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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May 04. 2024

'아륀지'와 '따봉'

언제나 마음은 Sun kissed orange

아내가 오렌지 껍질을 깐다. 칼집을 내고 그 틈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잘도 깐다. 맛있게 한 접시 차려 놓는다. 그나마 오렌지가 제일 싸다고 말하면서.


'주말의 명화'인지 '토요명화'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오렌지를 처음 본 건 영화를 통해서였다. 아주 어릴 적이었는데 TV가 흑백이었던 것인지, 그 이미지는 흑백으로 남아 있다.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 당시 영화제목이었는데, 원제는 'To sir with love'이며, 같은 제목의 영화 속 OST가 유명하다. 요즘은 그 말조차 사라진 '영화음악'이란 것을 집중적으로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고, DJ가 지 멋있게 들리는 'Original sound track'이란 영어 빠다를 발라 내 귀에 들려줄 때 전율을 느끼곤 했다.


빠다 발음. 콩글리시로 Butter pronounce, 더 정확한 우리말은 '미쿡 발음'이다. '아륀지'로 출범한 정권이 존재한 걸 보면 대한민국은 긴 세월 빠다 발음에 목숨을 걸었던 것 같다. 동남아 관광지에서 바나나 파는 아이들보다 우리는 왜 영어를 못 할까? 에서 시작한 사람들의 생각은 일본 영문법을 옮겨왔다어떤 영어문법책 탓했다가, 일제 강점기에 영어를 배운 선생님들을 했다가, 불쌍한 혀를 의심하며 혀밑 설소대를 자르는 수술도 했다가, '김치발음에 빠다를 발라주마'라는 책도 출간되었으며, 사람의 과도한 수줍음이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특정 혈액형을 원망했다가, 이 모든 것이 미쿡에 가지 않아서 그렇다며 아빠를 남겨두고 기러기처럼 미쿡으로 떠났다가, 결국 그 정권은 벽안의 외국인 선생님들을 모셔와 기어이 오렌지를 아륀지로 만들겠다며 다짐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허사였다.


그나마 더 이상 특정 영어책에 목지 않고, 일제 강점기 선생님들도 이제 다 떠나시고, 인권이 강화되어 혀 학대를 멈췄으며, 빠다를 버터로 부르게 되었고, 발랄한 'MBTI' E형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미쿡으로 여행도 자유롭게 가고, 외국인들이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는 세상이 왔음에, 요즘은 옛날같이 영어를 가지고 남 탓을 하는 일은 많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누구는 토익이 980이고 누구는 650이며, 수포자가 있듯이 영포자도 있다.


내가 큰 귤처럼 생긴 색깔을 알 수 없는 흑백 과일을 본 후 한참 뒤에 '따봉'이 나왔다. 브라질의 광활한 과수원에 산업역군 삘이 나는 한국 사람이 도착하고, 그 사람이 주황색 과일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후 엄지과 함께 외친 말은 바로 '따봉'. 그 한마디에 동구 과수원은 축제 분위기가 되고, 어쩜 그렇게 유연할까 싶은 관절을 이리저리 꺾으며 사람들은 쌈바인지 줌바인지 춤을 추는 것이다. 바로 그 '오렌지색' 과일이 '오렌지'다.


외래어 표기법 및 외국어 전사법이란 게 있어서 우리는 한글로 오렌지를 오렌지라 써야 한다. 오렌지라 쓰고 우리끼리는 오렌지라 부르고, 미쿡 친구 만나아륀지라 부르는 건 자유다. 홍길동이 겪었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정서적 아동학대보다 상황은 좀 나아 보인다.  적어도 우리끼리는 오렌지를 오렌지라 부르면 되기 때문이다.


아내가 식사 후 오렌지 껍질을 까고 있었을 뿐인데 시드니 포이티어의 낯선 손과 색깔을 알 수 없던 영화 속 오렌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 작은 옛날 꿈도 함께 떠올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매력적이라 느꼈다. 그리고 그런 일들에 항상 감동을 크게 받다. '언제나 마음은 태양'에서 빈민가 공립학교의 반항끼 가득한 학생들순화시키는 '마크 선생님', '고교얄개'에 본인도 가난한 상황인데 가난한 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신 내주는 '담임 선생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보수적이다 못 해 비인간적인 미국 상류층 사립학교 학생들에게 인생의 참의미를 알려주려 했던  '키팅 선생님', '선생 김봉두'에서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우러러 보이는 스승이었던 '김봉 선생님'까지, 나 그 길로 가지 못했지만, 오렌지 한 접시를 앞에 놓은 지천명의 나이에도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 꿈이 주책없이 떠오르는 것이다.


자식들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전쟁터를 벗어났다. 그 12년가량되는 시간이 부모라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고비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것 때문에 부부싸움 하고, 그것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울고, 그것 때문에 웃는다. 그냥 혼자 생각이지만 요즘 그것 때문에 결혼도 안 하고, 그것 때문에 자식도 안 낳는 것 같다.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도 괴롭고 힘들 것 같다. 어쩌면 내 동료 될 수도 있었던 그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선생님들 힘내시고 각성도 좀 하시고, 학부모들도 제발 그 입 좀 다무시고, 정부도 제대로 좀 하시면 좋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 끝난 일에 이렇게 뒷북을 치고 있다. 오늘따라 오렌지가 약간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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