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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칼립투스 Sep 11. 2020

인생의 바닥을 찍고, 4일 차

6년 전, 그때만 해도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었다


2014년 봄.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던 어느 날, 인터넷을 뒤지다 토니 로빈스라는 작자의 강연 티켓을 거금을 주고 충동적으로 끊었던 적이 있다. 타인의 불행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전시한 후 마치 무슨 메시아라도 된 것 마냥 한 방에 인생역전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뻔한 상술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겐 너무도 절박하게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얘기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게 설령 생판 모르는 타인일지라도, 내가 치른 희생들을 공감해주고, 열심히 사느라 고생했다고 한마디 다독여줄 사람이 너무도 절실했고, 3박 4일 동안 내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제 괜찮아'를 목청껏 소리치게 해 줄 기회에 혹할 만큼 외로웠다. 결론적으로는,  당시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들의 스쳐 지나가는 감기를 어떻게 하지 못해 어렵게 구한 티켓은 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유일한 소원이 다음날 아침 깨어나지 않는 것이었고, 그나마 그것마저도 새벽녘 동이 틀 때까지 뒤척이다 밤을 하얗게 새우는 날이 더 많은 시절이었다. 회사에는 유독 나만 갈구는, 못되기로 업계 안팎으로 소문이 자자한 상사 두 명이 있었고, 집에는 생각대로 사업이 풀리지 않아 분노조절 장애가 생긴 남편과, 아들 키워 주는 걸 무기로 시어머니 노릇을 하던 이모님이 있었다. 상처 받은 마음에는 딱지가 덕지덕지 앉아 누군가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어쨌든 당시에만 해도 조금만 견디면 곧 나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 있었다. 정말이지 괴로운 시간이 그렇게까지 오래 지속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며칠 전 토니 로빈스 강연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야구 경기나 콘서트처럼 현장에 있는 것과 TV 중계를 보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경험인 걸 알면서도, 어쨌든 궁금증을 참을 순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러닝타임 2시간 내내 온몸이 오글거리는 미국인들 특유의 '필굿' 타령으로 화면이 어지러웠다.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태어나 6살부터 성적 신체적 학대를 당한 어떤 20대 초반 아리따운 여인이 등장해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든 후, 제너러스 하게 토니 로빈스가 본인 네트워크 소속 카운슬러의 지원을 통해 그녀를 카운슬링 전문가로 키워주기로 하며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감흥이 떨어진 이유가 현장의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가 TV를 통해 전달되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하게는 6년 전과 다르게, 지금은 하루 온종일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빠르게' 죽을지를 상상해야 할 만큼 미치도록 괴로운 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잔인한 상사들을 피해 회사를 나왔고, 이모님도 진작에 내보냈다. 남편도 사업이 자리를 잡으며 분노조절장애가 잦아들었다. 반대급부로 연봉이 예전에 1/3만도 못해졌고, 이모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언제 어디서나 허둥거려야 하게 되었으며, 남편은 여전히 이따금씩 나를 돈 나오는 자판기 취급을 한다. 하지만 6년 전하고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이 없다는 것만 빼고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몇 시간 다른 일을 하는 사이, (알림을 꺼둔, 그다지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 멤버가 100명에 육박하는 단톡 방에서 약간의 사단이 있었다. 옛 직장 오비 모임 단톡 방에 어떤 선배분이 (적절치 못한, 선명한) 정치색깔을 띤 메시지를 올렸다가 한 명이 그대로 탈퇴하고, 다른 한 명이 무척 부드러운 톤으로, 그러나 이론의 여지없이 단호하게, 앞으로 다신 이런 메시지를 올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후 최초 메시지 올린 분은 사과하고 탈퇴한 분은 다시 초대가 된, 요즘 들어 흔하디 흔할 해프닝이었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매너 200프로 갖춘 말투와 신경 써서 고른 단어들, 누구도 공격하지 않고 모두가 수긍할 수밖에 없는 그 메시지를 쓰신 선배가 문득, 무서웠었다. 20년 전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직속 과 선배임을 이유로 친해지고 싶어 하다 돌처럼 단단한 벽을 마주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그런 반응을 일으켰을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고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돌이켜보면 그동안 거쳐갔던 회사들과 조직들 내/외부에서 난, 그렇게 환영받는 존재는 못된 거 같다. 그동안 나름대로 겸손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특별히 남들에게 손해 주는 것 없이 착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큰 조직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라면 나름의 방식대로 사람들과 '좋게 좋게' 지내는 법을 터득했을 터이니, 싹싹하지 못하고 일로만 승부 보겠다고 덤비는 무뚝뚝한 내가 껄끄러운 존재였을 법도 하다. 


