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하루에 한 번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돈다. 그리고 집에서 항상 몸을 움직이고 스트레칭을 한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너무 고맙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이 마음 한편에 안심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내가 회사를 가면 엄마는 아침을 먹고서 옷을 껴입고 크게 동네 한 바퀴를 돈다. 1시간쯤 걸리는 거리이다.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 외진 구석의 아파트 단지만 들어찬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1년 2년 살다 보니, 구석구석 유용한 장소가 많은 곳이었다. 우리 단지에서 길을 건너면 아파트 사이에 길게 늘어진 가로수 길이 나온다. 이 가로수길은 양쪽으로 나무가 울창하게 감싸고 있는데 4계절의 아름다움을 뚜렷이 보여주는 곳이다. 봄은 벚꽃으로 여름은 푸른 그늘로 가을은 노란 낙엽으로 겨울엔 조금 경사진 길 위에 하얀 눈이 어린아이들의 썰매장으로 변신한다.
봄에 벚꽃이 폈을 때 생각했다. 여의도 꽃길보다 더 이쁘다고.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예쁨이 가까이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엄마는 가로수 길을 왔다갔다 운동하기도 하고 외각 길을 크게 돌기도 한다. 외각 길 사이에 탄천이 흐르고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모양새의 나무와 잔디들이 있지만, 산책로로는 손색이 없다. 엄마는 혼자 큰 산책길을 돌다 1년 전쯤 이름 없는 고양이를 알게됐다.
처음 그 고양이를 발견한 후 엄마는 내게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름을 부르면 달려와(이름을 모르니 야옹이라고 부른다.) 다리 주변을 비비며 바닥에 배를 드러내며 애교를 부린다는 것이다. 배를 드러내는 고양이를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나는 주말에 엄마와 함께 산책로로 갔다.
야옹이는 엄마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강아지처럼 가까이 왔다. 그리고 처음 본 내 주위를 돌며 다리에 옆구리를 비볐다. 하얀 털에 검은 점박이가 듬성 새겨진 노란 눈의 아이였다. 태어나 길고양이가 내 다리를 비빈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고양이 등을 쓰다듬었다. 야옹이는 곧 바닥에 배를 뒤집으며 누웠다. 너정말 쉬운 아이구나, 아니 애교쟁이구나.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가까이하는 고양이를 보니 가슴이 조금 시렸다. 분명 주인에게 사랑받았을 고양이인게 틀림없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누가 길위에 내버려 둔 걸까.
작년 겨울 한 번씩 그곳에 들러 알게 된 것은 사랑을 베푸는 모든 사람들에게 점박이 고양이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벤치 옆에 추위를 대비하는 스티로폼 집과 담요, 물과 사료를 넉넉히 두었다. 주인은 없지만, 길위에 사랑받는 고양이가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생전 처음 고양이 캔과 츄르를 구입했다. 나는 회사를 가고 자주 가지 못하니 엄마가 가방에 한두 개씩 챙겨 고양이와 마주 칠때마다 주었고 그렇게 1년을 알고 지냈다.
산책길을 간다고 무조건 야옹이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유를 만끽하는 길고양이 녀석은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다. 겨울엔 햇살 아래 웅크린 녀석을 보고, 더위엔 물가 바위에 올라가 앞발을 담그고 노는 녀석을 봤다.
봄, 여름, 가을은 사실 녀석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가끔 엄마에게서 듣는 녀석의 안부 정도 들을 뿐. 하지만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면 녀석이 꽤나 신경 쓰인다. 물론, 고양이를 좋아하는 일부 주민들이 좋은 거쳐를 만들어 주긴 했지만, 고양이는 추위를 잘 탄다는 고양이언니(지인)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추위에 얼어 죽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긴 했다.
며칠 전 엄마가 보이지 않던 야옹이가 다시 잔디밭에 웅크린 모습으로 가끔 보인다고 했다.
올겨울, 유독 춥다고 느끼는 나는 하루 월차를 내고 이불 안에 들어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는 겨울은 따스하고 화창했다. 보일러가 부지런히 돌아가는지 집안은 겨울을 느낄 새가 없었다. 배를 채우고 누워 뒹굴거리는 내게 엄마는 동네 한 바퀴를 하자고 했다. 몸이 무거웠지만, 고양이의 근황이 궁금해 슬슬 엉덩이를 떼었다.
밖은 혹독했다. 애벌레처럼 꽁꽁 싸맨 몸은 무사했지만, 훤히 드러난 이마가 모든 바람을 이겨내고 있었다. 귀 두쪽이 얼얼해지기 시작했다. 하루걸러 내리는 눈이 꽝꽝 얼어 바닥은 미끌미끌 했다. 종종걸음으로 용을 쓰며 걸어가는 산책길이 줄어들지가 않았다. 얼음 사이 드러낸 시멘트 바닥을 찾아 걷다 보니 저 언덕 햇살 아래 웅크린 야옹이가 보였다. 엄마와 나는 크게 야옹이를 불렀다.
야옹이는 우리를 보더니 '야옹' 한마디를 하고 우리 쪽으로 내려왔다. 엄마는 주머니에서 츄르를 꺼내 익숙한 듯 짜주었다. 참치 냄새가 솔솔 나는 츄르 2개를 허겁지겁 핥아 먹은 야옹이가 내 다리 옆을 비비더니 어김없이 드러누워 배를 보였다. 볕을 쫴서 그런지 털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한동안 우리는 야옹이의 친구가 되었다가 작별 인사를 했다. 보통은 작별 인사를 하면 야옹이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오지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었다.
그런데 이날은 엉금엉금 걷는 내 뒤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왔다. 나도 녀석이 신경 쓰여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때 야옹이의 보금자리가 나왔다. 야옹이는 보금자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느 마음씨 따뜻한 분이 야옹이 집 앞에 비닐 커튼을 만들어 주어 집은 추워 보이지 않았다. 사료도 사료 통에 충분했고, 물이 담긴 물그릇을 보려는데 녀석이 그릇을 건드리며 몇 번이고 야옹을 외쳤다.
추위에 물그릇 속 물이 꽝꽝 얼어있었다. 아마도 목이 마른데 물을 먹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엄마와 나는 몇 번이고 물그릇을 맴돌며 야옹을 외치는 녀석을 보고 물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머니에 든 건 휴대폰뿐이고, 주변에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5분쯤 떨어진 곳에 편의점 뿐이었다. 길이 미끄러우니 엄마를 남겨 두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꽝꽝 언 계단에 몇 번 미끄러질 뻔하며 다급한 마음과 따라주지 않는 몸이 물을 사러 가야겠다는 집념 하나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다녀왔을 거리를 2배쯤 걸려 물 한 통을 손에 쥐고 다시 녀석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야옹이는 웅크리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기지개를 한번 길게 펴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꽝꽝 언 물그릇에 얼음을 바닥에 쾅쾅 내리찍어 덜어내고 시원한 물 한 사발을 채워 넣었다. 야옹이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더니 이내 코를 박고 물을 할짝할짝 쉼 없이 마셔댔다.
너 정말 목이 말랐구나. 똑똑한 녀석이네.
고생스럽게 사 온 물 한 병을 맛있게 비워내는 모습을 보니 힘듦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야옹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목적을 다 이룬 야옹이는 더 이상 우리를 따라오지 않았다. 의자 아래 엎드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올해가 가기 전 야옹이를 만날수 있어서, 물그릇을 채워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엄마는 이제 작은 물병도 함께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올 추위도 녀석이 잘 견뎌내 주길, 봄은 생각보다 이르게 올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