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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Oct 14. 2020

몰아치는 삶 속의 나

2019년 여름, 그렇게 아빠를 떠나보내고 나는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캐리어 두 개와 배낭 하나. 이런 떠돌이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나는 발걸음은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난,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기계적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겉으로는 마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아,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있다. 예전에는 당연할 줄 알았던 미래가 정말 당연히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면 지금은 그 믿음이 산산조각 난 것을 넘어서 증발해 사라져 버렸다는 것.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가거나 마음에 드는 직장을 찾아다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내 옆에는 항상 내 가족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너무 당연하다고 믿었기에 사소하기까지 했던 기대. 졸업식에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고 축하받고, 결혼식에 아빠 손을 잡고 입장할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했던 내 눈앞에 펼쳐졌던 미래들. 한순간에 사라지고 나니 알게 되었다. 난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사니까 사람이고 이 세상인데. 이 점을 깨닫고 난 뒤 내 마음속에선 두 가지 생각이 충돌했다. 


하나는 모든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것. 오늘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사람이 내일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섭고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렇기에 그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생각해 보면 난 항상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막상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여행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곧 끝이라는 생각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지막 며칠은 제대로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 이 얼마나 아까운 시간낭비인가. 그래서 오직 현재만 보며 살기로 했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 때문에 고민하며 지금 그 순간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고 마음먹고 충실히 ‘live in the moment’을 지켰다. 지금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미래는 걱정하지 않도록 노력하기.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친한 친구들과 재회하며 뉴욕이라는 대도시를 충분히 즐기고 후회 없는 마지막 여름방학을 마치도록 노력했다. 


이와 동시에 삶의 무기력함도 함께 찾아왔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발전이고, 현재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따지면 오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 난 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 또한 생겼다. 특히 아빠의 삶을 보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빠는 직장을 되게 싫어했다.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아빠에게는 보수적이었던 회사 문화가 너무 맞지 않았고 크고 작은 트러블과 오해를 받으며 꾸역꾸역 직장을 다녔다. 나와 내 동생에게  회사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가끔 엄마께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아빠가 힘들어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은퇴만 바라보고 사셨다. 은퇴 한 뒤 말레이시아에 가서 지금까지 번 돈을 가지고 골프 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꾸준히 말하고 다녔다. 기회가 생겨 정년보다 10년 일찍 은퇴를 하시고 드디어 그렇게 원하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꿈같던 삶이 단 3개월 만에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나버렸다. “My life has never been happier. (내 삶이 이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다.)” 아빠의 마지막 카톡 상태 메시지이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뒤 이 메시지를 보고 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고작 3개월 행복하려고 그렇게 오랜 시간 고생을 한 건가.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미래는? 나도 평생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행복"을 바라보며 노력만 해야 하는 걸까? 그 삶의 굴레 속에서 나는 과연 만족할까? 지금 내가 대학을 다니는 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일 것이고 그러면 그 뒤에는? 평생 그 직장만 다니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았다. 무엇을 해야 만약 내가 예고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아 그래도 내 삶은 행복했다"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과연, 아빠는 그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행복했다 생각했을까. 이런 질문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매일 출근을 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쇼핑을 하고, 수다를 떨며 즐겁게 뉴욕에서 3개월을 보냈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러한 생각들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겠다면서 역설적으로 나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졸업 후를 고민하고 있었고, 다가올 (혹은 다가오기를 바라는)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교 마지막 학년, 어지러운 마음으로 정신없는 마지막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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