을 달래고자 마음을 먹게 되었다.(202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