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퇴사, 긍정적인 끝맺음
끝은 항상 어렵다.
최근 들어 생각하는 것은 시작보다 끝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시작은 대부분의 경우 설렘과 기분 좋음이 동반될 수 있다.
시작하는 당사자와 그 시작을 함께하는 동반자 모두에게 말이다.
그러나 끝은 이야기가 다르다.
때로는 불안함이 때로는 걱정이 동반되며
혼자 끝을 냄에도 그 끝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마냥 홀가분함만을 느낄 수는 없는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비겁하게 끝을 맺은 적이 있다.
아직도 미성숙했던 대처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당시 꽤 인기 있던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을 하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매일 다리가 퉁퉁 부어 집에 돌아왔고 혹시나 매니저님께 혼나지는 않을까 하루 종일 긴장한 탓에 매일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한 두통에 시달렸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자 한 통으로 퇴사를 해버렸다.
심지어 이유도 솔직하지 못했다.
그때는 끝을 낸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컸고 어떤 식으로 끝은 내야 하는지 그 방법조차 몰랐다.
그래서 가장 쉬운 선택이 회피와 외면을 선택했다.
나는 쉽게 도전하는 대신 그만큼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시작은 아름다웠지만 끝은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도망치듯 그만두거나 함께 하는 상대방과 기분 좋지 못하게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예전에는 끝은 정말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이전의 관계들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좋지 않은 끝은 좋지 않은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뒤로 나이가 점점 들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끝'을 좋게 맺는 것이다.
그래야 또 다른 진정한 '시작'이 있을 수 있으니까.
얼마 전,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퇴사 선언을 했다.
사실 입사 당시 사수가 얼마 되지 않아 퇴사했고 그 이후, 혹시나 같은 절차를 밟지 않을까 하며 팀장님이 나에게 이야기해준 것들이 꽤 많은 부담감을 주었었다.
버티는 것의 중요성. 인내심의 중요성.
정규직의 소중함. 앞으로 맡게 될 프로젝트의 중요도 등을 말하고
먼 미래에 있을 프로젝트까지 나와 함께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팀장님 앞에서
퇴사를 말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 회사라는 조직에서의 끝은 나름의 절차가 있고 이를 잘 따르기만 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
예를 들어 일정 기간의 텀을 두고 퇴사를 하거나 충분히 인수인계를 하고 그만두는 것 등
따로 퇴사의 구체적 이유나 설득의 과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직 안에 사람 간의 관계 또한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끝을 맺는 방법이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이번 회사에서 나의 끝은 생각 외로 수월했고 예상보다 따뜻했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인데 거절을 말했을 때 상대방의 바뀐 표정과 분위기를 보는 것을 참 어려워한다.
그래서 항상 끝을 내는 것 또한 어려워했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참 많은 시작과 끝을 경험했다.
그 덕분에 이제는 그 끝을 똑바로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두 분의 팀장님이 있다.
다른 회사와 조금 다른 구조로 파트 별 팀장님이 다르고 그 밑에 내가 있는 구조라 한 명이 빠지게 될 경우 그 빈자리가 큰 편이다.
또한 촬영 등 힘든 일을 함께 진행하며 짧은 시간 안에 많이 가까워진 편이었다.
이 때문에 회사에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진로에 대한 생각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 등을 많이 공유한 편이기도 했다.
보통 퇴사를 하거나 하던 일을 그만둘 때 대충 둘러댈 수 있는 핑계나 아니면 '개인 사정'등이라는 답을 내놓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의 경우 꽤 솔직하게 이야기를 다 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의외로 걱정이나 우려 또는 부정적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팀장님들이
충분한 이해와 격려를 보내주셨다.
"그렇게 말하는데 잡을 수가 없네"
"S 씨에게 더 잘 된 일이니까 응원한다."
"혹시라도 다시 돌아오게 되면 꼭 연락해달라"
심지어 내가 새롭게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서 도움을 주겠다는 말까지 들어서
처음에는 얼떨떨했었다.
내가 혹시 일을 못해서 그만두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의심도 했었다.
그러나 팀장님들은 내가 말한 퇴사의 이유가 납득이 되었고 충분히 이해 가서 응원하고 싶다는 말을 해주셨다. 이렇게 따뜻하고 환영받는 퇴사라니
내가 매번 꿈꾸던 이상적 퇴사를 경험하니 또 다른 시작에 대한 자신감이 붙을 수 있었다.
매번 조금 부정적 끝을 맺고 다시 시작을 하게 될 때
나의 새로운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걱정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의 경우 끝을 좋게 마무리하니 나의 시작에 대한 확신이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다니던 회사와는 작별을 했으나
그 속에 있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퇴사를 할 때 또는 어떤 일을 그만둘 때 무조건 솔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숱한 핑계와 거짓으로 끝을 낸 적이 있었고
다시는 못 볼 사이가 될 정도로 울면서 마무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자신의 책임은 끝까지 다하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고려하며
따뜻하게 끝맺음을 낼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