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진화를 통해 인간이 생겨나고, 아무것도 모르던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자연이 두려웠다. 다른 짐승들의 공격을 받고, 뜨거운 것에 데고, 물에 빠져서, 추위에 떨다가, 번개에 맞아서 죽어가는 동족들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힘이 두려웠던 그들은 자연스레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숙였다. 유인원들이 보이는 복종의 몸짓이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삐딱선을 타던 코바(Koba)가 우두머리 시저(Caesar)에게 그런 몸짓을 보이며 손을 내미는 장면에서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인간들은 복종의 대상을 여러 가지로 정해왔다. 산, 바위, 해, 달, 별 같은 것들을 절대적인 신神으로 섬긴 적도 있었고(애니미즘, Animism), 동식물을 신격화하여 떠받든 적도 있었다(토테미즘 Totemism). 급기야 그들 중에 선전선동에 능한 자들이 나머지를 속여서, 자신들은 신과 접해 있으며 자신들을 통해 신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믿게 만든 적도 있다. 그런 자들을 샤먼(Shaman, 무당)이라 부르고, 그들이 구축한 체계를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한다.
앞에서 나는 모든 시제를 과거형으로 썼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런 상황들이 꼭 과거의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지금도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을 신神처럼 떠받들고 있다. 그 증거로 물에 빠질 때 그 무엇보다도 먼저 구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신神과 동급인 스마트폰인 것이다. 영화 ‘부시맨’에서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신神의 물건으로 여긴 것도,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에서 이웍(Ewok)족들이 자신들과 언어가 통하는 C-3PO를 신神으로 여긴 것도 애니미즘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증거다. (‘스타워즈’는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에서 있었던 일이라 사실 시제를 판단하기는 좀 어렵다.)
샤머니즘은 어떠한가? 언론에서 통칭 ‘교주’라고 부르는 자들이 ‘신도’라고 불리는 자들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때론 성적으로 착취하는 행태는 우리나라에서 존재하다 못해 성행하고 있다. 그것들은 항상 등장한다. 일본 지하철에 독가스가 퍼져도, 우리나라에 전염병이 돌아도, 배가 침몰해도, 대선이 치러져도, 대통령 취임식에도 현대의 샤먼들이 등장한다.(다음에는 차라리 셀럽인 ‘간달프’나 ‘덤블도어’를 초대해 주면 좋겠다.)
토테미즘은 어떤가? 사람들은 이제 아기를 낳지 않는다. 대신, 토템을 키운다. 어떠한 원시종교 아래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인류 존속의 근원인 출산을 그만두고, 자신들의 DNA를 이어받은 차세대의 자리를 자신들과 유전자 염기서열조차 일치하지 않는 개와 고양이에게 내주었다. 자신들을 멍이와 냥이의 ‘집사’라고 칭하며 헌신과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그들이 일군 찬란한 문명, 과학과 사상의 발전을 뒤로하고 원시적인 숭배 대상을 다시 소환하게 되었다. Covid-19이라는 전염병이 가져온 패러다임의 변화, 종교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전쟁, 인간의 패권주의적 본성으로 인한 여러 국가 간 갈등, 그리고 압도적 파워라는 메커니즘으로 작동되고 있었던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 Globalization)가 무너지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하는 외교적 혼돈을 마주한 인간들은, 토템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다른 이유를 찾자면, 극단까지 치달은 자본주의가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을 왜곡시키고, 그 결과 비혼과 저출산이 양산되었다고 본다. 그 와중에도 인간은 아직 깨끗이 제거하지 못한 사랑, 애정, 보호본능, 측은지심 같은 불필요한 감정을 해소할 대상으로 개나 고양이 같은 토템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내가 이 현상을 신토테미즘, Neo Totemism이라 부르는 이유다.
내가 결혼하여 자식 둘을 키워본 결과, 수지타산 만을 따진다면 결혼과 출산은 아주 소수의 커플만이 손익분기점(BEP)에 도달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나는 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수지타산을 따지지 않고 감정에 의존했기 때문에 끝까지 완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자본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도 손익분기점 달성을 방해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다. 그 오류도 결국 자본주의에 기반한 의료산업, 부동산/건설산업, 교육산업, 그리고 행정의 작품이다. 축적한 재화(이제는 상당수 물려받은 재화)를 사랑하는 이성과 공유하고, 태어난 자식에게 조건 없이 투여하겠다는, 자본주의 시각에서는 비정상적인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는 한 불가능한 선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는 인류의 좋은 친구다. 하지만, 그것들은 신神이나 자식이 아니다. 그 해소될 수 없는 차이가 Neo Totemism을 더욱 더슬프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