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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Oct 02. 2022

속초 이야기

암과 명

속초에 왔다. 속초엔 작년에도 왔었다. 혼자.

넋이 나간 작년의 나

베트남에서 6년 근무하고 다시 돌아온 작년, 한국의 일터는 꽤 낯설었다. 국수 가락이 엉켜있는 듯한 머릿속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 휴가를 냈다. 휴가 첫날 아침, 운전대를 잡고서야 속초를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의 좋았던 날들이 그 결정과 연관되어 있음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새삼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상처에 딱지가 아 이제 피는 안나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속초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보유한 연수원이 있다. 직원교육시설로도 쓰이고, 휴양시설로도 쓰인다. 나는 신입시절 수도권에 있는 연수원  본원에 근무한 적이 있어서 업무상 여러 차례 속초 연수원을  방문했었다. 그때 그 시절 동료직원들은 이제 남아있지 않지만, 분주하고 신나기까지 했던 순간순간의 장면들 아직 생생하다.

남궁옥분 노래도 있다. 설악산.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 나는 연수생 대표를 맡았다. 젊고  발랄했고 자주 웃었던 시절이었다. 연수중에 속초 연수원도 방문을 했었는데 동기들, 선배들과 함께 기억에 남을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내 모습을 나는 사랑한다. 그런 인연으로 고향 부산에서 1년 근무고 연수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인생의 큰 변화이자 도전이었지만 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묵묵히 따라나서 준 아내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렇게 적수공권으로 수도권 생활을 시작했다. 꼬박꼬박 수도권이라고 쓰는 이유는 그렇게 구분 짓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속초 연수원을 휴가 차 한번 방문했었다. 좀 더 자주 올 수는 없었을까? 그들이 천사 같은 마음으로 천사 같은 말들을 지저귈 때 나는 귀 기울이지 못했다. 바쁘다고, 일이 많다고 그 소중한 것들을 많이 놓쳐 버렸다.  그 당시에는 무슨 뾰족한 대안도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일해야 승진도 하고,  윌급도 더 받고, 팔자도 고치는 줄 알고 밤낮으로, 주말까지 일했다. 주 좋게 봐주면 그런 공들이 쌓여서 지금도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고, 주변에 그러지 않아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으니 좀 삐딱하게 보면 바보 같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다 지난 일이다.

신입사원 연수 때도 있었던 웅비. 변함없는 것들도 세상에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오늘 업무 차  방문한 속초는 반갑게 날 맞아준다. 산도 바다도 그 옛날 그대로다. 그런 산과 바다가 작년에는 달라 보였는데 지금 오니 괜찮다. 시간은 가고, 아이들은 크고, 후회는 사무치고, 상처는 또 아문다. 그런 딱지를 몇 번을 벗기고 흉터만 남은 얼굴로 사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24년 정도, 속초를 알고 지냈다. 때론 어둡게 때론 밝게, 내 곁에 있어준 속초가 정겹다. 아이들이 제대하면 꼭 같이 와서, 소주 한잔 나눠야겠다. 속초 밤바다에 바람이 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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