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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홀 May 10. 2020

(소설과 수필 사이)시작과 끝, 과연 무엇이 먼저일까?

소설가로서의 시작을 소설로 써내다. 그렇게 되기를 꿈꾸며.

30

드디어 아무 향방을 논할 수 없던 시작이 순항하여 끝이라는 목적지에 무사 도달했다. 하지만 언제나 목적지는 출발지가 되는 법으로, 

M에게 시작과 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 순환의 고리를 궤도로 하여 공전하는 것이었다. 

30살의 M은 끝의 시작을 다시 떠올렸다.



27

무슨 일이 닥쳤는지 27살의 M은 무기력한 상태로 아치형 돔으로 느껴지는 하늘을 관광객처럼 올려다보았다. 왜 자신만 제 3자로, 객(客)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지 M은 영문을 몰랐다. 

'인간의 존엄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하게 주어지는 천부적 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하늘 아래 태어난 똑같은 인간으로 볼 수 없는 것인가?'

철학적 사유를 즐겨했던 M에게 이러한 의문이 든 것은 직업병 엇비슷한 '취향적 사유병'이라고 보면 되었다. 안타깝게도 스스로에게는 숭고해 보였지만 현실은 이상과 환상 속에 갇힌 돈키호테였다. 


이내 M은 고개를 떨구어 비장한 글자를 타이핑하던 노트북의 파란 화면과 하얀 글씨, 속칭 블루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봤다 싶었는데 금방 쳐다본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의 조합이었다. 부유하는 구름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으면 하는 부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을 느꼈다. 전날 밤에도 3시간 내외의 잠을 자며 글을 썼으니 그도 그럴만했다. 그에 비해 결과는 무참한 퇴짜였으나 애써 개의치 않는 M이었다. 



대학생

아마 그가 글이라는, 구체적으로 문학이라는, 파고들어 소설이라는 예술 내지 행위에 빠져든 것은 대학생 때 썼던 어린 냄새가 자욱한 일기와 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껏 김구의 백범일지나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감명받은 대학생 M은 시기상 독립투사는 못되더라도 문학투사는 되어야 한다는 방대한 목표를 품었다. 특별한 재능으로 무장되진 않았으나 예부터 지녀온 망상과 철학의 경계 사이에 존재하는 사유력만큼은 무시못할 정도로 쌓여있다고 자부했던 M이었다. 


자못 쉬이 꿈을 놓쳐버릴까 조심스러워 M은 가볍게 끄적거릴만한 일기를 처음 선택했다. 매일 쓰기엔 다소간의 의지박약 문제가 걸쳐있어 한계를 인정하고 기억나는 대로 공책을 펼쳐 채워갔다. 몇 자 안되더라도 그럴싸한 창작의 고통을 겪었다는 말도 안되는 오해를 필두로 한 걸음씩 내딛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대체로 회의(疑), 혹은 회의에 대한 회의(懷疑)가 태반이었는데, 이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존감 결여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M은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을 안타깝게도 세뱃돈의 맛을 알아버린 시기부터 뼈저리게 깨달았고, 자신도 그 틀 안에 갇혀있는 것은 누구나와 매한가지라는 것도 자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여태 이어져 와서 글쓰기에도 신물나게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바는 이기심에 어긋난 마음가짐을 갖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글의 이곳저곳에 반영되었다.


그렇게 일기를 써내려 간 후로 M은 도전에 대한 열망에 휩싸였다. 일기도 여러모로 미래를 한 조각씩 담아내는 마땅한 그릇이었으나 더 큰 그릇을 탐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였다. 사실 M은 직접 완성한 소설을 탐닉하는 것이 오랜 뜻이었지만 그러기에는 자신감이 필요했고 마중물로 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시는 실제 겪은 것을 담담히 적은 일기의 담백함보다는 간단치 않았었다. M은 그래서 더 기뻤다. 아마 근력 증진을 위해 근육을 찢어가며 운동하는 자해(害)성이 이와 같은 맥락이리라. 


M은 글만큼 황홀했던 경험을 얻은 곳이 바로 자연이었는데, 이것이 필(筆)적 취향에 그대로 묻어나왔다. 시에서 8할은 비유로나 소재로나 자연에서 빌려온 것이 전부였다. '바람처럼 스쳐간 시간과의 인연'이라든지. '전깃줄에 걸린 달빛'이라든지. 


어쨌든 그 이후로는 현실적 신분이었던 교사로서의 준비에 신경쓰느라(-핑계지만) 이중생활은 잠시 1장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27

27살의 M은 이 시절을 떠올리며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외부적 성취는 없었으나 소설이란 세계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M은 무기력한 기분에서 벗어나 파란 어항 속 하얀 물고기들을 잠시 가둬두고 노트에 펜으로 떠오르는 필감을 맘껏 표현했다. 



30

여기까지가 바로 30살의 M의 끝의 시작이었다. M은 그때 완성한 소설로 한 출판사와 연결되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아직 대단한 입지로 우뚝 서기에는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설레는 일이었다. 


M은 마저 생각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의 질문의 정답에는 사실 별반 관심이 없다고. 그보다 이 순환 관계의 고리를 엮어가다 보니 시작과 끝에 대한 색다른 의문이 찾아왔다고. 시작이 있기 전에는 어떠한 상태가 끝이 나야만 하고, 끝이 있기 위해선 그 상황의 시작이 있어야만 한다고. 그렇다면 

'시(始)와 종(終)의 선후관계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라고. 


그리고 M은 이렇게 떠올렸다.

이제 막 한 권의 책을 완성하여 끝을 냈으나, 이 끝은 또 다른 M의 미래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결국 시작은 곧 끝, 끝은 곧 시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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