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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렌더 이야기꾼 Sep 03. 2020

한국의 <존 말코비치 되기>, <김씨 표류기>

해외버전 과 한국버전_ 아마 분명히 관객은 모르는 실무자들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 한국 포스터 분위기. 제목은 한국버전이 나은 것 같다.  

1.    김씨 표류기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를 아는 가. 스파이크 존스가 만든 상상력이 돋보인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는 7층과 8층 사이의 사무실에서 우연히 존 말코비치의 머리 속에 들어가는 방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독특한 컨셉과 존 말코비치를 비롯한 존 쿠삭, 케서린 캐너, 카메런 디아즈 등의 배우들의 호연으로 재밌게 볼 수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작가 혹은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이 주는 즐거움은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즐거움들 중 하나이다. 손 빠른 직원을 구하는 광고를 보고, 7층과 8층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멈춘 엘리베이터를 빠져 나와 반쯤 허리 세워 걸어가는 크레이크의 모습이나 존 말코비치가 존 말코비치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는 방에 들어가게 되어 수 많은 존 말코비치들을 보여줄 때에 피아노 위에서 농염하게 누워 ‘존 말코비치~’를 말하는 모습은 큰 재미이다. 


외국 작품에서는 종종 이런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은 볼 수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현하는 상상력들은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큰 즐거움이고, 재밌는 세상이다. 니콜라이 고골의 <코>라는 소설 속에서는 코를 잃어버린 남자가 등장하고, 앤디 라일리의 <양아치 아빠의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동화에서는 말도 안되는 유쾌한 거짓말들이 이어진다. 이런 것들은 개인적으로는 광산 속에 있는 광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광부들은 어떤 광맥이 흐르는 지 모른 채 땅굴을 판다. 수많은 영화와 책과 문학 장르들을 헤매다가 이러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나는 날에는 마치 다이아 광맥을 찾은 광부처럼 기쁘다. 촘촘한 서사 구조, 눈을 사로잡는 미장센, 머리를 치는 통찰 이런 것들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끼게 하지만 가끔씩 만나는 이런 작품들은 나에겐 다이아 광맥과도 같다. 


   처음 <김씨 표류기>를 보았을 때는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영화관이 아닌 방구석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포스터를 보고, 나 역시도 대부분이 느꼈던 당혹스러움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 별 거 없을 것 같은 영화, 하지만 더 별 거 없던 나의 하루가 만나 이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광맥을 찾았다. 


이 이야기는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남자 김씨가 저세상이 아닌 밤섬에서 눈을 뜨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남자 김씨는 다시 육지로 건너가려고 시도를 하지만 실패하고, 다시 죽으려 하지만 또 실패하고 일단 살아 보기로 한다. 한강의 무인도에서 표류하는 남자 김씨를 우연히 발견하는 여자 김씨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어간다. 그렇다. 이 영화는 쓰레기 더미에서 살아가는 남자 김씨의 에코생존기이다. 
 
 

2.    옥수수가 뭐 길래?

<김씨 표류기>에서는 두 명의 김씨가 등장한다.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 이 성이 다른 김씨들은 각기 다른 장소에 갇혀 있다. 한명은 섬에, 한명은 방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표류하는 곳은 달랐지만 표류했던 이유는 같았다. 알 수 없었지만 방대한 빚에 시달리던 남자 김씨, 알 수 없었지만 얼굴의 상처를 가지고 있던 여자 김씨. 둘은 서로 다른 곳에서 갇혀 있었고, 서로 다른 이유이겠지만 사람이 없어서 덜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남자 김씨의 생존기는 유쾌했고, 여자 김씨의 생존기는 처절했다. 여자 김씨의 환경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환경인 것처럼 보인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아직 퇴직을 안 하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쓰레기의 지분이 막대한 방에서 잘 곳이 없어 옷장에서 잤지만 방은 꽤나 넓어 보였다. 그리고 소니 사의 카메라를 가지고 달을 관찰하는 취미까지. 여자 김씨의 생활을 글자로 나열하면 꽤나 나쁘지 않은 삶처럼 보인다. 그리고 만보를 채우는 운동까지 생각보다 삶의 균형이 맞춰진 삶이었다. 하지만 여자 김씨의 삶은 다른 얼굴 뒤에서 사는 삶이었고, 철저한 김씨의 시간표는 오히려 김씨를 방 안에 갇히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았기에 여자 김씨는 밤섬에서 표류하던 남자 김씨를 발견하게 된다. 

생각보다 배우 려원의 연기가 좋았다. 역시나 선입견이었는 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방 안의 갇힌 자의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감탄했다. 진짜로 시나리오를 뚫고 나온 듯한 캐릭터였다. 특히나 여자 김씨의 감정선을 잘 살렸다고 생각이 된 장면들이 몇 개 있는 데, 가장 큰 임팩트는 ‘옥수수 씬’이 아닐까 싶다. 남자 김씨의 생존기를 카메라 너머로 대리 경험 그리고 멀리서 응원하며 여자 김씨 역시 같이 버티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것을 잘 표현한 장면이었다. 엄마에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게 문을 열고 말을 거는 모습이 눈에 남았다. 엄마 눈도 못 마주친 상태로 ‘옥수수 키우고 싶어. 씨앗이나 화분 같은 거 사줘’ 라고 말하는 모습은 나이 먹고 남들처럼 독립해서 잘 사는 것에 실패한 은둔형외톨이의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처절한 여자 김씨의 생존의 현장이었다. 엄마 역시 그것을 알기에 낯선 딸의 육성요청에 알겠다고 말한 것일 터이다. 


