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안쪽_28.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진다고들 한다. 이미 여러 지인들과 주변에서 수차례 들은 바 있는데 남 얘기가 아닌 나 자신을 통해서도 그걸 체험한다. 실제로 나는 드라마를 보거나 이런 저런 글을 읽으며 전보다 많이 여려진 감정선을 체험하게 되는 데, 어떤 때는 걷잡을 수 없을 만치 펑펑 울기도 한다. 물론 주위에 사람들이 있으면 매우 민망하므로 상황을 가리기도 하지만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하니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 나이 탓하기 좋은 변화의 징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내가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알고 지낸 선배님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다. 나보다는 10년 이상의 연장자이고 그동안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다. 그분은 내가 요즘 하는 일이 좀 있어서 바쁘게 지낸다고 했더니, 내게 ‘너무 애쓰며 살 필요 없다. 신문의 부고기사를 보면 평생에 잘 나갔고 유명했던 사람이나 평범하게 살다간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지 않느냐, 죽으면 다 똑같아 지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남기려 아등바등 할 필요 없다’는 식의 말들을 단정적으로 전하며 내게 여유를 가지고 안부 전화도 하며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지내라는 말을 해 주었다. 아마 내가 다소는 무리하게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느끼신 탓일까? 나를 생각하면서 그런 말을 하신 것으로 이해는 되었는데, 내가 요즘 생각하는 것과는 다소 다르게 이해가 되어 잠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저 지나가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얘기였지만 내게는 그대로 수용하기엔 다른 측면의 말로 들렸다.
나는 요즘 나의 생업과 관계없이 지금까지 관심을 두고 해오고 있는 여러 일들을 어떤 식으로 완성을 해내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제대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여생(?) 동안 해야 할 과제를 정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나 혼자 있는 시간이 꽤 많아졌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고 반성함과 더불어 미래를 위한 계획과 실천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정리하느라 고심 아닌 고심을 하고 있다.
요즘 모두들 100세 시대를 강조하고, 인생 2막이니 3막이니 하는 분위기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또한 나는 진작에 이에 대한 생각과 준비에 신경을 써온 터이기에 더욱 매진하려하는 편이다. 아마 그 선배님은 이런 분위기와는 다른 측면에서의 의견을 말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데,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니 그것을 가릴 필요는 없을 테지만 최소한 나의 생애를 살아감에 있어서 주어진 능력의 한계 안에서 마지막까지 열심히 살다가야 한다는 생각은 견지하고자 한다.
나는 오래 전에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지미 카터’가 쓴 <나이 드는 것의 미덕(The Virtues of Aging)>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대통령 재임시절보다 오히려 더 활발히 국가와 인류를 위한 일에 열중하며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그에 대해 대통령 퇴임 후 더 업적이 많은 전직 대통령으로 평가 하고 있는데, 그 책에서 그는 나이 들어가면서 새롭게 배우거나 무언가 가치 있고 유익한 일에 매달리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논하면서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을 ‘나이 듦으로 해서 받게 되는 축복’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등 두 가지를 내포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나이가 들어서도 해야 할 일과 제대로 살기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할 당시의 카터의 나이는 대통령직을 물러난 이후이니 60세 나이 무렵이었고, 그 이후 그것을 실천하면서 매우 활기 있는 삶을 살았다.
행동하는 철학자로 알려진 ‘라인홀트 매스너’(<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의 저자)도 유럽의회에서 활동을 마친 때가 예순 살 무렵이었으며, 과감히 고비사막을 최소의 장비만을 갖춘 채 횡단을 결심한다. 그의 의도는 단지 "제대로 나이 드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고 하니, 나의 선배들이 내게 한 이야기들과는 참 많이 다름을 느낀다. 물론 내 지인들은 어느 정도 재능과 능력은 있었으나 그저 평범하고 근근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마치 큰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히 지내는 것이 바른 삶이라고 말할 뿐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인가? 따라서 미국 대통령 쯤 지냈으니, 행동하는 철학자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숱한 험지를 도전하면서 남과 다른 행보와 성과를 낸 사람들이니,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어서 그러한 것이라고 말을 돌릴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충분히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흥미 있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보았는가? 지금까지의 내 삶에 대해, 그런 삶을 살아 온 나 자신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하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 번 뿐인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르신’ ‘노인’ 취급을 받을 나이까지, 나름 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는 잘 살아왔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을지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일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더러는 성공하기도 했고, 실패도 수없이 겪어보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래도 잘 살아온 편에 들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면서도, 딱히 무엇이 잘 살아온 것이며 제대로 나이 들어가며 사는 법을 알아가며 살아온 것인가에는 막히고 만다. 나이 들며 느끼게 되는 미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그것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지를 자문하면 난 그대로 주저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난 지금도 여전히 더 열심히 살아야만 할 때라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20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