때로는 선배로 만나고, 또 다른 때에는 후배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동료들, 그리고 업계 안팎에서 만나게 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 혼자 골방에 처박혀 묵언수행하면서도 경제활동이 되지 않는 이상, 타인과 더불어 살며, 일하며, 부대끼며 친해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관계들은 피할 수가 없다. 아주 가끔씩 그런 관계들 속에서 보람도 느끼고 따스한 공감도 얻어가지만, 나에게 대부분의 관계란 믿을 수 없거나, 거추장스럽거나, 껄끄럽다. 무언가 나한테서 얻을 것이 있을 때에만 손을 내미는 사람들하고도 웃으면서 잘 지낼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얻을 것이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서로 무안하지 않게 부드럽게 다가가는 법도 터득해야 한다.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동료들은 이미 오래전 나를 저만치 앞서가 버렸고, 나에게 우호적이라 믿었던 사람들은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기가 무섭게 본인과 주변의 쓰레기로 나를 온통 뒤덮어버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기라도 하라는데, '관계'가 이토록 버거운데도 즐겁게 여기고 새로운 관계들을 쌓는 것이 가능은 할까. 의미가 있을까. 


나와 잘 지내고,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과거 직장에서의 선배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최소 한두 살쯤은 더 많았던, 동료들. 그들 중 몇 명이나 진심으로 나를 대해주었을까. 어떤 이유에서건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 겉으로만 좋게 좋게 대해준 사람들을 '내편'이라 믿고 헛다리 짚은 게 몇 번이었을까. 


폼나는 인생을 꿈꿔본 적은 그다지 없지만, 비루한 건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다. 자존심 상하고, 나보다 잘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한테 평가받으며 깎아내림을 당하고, 그로 인해 연봉이든 직책이든, 아니 심지어 직장에 적을 두는 것 자체든 좌우가 되는 지금의 상황은, 나로 하여금 그야말로 많은 반성을 하게 해 준다. '일'은 사람과 더불어, 또는 사람을 통해서 하게 되어 있는데, '사람'이 아닌 '일'에만 집중하다 어느 순간 바보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그런다고 별수 있나. 안되면 되게 만드는 수밖에


이럴 때 질문은 다시금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로 돌아온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무얼 뜻하는 것인지',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게 된다. 평소 내 기분대로 행동하는 것 대비 1.5배의 명랑함을 탑재하고, 목소리를 한 옥타브쯤 끌어올려서 누구든 상대의 성공을 높이 치하하는 것. 마치 골프장에서 평소보다 똑바로 공이 멀리 나가는 걸 보고는 영혼을 가득 담아 "나이스 샷"을 지치지 않고 외쳐주는 것. 그러다 누군가 타인이 힘들어하면 처음 몇 번은 '정말 힘들겠다' '도대체 세상은 왜 이리 야박할까'를 남발해주고는 좀 더 상황이 나빠지면 스르륵 사라져 주는 것. 내가 아는 두루두루 평판이 좋은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남 잘될 때 맛깔나게 기분 좋은 소리를 바꿔가며 해주다가, 너무 발이 깊이 빠질 것 같으면 조용히 거리를 두는 것. 모든 말과 행동의 준거점은 '이게 나와 내 가족 (또는 자식)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가 되는 것. 


남들이 계산하는 건 잘도 보는데 나 자신이 그러는 건 온몸에 털이 쭈뼛 설만큼 싫어하는 것. 내 몸이 부서져도 도울 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는 우직함이 있는 대신 배신을 당하면 상대가 슬쩍슬쩍 만회를 하려고 해도 쉽게 곁을 다시 내주지 않는 것. 요즘은 내가 가진 이런 모든 성격을 고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적당히 잘 지내고 적당히 도와주고 실속은 빵빵하게 챙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서바이벌 스킬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존버라도 하려면, 고통을 줄이고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맷집을 만들어둬야 할 테니까. 마음을 고쳐먹고, 그동안 내가 못하던걸, 이젠 되도록 '개조'하는 수밖에 없다. 바닥 찍고 100일 차까지 남은 기간은, '개조'에 집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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