사담이지만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같은 평가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 나이대에서 능히 해냈어야 할 지점에 도달하지 못해서, 남들만큼 잘 해내지 못해서, 부모 고생을 시켜서 그들을 욕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서너걸음이면 열 수 있는 문을 열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영화라서 그런지 몰라도 여자 김씨도 쓰레기 방에서 손님처럼 지내면서 혼자만의 처절한 생존을 이어갔다고 생각이 들었다. 남자 김씨의 답장에 중력이 가벼워진 여자 김씨의 모습을 보면서 평소의 여자 김씨의 하루는 보통의 사람들, 남들처럼의 그 남들보다 두어배 무거운 중력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자 김씨의 옥수수 요청에 나는 눈물을 훔쳤다. 여자 김씨의 생존을 응원하면서. 옥수수는 여자 김씨의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3.    짜파게티가 뭐길래?

남자 김씨도 여자 김씨 못지 않게 처절했다. 차마 목을 매지 못해서 살기로 한 남자 김씨는 이제 아무 버섯이나 먹고, 사루비아의 꿀을 빨면서 살기 시작한다. 독버섯인지 알게 무엇인가. 방금 죽을라 했는데. 그런데 남자 김씨의 생존기는 유쾌했다. 여자 김씨와는 다른 식의 처절함이 가득했는데 연출 덕분에 오히려 유쾌하게 다가왔다. 인상 깊은 장면은 전세대출 7년차 드디어 장만한 남자 김씨의 첫 집이었다. 오리 배 안에서 시작한 내집살이는 정겨웠다. 남자 김씨가 살아보기로 결심하자 쓰레기 밖에 없는 섬은 사람 사는 섬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압권은 페트병을 개조해 만든 신발 밑에서 발견한 짜파게티 봉지였다. 그 안에 있는 가루 소스를 보면서 남자 김씨는 희망을 꿈꾸게 된다.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남자 김씨의 새집인 오리배에 섬의 새들을 똥만 싸댄다. 남자 김씨의 머리 속에서는 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다. 똥 떨어지는 소리 속에서 남자 김씨는 또 하나의 희망을 발견한다. 새똥 속에 섞여 있을 지 모르는 씨앗을 기대해본다. 남자 김씨의 무모한 도전은 제법 그럴싸하게 이어진다. 밭을 갈고, 똥들을 심고, 소중하게 키워 나간다. 그리고 그 모습은 여자 김씨의 카메라 속에서 생중계 된다. 여자 김씨도 또 다른 쓰레기 속에서 남자 김씨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남자 김씨의 희망을 응원하게 된다. 이 둘은 모랫바닥과 와인병으로 그들에게 맞는 템포로, 조심스럽게 소통한다. 신기하게 새들의 똥 속에서는 가지도 있었고, 당근도 있었고, 오이도 있었고, 옥수수도 있었다. 남자 김씨가 옥수수를 발견하고 포효하는 순간, 여자 김씨도 옥수수를 키우게 된다. 


옥수수 하나에 울고 웃지만 어느 새 보는 이도 이들의 처절한 생존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들의 삶에서 생존이 싹트게 되자 이들이 남들처럼 살 것 같은 희망을 걸어보지만 태풍이 들이 닥치자 사람 사는 것처럼 꾸려 놓은 섬과 방은 다시 쓰레기 더미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들의 또 다른 생존을 보게 된다. 


두 김씨의 조우

4.    김씨들의 생존기

<존 말코비치 되기>가 재밌었던 이유는 특이한 설정들이 이야기와 잘 버물려져 동화적 감상을 가능케하기 때문이다. 반쯤 세운 허리로 7층과 8층 사이에서 일하게 된 크라이프의 모습이나 존 말코비치의 머리 속에 들어가는 방을 발견한 것까지 너무도 유쾌한 상상력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설정이 결국 타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연결되어서 감동이 된다. 성공한 배우의 머리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이 웃기지만 마냥 웃기기만 하지 않는다. 


이러한 독특한 재미는 한국영화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김씨 생존기> 안에는 그럴싸하게 살지 못했던 김씨들의 그럴싸한 생존기를 보면서 비슷한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럴듯하게 쓰레기를 재사용하는 모습을 통해서 뜻밖의 에코라이프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두 김씨들이 저마다의 방에서 나오는 이야기라서 재밌었던 것 같다. 섬과 방에서 숨어버린 두 사람이 그들 만의 템포로 서로 소통하는 것도 너무 좋았다. 뻔한 멜로가 아니라 서로에게 용기가 되는 이야기라서 뻔하지 않은 감동이 있었다. 


한번쯤 갇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저마다의 표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영화이고, 또 쓰레기 속에서 우스꽝스럽게 살아남는 김씨의 모습은 제법 재밌다. 


다음 포스트까지 건강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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