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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희 Sep 13. 2022

연휴 시작

다시 움직이는 거리, 안녕인사동

빨간날이 길지 않은 연휴지만, 목요일부터 들뜬 기분은 역시 회사를 가지 않아서겠지. 엄마와 함께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았다. 빨간 버스를 올라타 내달리는 도로에는 줄지은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쉼 없이 연결된 차들을 보니 내가 운전석에 있는 것처럼 갑갑함이 밀려왔다. 모두들 몇 시간에 걸쳐 고향에 도착하는 걸까. 출발은 비슷한 곳에서 도착은 제각각이겠지. 출퇴근길 도로 역시 비슷한 모습이지만, 연휴라는 생각에 저들의 트렁크에는 무엇이 실려있을까, 가족끼리 옹기종 때로는 티격태격 작은 공간 안에 구겨져 있을 걸 생각하니 차갑고 서먹한 도로가 미지근하게 데워져 보였다.


이럴 때 버스 전용 차선으로 달리는 버스는 누구보다도 빠르다. 밀림 없이 서울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남대문시장에서 좋아하는 호떡집에 줄을 서 호떡을 불어 먹고는 저번부터 가고 싶었던 갈치 골목으로 향했다. 명절 전이 어서 그런지, 문 닫은 집이 많았다. 어둡고 비좁은 골목에서 환한 갈지 집을 찾아 들어섰다. 주문은 빠르게, 식사는 정신없이. 이런 가게의 특징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 분위기가 정겹고 찌그러진 냄비가 조림을 더 맛있게 만들었다.


배부른 배를 두드리고 나니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게 보인다. 몇 분의 차이로 운 좋게 먹은 우리는 인사동으로 향했다. 한동안 태풍에 잦은 비에 주말에도 집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는데, 화창해진 거리를 오랜만에 누비고 다니니 선선한 바람과 뜨거운 햇살도 즐겁게 느껴졌다.


나는 집순이지만, 한 번씩 나오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씩 나올 땐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나와 그 활기를 들이마시기를 좋아한다. 조용한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사람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무리와 어울리는 것보다 그것을 지켜보며 혼자 즐기는 쪽이 좀 더 좋다.)


예전에 코로나로 모두가 휘청일 때, 엄마와 왔던 인사동과 삼청동은 그야말로 삭막하고 쓸쓸해 보였다. 양옆으로 줄지어 닫힌 가게들과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 무엇을 구경해야 할지 눈 돌리는 곳마다 건너뛰기 일쑤였다. 결국 무엇도 제대로 구경해보지 못한채 돌아가는길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인사동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 돌아선 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쩍거렸다. 코로나 이전 그 모습을 다시 찾은 듯 싶었다.

연휴여서 그런지 가족끼리 붙어다니는 무리가 많았고 젊은이들도, 외국인들도 저마다 그 작고 아담한 거리를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문열린 가게들이 그 앞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반가웠다.


"안녕인사동"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내려앉은 그늘덕분에 인사동 거리는 선선했다.(아직 한낮의 햇살은 너무 뜨겁다.)

엄마는 저번부터 부채살이 끼워진 손부채를 찾아다녔는데, 인사동에 오니 손쉽게 볼 수 있었다. 꽃이 그려진 손부채를 하나 구입하고, 손등이 가려지는 시원한 소재의 장갑도 구매를 했다.


우리는 저 멀리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하얀 강아지가 주인을 따라가는걸 서서 한참 구경하다가 길에서 봉사로 붓글씨를 써주시는 아저씨를 한참 내려다 봤다. 사람들은 저마다 관심있는 곳 주변을 서성이며 그 행위를 유심히 보기도 하고 힐끗 거리며 재빠르게 지나가기도 했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다니기 바빠보였고, 외국인들은 사진찍기에 신중해 보였다. 밟지 않은 문턱을 들락거리며 구경하다보니 꿀타래 가게 앞에 도착했다. 수천가닥의 줄을 뽑아내는 모습은 언제봐도 신기하다. 땅콩가루가 들어간 꿀타래 하나를 사들고 쉼터로 향했다.


꿀타래는 달달하기때문에 아메리카노와 궁합이 잘 맞다. 테이크아웃 카페에 들어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연하게 주문하고 문밖을 돌아본다.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무엇을 마시거나 먹거나 서있거나, 다리를 꼬거나 마주보며 뻐금뻐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할머니는 하얀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는 제자리를 빙빙 돌아 다니고, 지친 연인이 얼빠진 표정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연하게 한잔 나왔습니다."


 카페인에 취약하지만 커피를 좋아하기에 늘 '연하게'를 옵션으로 넣는데, 어떤이는 돈아깝게 왜 먹냐는 반응이고 어떤이는 그 샷을 자신에게 넣어달라고 한다. 친한 여자 실장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샷을 5개 정도 추가해서 마셨다. 보기에 시커면 아메리카노가 궁금해 한목음 마셔보았는데, 아주 쓰고 텁텁하고 몸이 아플 것만 같은 맛이었다. 그 한목음을 물에 섞으면 내 연한 아메리카노 한잔이 될 거 같았다.


커피를 받아 들고 돌아서려는데, 어르신 두분이 들어와 야무지게 커피 두잔을 시키고는 점원에게 말한다.


"다 되면 전화해요~"


그러고 휙 나가버린 두분의 뒤로 점원 표정이 당혹스럽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당혹스럽고 그 상황이 우스웠다. 계산은 하셨으니 커피는 나오겠지만, 전화번호는 모를테니 멀리 가시지 않으셔야 할텐데...


별걱정을 다하며, 엄마와 커피 한잔을 서로 나눠 마시며 꿀타래를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둘다 카페인에 취약하다. 알코올에도 취약하다. 그래서 엄마와 딸이다.


"지금 몇시지?"

"4시쯤 됐네."

"이 시간에 커피 마시면 밤에 잠 못잘텐데."

"괜찮아, 연하게 탔잖아."

"너 많이 마셔. 엄만 얼음 먹어야 겠다"

"역시 달달한걸 먹으니 기운이 좀 나네. 이거 먹고 집에 가자."

"그래, 버스편 잘 찾아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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