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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Here 세은 Apr 20. 2022

4월의 어느 봄, 제주살이의 일과

텃밭, 시장, 낮잠, 커피 그리고 쌍둥이

아침에 눈을 떠 거실 창문을 열고 마당을 살핀다.

바람에 날아간 건 없는지,

새로 심어놓은 식물들은 무사한지.


애교 가득한 아이들이 노오란 버스에 타고 간 후

거실엔 인센스를 피워놓고

마당에 나가 텃밭에 물을 준다.

흙과 친하지 않았던지라 물을 주다

식물을 오히려 죽이거나,

어젠 멀쩡했던 꽃이 하루 만에 고개 숙이기도 하지만

매일 아침 찾아가 인사한다.


간단한 반찬에 밥을 먹고 밀린 집안일을 한다.

음악을 틀어놓지 않아도

밖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꽤 시끄럽다.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향한다.

육지에서 온 제주 새내기답게

삼촌들에게 넉살 좋게 인사하며 캐묻는다.

들깨 색깔이 왜 다른지, 버섯 오래 먹는 방법까지

귀찮게 자꾸 물으면

슬슬 묻지도 않은 것까지 알려주시곤

아끼던 요구르트에 빨대 하나 꽂아주신다.


그렇게 시장에서 사 온 재료들로

내 가족의 반찬들을 만든다.

특별한 양념이 없어도

물에 데치거나 볶는 것만으로 충분히 깊은 맛이 난다.

한라산에서 캐온 버섯이라는데 뭔들.


햇살 받으며 돌아다니니 슬슬 몸이 나른해진다.

요즘 아님 언제 즐기겠나 싶어

작정하고 마당으로 나가 잠시 눈을 감는다.


사실 매 순간 매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던 난

낮잠과 절대 친하지 않았다.

'이 아까운 시간에 하나라도 더 해야지' 란 생각에

마라톤처럼 계속 움직였는데

요즘 낮잠을 일부러 자보니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래서 스릴 있다.


해가 쨍쨍한 오후, 스쿠터를 끌고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 간다.

시속 20km가 최대속도인  할머니용 스쿠터라

뒤따라오던 차들이 알아서 스윽 비켜간다.

혹여나 나로 인해 피해를 줄까

또는 누가 빵빵대면 어쩌나 싶은 걱정 따윈 없다.

다들 그렇게 서로 조금씩 비켜가며 맞춰 살아간다.


많이들 다니는 해안도로보다 안쪽 골목이 좋다.

도저히 알아듣기 힘든 제주 할머니들의 대화도

길거리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들도

조용하고 따뜻하다.

바다가 보이는, 커피가 너어무 맛있는,

음악이 좋은 카페에서

책을 핑계 삼아 분위기를 즐겨본다.


그렇게 늦은 오후가 되면

나의 비타민들이 돌아온다.

절대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다 같이 스쿠터를 타고 바다로 향한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다 하루를 마무리한다.

저녁이 되면 지치고 힘들어 한숨이 가득이었는데

요즘은 다음 날이 기대된다.



내일은 어떤 설레는 쉼을 해볼까


불현듯 시작한 제주의 삶이

생각보다 길게 오래 매일 설렌다.


이 행복이 나의 것이 맞는지,

내가 누려도 되는 건지 싶어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매일 멈추는 연습을 한다.

생각도, 마음도, 몸도 행동하다

잠시 멈춰본다.


감사한 매일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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