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의도에 직장이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여의도에는 사람이 넘쳐난다. 다들 벚꽃 구경을 하기 위해서인데, 여의도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주로 점심시간에 꽃놀이를 즐긴다. 다른 데서 오는 사람들도 천차만별인데, 시간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평일 낮이나 밤에 꽃을 보러 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주말을 이용한다.
나는 점심을 함께 한 분의 제안으로 점심 꽃놀이에 나섰다. 말씀은 안 드렸지만 그 전날 같은 부서 동료들과 한 바퀴 돈 이후 두 번째 출정이었다. 그래도 벚꽃은 어제와 오늘이 또 다르게 피어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지르고 웃고 사진을 찍으며 봄의 한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삭막하다 표현되는 빌딩숲 여의도에서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가로수에 꽃이 피면 갑자기 축제가 열려 무표정한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그리고 꽃이 지면 다시 사람들은 모니터를 바라보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명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안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백설희>
길을 걸으며 한 무리의 학생들을 보았다. 아마도 한 반 친구들이 선생님 인솔 하에 기타까지 들고 점심 소풍을 나온 것 같다. '서기 2008년 7월(이미 지났다.), 인류는 전멸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핵무기를 훨씬 능가하는 초자력 무기가 세계의 절반을 일순간에 소멸해 버린 것이다. 지구는 일대 지각 변동을 일으켜 지축은 휘어지고, 다섯 개의 대륙은 거의 대부분 바닷속에 가라앉아 버렸다.'던 그 절망의 시대에도 희망을 보여준 코난과 라나같이, 그들은 젊고 싱그러웠다.
30년도 더 전인 고등학교 시절, 교정에 흩날리던 벚꽃 잎을 참지 못한 청춘은 종이컵 하나 가득 꽃잎을 담아 교실 문틀 위에 올려놓았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꽃비를 맞게 된다는계획이었는데, 일은 제대로 되지 않았어도 짧은 순간 꽃구름 같은 웃음이 우리를 채웠던 기억이 났다. 그 봄날은 이제 추억이 되었지만 세상은 저 젊음들로 다시 봄날을 기념하고 있다.
나도 저들처럼 젊어 봤음에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아니다. 눈물나도록 그립고 사무치는 내 젊은 날이다. 다시 갈 수 없는 그날, 그렇게 또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