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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Nov 01. 2021

[내가 사랑하는 드라마] 인간실격 - 최종 리뷰

뒤늦게, 13-16부의 기억을 되짚으며

1. 16부까지 보고 바로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솔직한 마음은 우선 약간의 실망이었다.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가 그렇듯 뒤로 갈수록 많아지는 PPL,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몰입에서 깨어나며 드라마에서 한 발 떨어지게 되는 일종의 소격 효과가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특히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느릿느릿 드라마의 호흡을 따라오던 터라 더더욱. PPL 외에도 마지막 회로 가며 인물들 간의 관계가 조금은 급하게 봉합된 느낌이 들어 그것도 아쉬움이 느껴졌다. 민정과 딱이, 순규와 우남, 심지어 부정의 후배와 부정이 그랬고, 마지막에 별이 가득한 화면을 마주하며 우연한(이라고 쓰고 운명적인 이라고 읽어본다) 재회를 하게 된 부정과 강재의 열린 결말도 조금은 전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대부분의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서 실망이라는 감정을 많이 느끼는 편이기도 하다. 심지어 마지막 회를 일부러 보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과 감정을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보면 묵히게 되는 것도, 가라앉게 되는 것도, 휘발되는 것도 있으니까.


2. 부정 아버지 창숙의 죽음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이다. 드라마의 밖에서 이미 일어난 대부분의 죽음과 달리, 창숙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서서히 악화되고 결국 마지막을 맞이하기까지, 시작부터 끝까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창숙이 죽음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또 창숙의 딸 부정의 내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들려준다. 죽음은 삶의 반대이지만, 동시에 삶의 일부라고 말이다.


부정은 그녀의 삶을 부정하며 죽음을 선택하려 했었다. 그녀에게 자살은 부끄러운 삶의 종료 버튼, 부끄러운 나의 존재를 지울 수 있을 것 같은 선택지였다. 그러나 병실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고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아버지 삶의 궤적을 짚으며 부정은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어렸을 적, 고달픈 삶으로 죽음까지 생각하던 아버지가 어린 딸의 따뜻한 손과 목소리에 ‘죽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이야기.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폐지를 거두어 판매하는 것이든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것이든 매 순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충실하게 살아가던 모습. 딸이 이야기하지 않는 딸 인생의 흔들림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던 마음. 알츠하이머를 앓으며 불안하고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딸의 생일인 비밀번호 메모를 여기저기 넣어 두는 노력. 그리고 아버지 여기 있어, 아버지 괜찮아, 너는 늘 좋은 아이였다고 늘 반복해서 이야기해주는 따뜻한 목소리와 미소. 창숙은 누구에게 보여주고 인정받을 만한 무엇인가가 되지 않았지만(못했지만), 인생의 매 순간을 - 쉽지 않은 순간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선의를 갖고 온전히 살아냈고 후회 없이 나비처럼 가볍게 마침표를 찍었다.


마침표는 문장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마침표는 마음에 들지 않은 문장을 지우기 위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떤 문장이든 최선을 다해 써내려 간 다음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부정은 안다.


3. 우리의 삶은 늘 지금, 여기에만 존재한다. 시간은 일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모든 사람은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데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칫 우리가 경험하고 존재할 수 있는 ‘지금, 여기의 순간’을 그저 무엇이 되는 미래를 위한 준비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것, 현재를 미래의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기 전의 유예 상태로 바라보는 것… 그러다 사람들은 종종 길을 잃는다. 무엇인가 되지 못해서도 길을 잃고, 때로는 무엇인가 되고 나서도 길을 잃는다. 무엇인가 되고 나서, 그다음에 무엇인가 또 되고자 계속하여 현재를 스르르 흘려보내기도 한다. 무엇인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은 현재를 박차고 달려가게 하는 강한 에너지이지만, 현재를 충만하게 느끼며 매 순간을 온전하게 살기 어렵게 만드는 눈가리개이기도 하다.


한편 무엇인가 되고 싶은 이유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 보여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이 모든 마음은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해 있는데, 정확하게는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눈을 향해 있는 마음이다. 나를 가만히 살피고 느끼는 나의 고유한 시선과 감각을 닫고,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재단할 때 또한 나는 나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없다.


강재는 무엇인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는 것을 부정을 통해 깨닫는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충실한 것, 나의 마음에 솔직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삶을 산다는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길을 사이에 두고 부정을 바라보는 강재의 얼굴에 가득 찬 설렘, 길 중간까지 뛰듯 걸어와 부정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두근거림, 그리고 급하게 손을 이끌고 마침내 입을 맞추며 전하는 떨림까지 - 강재는 이전까지의 나른함이나 버석버석한 쓸쓸함 없이, 심장을 뛰게 하는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4.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살 수 있는 힘은 사랑이다. 세상에 아직 그런 것이 남아 있나 싶을 만큼 흔치 않아 보이기도 하고, 또 어쩌면 진부한 박제처럼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가 있고 사랑하는 관계가 있을 때 결국 살아간다.


그 사랑은 멀리 아스라이 있지만 내 머리에 쏟아지는 밤하늘의 은하수이고, 일상과 다른 환상이고,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과 다른 꿈이다. 쉬운 일은 없고,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어른이 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순간을 살게 하는 빛이다. 보이지 않지만, 한낮에도 늘 별은 빛나고 있듯이.


오래 병을 앓은 남편을 보내고 깊이를 모를 바다보다 더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강재 엄마에게 강재가 그런 존재였고, 가난함과 외로움으로 막막하게 새벽 시장 길을 걷던 젊은 부정 아빠에게 부정이 그런 존재였다. 강재와 부정이 서로에게, 정수와 경은이 서로에게 또한 그런 존재였다.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때는 누구나 혼자이지만, 인생의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동안에는 누구나 사랑하는 타인이 필요하다.


그런 사랑마저 미래를 위해 혹은 현실을 위해 유예할 , 그런 사랑에서  시선을 회피하고  자신을 밀어낼 , 삶은 죽음에 가깝다.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고, 모든 사랑이 ‘그래서  사람은 오래오래 함께 행복했습니다 수는 없지만 - 같이 죽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늘고 길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힘으로 사랑하기를. 아란이 캐나다의 아이를 공개하고 캐나다로 떠나는 것도, 경은이 정수의 마음을 바라보며 택시를 돌리는 것도,  쉽거나 편안한 답은 아니고 아프게도 하지만사랑은 인간을 인간일  있게 하는 힘이고 구원이니까. 창문을 열고 지금  순간의 공기와 빛을 들여놓듯이, 판단하지 않고 품어주는 사랑을 가슴에 들여놓을  있기를. 우리 모든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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