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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wiz Jun 15. 2020

아몬드 초콜릿이 12개인 이유

과자로 위장한 칼럼과 그리드에 대한 이야기

우연히 아몬드 초콜릿을 먹다가...


왜 10개가 아니고 12개를 넣었을까?

응?


디자이너들은 0이나 5로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거나, 정수로 떨어지지 않는 소수에 대해 태생적이던 후천적이던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보기에도 간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사소통하기도 힘들고, 오차가 생겨 치수 정확도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12개입이라는 숫자를 봤을 때, 갑자기 엉덩이 한쪽만 간신히 걸쳐 앉았을 때나, 간지럽긴 한데 어디가 간지러운지 모를 때처럼 불편함이 몰려왔다. 나는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아몬드 초콜릿이 10개가 아닌 12개인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우리의 손가락이 10개이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숫자들이 10진법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 그중 유별난 친구들이 12진법을 쓰는데

달력은 12달, 시계는 12시, 1피트는 12인치, 연필 1 다스는 12개, 동양에는 12 간지, 서양에는 12 별자리....


이들 중 대부분은 1년이 12 달이라는 데서 유래한 경우가 많다. 동서양 막론하고 농경사회에서 월력은 씨 뿌리고 수확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되어 주었고, 같은 이유로 12는 천문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숫자다. 12 간지 나 12 별자리도 선조들의 천문학에 대한 인문학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몬드 초콜릿이 12개인 이유는 이런 천문학적인 이유와는 전혀 상관없지 않은가? 만약 상관있다면 이 과자를 디자인할 때 초콜릿 하나하나마다 12 간지 나 12 별자리를 새겨 넣었어야 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과자 제조사에 전화해서 돈을 그대로 낼 테니 10개로 맞춰주세요!라고 건의할까 생각했다.


그때 나를 툭 치며 '나도 좀 먹자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순간,


아 그렇구나! 12는 굉장히 과학적인 숫자구나!라고 깨달았다.


12라는 숫자는 둘이 나누면 6개, 셋이 나누면 4개, 넷이 나누면 3개, 여섯이 나누면 2개씩 나눠먹을 수 있는 숫자인데 반해

10개였다면 둘이 나눌 때 5개, 다섯이 나눌 때 2개 빼고는 애로사항이 꽃피운다.


12가 1,2,3,4,6과 같이 5를 제외한 일반적인 수준의 배분을 커버한다면,

10은 2,5 밖에 커버 못하는 나눠먹기 부적합한 숫자였던 것이었다.


일단 초콜릿은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걸 어떻게 디자인에 적용해볼까.


편집디자인이나 UI/UX 디자인을 할 때, 그리드나 칼럼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스템을 만들고 지키는 게 어렵긴 하지만 잘 활용만 하면 체계적이고 안정감 있는 디자인이 되고, 사이즈나 레이아웃을 고민하는 시간이 줄기 때문에 오히려 효과적이다. 또한 규격화된 가이드를 제공하기 때문에 엔지니어와 소통할 때나, 컨텐츠를 구성할 때도 작업을 용이하게 해 준다.


새로 디자인을 할 때 칼럼을 몇 개로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바리에이션이 많다는 점에서 12 칼럼 시스템은 매력적인 선택이다. 잘 만든 레이아웃이라도 반복적으로 보여지면 눈에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시스템을 너무 자주 깨면 또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져 보인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강, 약, 중강, 약과 같은 시각적 운율감을 주기 위해 레이아웃에 바리에이션을 넣는데, 12는 간결한 수들 중에 가장 약수가 많아 폭넓은 바리에이션을 제공할 수 있다.


약수의 수 (등분 가능한 개수) / 1=1개, 2=2개, 3=2개, 4=3개, 5=2개, 6=4개, 7=2개, 8=4개, 9=2개, 10=4개, 11=2개, 12=6개, 13=2개, 14=4개, 15=4개, 16=5개, 17=2개, 18=6개, 19=2개, 20=6개... / 약수를 6개 가진 12, 18, 20 중에 12가 제일 간결하다!


12 칼럼은 또한 다양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보통 짝수 등분 칼럼은 정적인 느낌이 들고 홀수 등분 칼럼을 쓰면 다이나믹한 느낌을 주는데, 12 칼럼 시스템은 2, 4, 6 등분과 같은 정적이고 신뢰감을 주는 짝수 등분을 가능케 하면서도, 다이나믹이 필요한 포인트마다 1, 3 등분이나 5대 7과 같은 홀수 분할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리드를 그리는 방법은 인터넷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설명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12 칼럼을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시: [웹디자인] 그리드 그리기 https://m.blog.naver.com/somi_yam/221317913966 by somi)


간단히 말하면 아몬드 초콜릿 12개는 나눠먹기 좋으며, 다양한 레이아웃 구성이 가능한 12 칼럼 기반 그리드를 쓰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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