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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라 Mar 21. 2022

사수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나보다 먼저 퇴사한 사수

직장에서도 선배, 퇴사에서도 선배 


다시 들어온 정규직 직장.

나는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좋은 인생 선배이자 사수를 만났다.

그러나, 사수가 있었는데 곧 없어졌다. 

내가 들어와서인지 아니면 때가 된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사수는 곧 내게 힘내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퇴사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있던 사수가 없어져 내가 그 빈자리를 채워야 했을 때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선택을 응원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꽤 사수를 잘 따랐었다. 

나와 비슷한 경로로 이 회사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 이전에 같은 교육기관에서 직무 교육을 받은 적 있어서 혼자 내적 친밀감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말도 안 될 정도로 혼자서 많은 일을 했는지 옆에서 직접 봤기 때문에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사수가 퇴사를 말했을 때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현재 사수의 자리에서 사수가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밟고 있는 입장에서 사수가 더 일찍 퇴사를 결심하지 않고 그 시간을 버텼는지 대단하다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성향의 차이과 목표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누구는 이 자리의 일이 잘 맞고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해본 사수와 그리고 나 자신은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의 사수도 나도 앞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성이나 자신의 가치관을 이루기 위해서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사수가 가기 전에 했던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팀장님들은 사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다시 뒤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잘 버텼고 앞으로 더 많은 기회들이 있을 것인데 왜 그만두는 것이냐고.


모든 것을 다 말해주지 않았지만 사수는 자신은 아직 자신은 젊다고 생각하고

그 젊음의 시간을 하루 종일 혼자 사무실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밖에 더 많은 것들이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혼자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힘들었던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회사 자체와 직무의 특성상 발생한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 업계라는 밖에서 보면 정말 흥미진진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고 기획 특성상 프로젝트의 처음과 끝을 맡으며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으나 이를 결과로 눈에 보이기까지는 보통 2년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생각보다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느린 프로세스를 경험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성취욕구가 강하고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결과에 대한 막막함과 답답함이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나와 사수는 아마 이러한 관점에서 당장의 성취와 변화에 목말라 퇴사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사수가 그만둔 이후 팀장님들은 내가 사수를 따라 그만두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인지,

꽤 오랜 시간 정규직 직장의 소중함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 적이 있다.

사실 그 말들도 다 맞는 말이었다. 

프리랜서로 살다가 정규직 직장에 다닌 지금 자신의 삶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소중한지 말씀하시는 팀장님을 보며 그런 삶에 진심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안정된 삶에 진정한 만족을 느끼는 사람처럼

불안정한 삶에 오히려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 또한 있다.


사수가 후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퇴사한 것을 아닐까

나의 경우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나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전자 같은 사람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었다. 이 때문에 계속해서 퇴사를 반복하면서도 다시 취업을 했었다.  


나의 사수는 그러나 자신의 나이를 오히려 어리다고 표현했고,

그런 나이에 불안정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며 퇴사했다. 

남들보다 대학에 늦게 들어가면서 항상 주위에 나보다 어리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사람들만 있어서인지

은연중에 나이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던 나에게는 그의 선택이 나의 나이에 대한 압박감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 아직은 조금 더 불안정하고 끊임없이 변화가 오는 길을 가도 되지 않을까?

몇 년 뒤 그 길이 끝이 날수도 아니면 몇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나도 사수와 마찬가지로 그 길을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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