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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칼립투스 Jun 24. 2020

상어로 가득한 바다에서 배운 것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곱 살 무렵까지 난, 무척 밝고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었다. 유쾌했고, 좌중을 휘어잡을 줄 알았으며, 마음먹으면 언제든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하지만 곧이어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유럽에서 5년을 살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 적응을 하며 겪은 인종차별, 문화적 편견, 그리고 반에서 꼴찌를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극혐의 낙인이 쌓여 지금의 우울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사춘기 시절 쓰디쓴 경험 탓에 어른이 된 난, 무얼 하든 죽을힘을 다해 자신을 몰아붙이곤 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남편 잘 만나 내조나 할 것이지 무슨 사회생활이냐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무쇠처럼 단단하고 돌처럼 무심해야 했다. 그렇게 난, 남들에게 너무나 인정받고 싶은, 자존심 상하는 것만큼은 절대 참고 넘어가는 법이 없는 뾰족뾰족한 사람으로 성장해갔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첫 글의 제목이었던 '나답게 사는 것'은 이런 나에게 평생 숙제이자 소원이었다. 상사의 사소한 지적에도 며칠씩 풀이 죽었고, 예의상 한 칭찬에 한껏 들떴으며, 시답지 않은 소문에 분노하곤 했다. 이렇듯 남들 말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나에 대해 더 이상한 말들이 돌곤 했으며, 타인의 평가에 따라 나의 행복감이 크게 좌우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당연한 귀결이었지만 이런 나를 감정적으로 조종하고 필요에 따라 밟아버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고, 서른 중반, 남들이 힘차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할 무렵, 난 인생의 저점을 향해 가라앉고 말았다. 이 무렵, 바닥을 뚫고 지하로 떠내려가는 도중 외부에서 스카우트되어 직속 상사로 오게 된 자는 제대로 뱀, 아니 차라리 상어라 불리는 게 마땅할 정도였다. 


그는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선이 가는 잘생긴 외모에 호리호리한 큰 키, 화려한 언변에 비상한 두뇌. 다니던 회사 사장님이 몇 년을 공을 들여 모셔온 인재 중에 인재였다. 워크 하드 플레이 하드 정신으로 중무장한 그는 회식을 하면 모든 사람이 완전히 취할 때까지 그만두는 일이 없었고, 골프나 게임에 있어서 아무리 사소한 승부라도 이기기 위해 반칙을 서슴지 않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더욱이 우린, 금융업 종사자였다) 그를 상사와 부하 관계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를 멋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나의 상사였고, 납작 엎드려도 모자랄 첫 3개월 동안 쓸데없는 직업적인 곤조를 부리다가 제대로 찍히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나를 배제했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았으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최대한 공개적으로 미칠듯한 모멸감을 주었다. 순진했던 난, 그럴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 일에 몰입했고 완벽에 완벽을 기했으나, 그런 내 노력과 관계없이 윗선에 소곤거리는 그의 수작에 놀아난 나는 어느덧 사내정치에서 완전히 밀리고 말았다. 멘털이 무너지고 나니 상어가 눈에서 흰자위를 보이기만 해도 실수가 늘었다. 공치사를 떠나서 누군가에게 그토록 악의적으로 매장당해본 적이 없는 난, 멀쩡히 눈을 뜨고도 그걸 막을 도리가 없었다. 아랫사람에게 가혹한 만큼 윗사람에게 상냥하고 유능한 부하였던 그에게 난, 그저 지그시 밟아 죽이면 그만인 벌레였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고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회사를 나오기까지 꼬박 3년이 더 걸렸다. 그 사이 무엇보다 너무 억울했다. 실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닌데, 일하다 중요한 사고를 저지른 적도 없고 나름대로 성과도 꽤 많이 냈는데, 한 사람의 잔인한 야망에 짓밟혀 무능한 만능 과장 포지션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몇 달 동안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아프게 곪고 쓰라린 상처를 들추고 또 들춰서라도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럼에도 깨달음은 쉽게 오지 않았다. 다시 내가 어떤 조직에 들어가서, 제 구실을 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날이 오긴 할까 싶을 만큼 심리적 타격이 컸다. 도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온 건지 분한 생각도 숱하게 했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상어는 나만 물어뜯었던 게 아니었다. 당시 주변 사람들 모두 살점 하나씩은 뜯겨나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남들이 심기일전해서 살점 하나 뚝 떼주고 툭툭 자리 털고 일어나는 동안 난, 어떻게 상어와 나름대로 평화로운 관계를 정립해갈지 전략적으로 생각하지 못했고, 타이밍을 놓친 다음에는 번번이 그에게 밟힐 빌미를 준 것이었다. 전문 용어로 '회복탄력성'이라고 했던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얼른 다시 일어나서 신발끈 고쳐 메고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되는 거였는데, 바닥에 계속 엎드려서는 왜 나만 이렇게 힘든지 고민하며 패배의식에 젖어버렸다. 상어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인데, 전세를 가리지 못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백기 투항한 이유는 지혜롭지 못한 나의 대처였다. 적당히 비위를 맞추고 아부도 해가며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잘 피했더라면 크게 다치지 않고 나름대로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도 이 점은 몹시 아쉽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난 깊은 바다에서 나와 작은 연못으로 터를 옮겼고, 상어한테 물어뜯긴 상처와 흉터 모두 봉합되고 아문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상어가 아닌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었다. 상어가 나를 불구로 만들도록 허용한 나 자신을. 내 어리석음을 용서하는 것. 용서는 언제나 고통스럽다. 


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시절이 그리울 만큼 격세지감이 생기고 나니, 다행히도 얻어가는 깨달음이 있다. 그건 바로, 돌이켜볼 때 너무도 미련하고 어리석었던 당시의 나 자신, 그리고 그런 나를 사정없이 해치고 모함하던 상어, 담 넘어 불구경하며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재빨리 상어와의 관계를 약게 잘 구축하던 주변 사람들 모두, 나름대로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수준에 비추어 행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는 거라고. 그래서 내가 예전에 괴로웠다면 그건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나의 최선이 과거 한때 내가 처했던 상황에 맞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그러니 예전에 내 팔 한쪽을 뜯어가 나를 정신적 불구로 만들었을지라도 그 상어를 내 인생에서 딱 그 시점에 만난 건 나름대로 뜻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 나 역시도 겸손한 마음을 탑재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길에 만난 누군가에게 내가 상어가 다시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걸 새기고, 또 반성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누굴 대하든 언제나 선의를 갖고, 진심을 다해, 나뿐만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 오늘도 난,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을 조용히 잠재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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