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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렌더 이야기꾼 May 12. 2020

파과 - 소멸과 존재 사이의 파과

독전 포인트



쑥쑥 잘 읽히는 글만큼 기분 좋은 것은 없다. 다채로운 묘사와 분명하고도 따뜻한 메시지는 구병모 작가의 다음 글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야기 속에서 세 가지 지점이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 나눠서 끄적여 봤지만 모든 생기를 잃을 때를 기다리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방역업자로서의 삶

글에서 등장한 방역은 멸균과 소독을 의미하지만 그 대상이 해충과 질병이 아니다. 주인공 조각의 직업인 이 방역은 생의 제거를 의미한다. 청부업을 그들만의 용어로 쓰는, 일종의 은어인 셈이다.


방역업자로써 조각의 삶은 그녀를 정의내림한다. 방역업은 조각으로 하여금 남을 소멸시키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소멸되지 않는 자신을 자꾸만 상기시키는 과정이다.


같은 회사 식구로써 투우가 자꾸만 조각을 건들이지만 조각에게 있어 투우는 그렇게 크게 차지하는 부분이 아니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은퇴를 앞둔 방역업자인 조각에게는 대부분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강박사와 류

조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방역작업에서 없어진 사람들도 아니고, 자신에게 방역을 지시한 고객들도 아니었다. 투우도 아니다. 바로 방역업으로 다친 몸을 끌고 가서 만나는 병원의 젊은 의사였다. 강씨 성을 가진 그는 우연히 심하게 다친 그녀를 치료해주게 된다. 원래는 장 박사가 전담으로 방역업자의 치료를 도왔지만 자리를 비운 새벽시간에 둘은 우연찮게 만난 것이다. 피흘리는 조각을 별다른 말없이 치료해준 그는 평범한 페이 닥터이자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노부모와 어린 딸을 책임지는 그는 그만의 사정으로 병원에 새벽까지 남아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사정이 있는 조각을 별말없이 치료를 해준 것이다.


강 박사와의 새벽 조우 이후에 강 박사에게 자꾸만 시선이 감을 느끼게 된다. 조각의 변화는 감정의 변화이자 큰 약점이 된다. 감정 없이 깔끔히 처리하는 조각에게 은퇴시기를 앞당겨 준 계기일 것이다. 나이가 있기에 은퇴가 낯선 것이 아닐테지만 그래도 끝까지 방역을 하는 것은 지난 날의 그녀와 맞닿아 있는 이유가 있어서다.

처음 방역을 시작한 것은 그녀의 첫사랑인 ‘류’ 때문이었는데, 류는 조각의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자 조각의 방역적인 재능을 알아봐준 사람이었다. 그의 임신한 아내가 방역업으로 희생 이후에도 조각과 류는 동업자로써 함께했다. 류를 향한 마음이 자신을 구해준 자를 향한 고마움도 아니었고, 동업자를 향한 존경 역시 아니었음을 조각 자신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점차 커져가는 마음은 방역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살아남은 조각은 류를 기억너머로 지워버린다.


강 박사에게 시선이 자꾸 가는 것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생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강 박사의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느껴지는 것들은 조각의 기억 저편 속, 언젠가 느꼈을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류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강 박사 가족이 일상을 사는 것과 류의 기억이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각은 균열을 느낀다.

강 박사네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은 보편적인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그에 반에 류는 그녀가 살아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로써 개인적인 의미의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의미가 어찌됐든 조각은 이미 노쇠한 몸뚱아리와 자꾸만 생으로 회귀하는 정신으로 마지막을 자꾸만 되새긴다.


  투우와의 싸움

투우가 강 박사 딸인 ‘해니’를 납치한다. 해니를 구하러 가면서 조각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듯이 주변을 정리한다. 자신의 애완노견인 ‘무용’도, 방역업도 정리하고 해니를 찾으러 간다.

여러 젊은 이들과의 싸움에서 크게 밀리지 않고, 투우와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마치 자신의 존재가 해니를 지키기 위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격투 끝에 투우의 마지막을 보게 된다.


  파과가 주는 생각들


자신의 몸이 이순간만큼은 순전히, 투우가 아이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존재한다고 느낀다  321p


강 박사의 노부모의 과일가게에서 사온 복숭아는 조각의 냉장고에서 흐물어터진다. 글의 제목인 ‘파과’는 그런 상태의 과일을 의미한다. 충분히 익어 과일으로 가치가 정점을 찍은 후의 흐물거리는 과일. 조각이 냉장고 앞에 쭈그려 앉아서 복숭아 잔해를 치우는 장면은 조각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죽음을 지켜보는 조각은 류의 아내도, 류도, 투우도 모두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직업도 고객님들의 의뢰인을 죽이는 일이니 죽음은 조각의 삶의 일부가 되버린지 오래 일 것이다. 어쩌면 조각이 파과일지도 모른다. 또한 조각에게 생이란 스쳐지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반짝이는 생의 순간이 그러했듯이 해나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생의 반짝임을 추억하고, 지키고픈 마음일 것이다.


그런 조각은 모든 생기를 잃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들은 빛났다가 사라지기에 자신도 그렇게 사라져 갈 때 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파과>는 생기를 잃은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라는 생각이 든다. 찰나의 생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인 것이다.


다 읽고 나니 역설적인 의미로 조각만큼 생에 간절한 사람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주어 온 노견의 이름도 ‘무용’이다. 쓸모 없는 개에게 마음을 쓰는 조각의 모습은 조각의 생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마지막에 조각의 꾸며진 손톱이 나온다. 파과로써 생을 갈망하는 조각이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각을 떠올리면 여느 할머니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떠오른다. 굳은 살이 베긴 온 몸도 떠오른다. 하지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일가게에서 복숭아를 집어 드는 할머니는 생의 찰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나는 파과가 낯설지가 않다. 소멸과 존재 사이에 서있는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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