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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Oct 15. 2020

내 선택의 결과, 그리고 그 후의 선택

내 마음속에서 무슨 변화가 있던 어떤 소용돌이가 치고 있던 난 내 삶을 살아가야 했고, 마지막 학년이 시작되었다. 이 1년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말 미친 듯이 바빴다. 어려운 전공수업을 들으면서 졸업 논문을 두 개나 써야 했고 연극도 각 학기마다 하나씩 했다. 이와 동시에 미래를 버릴 수 없으니 대학원 준비도 해야 했으며 Watson Fellowship이라는 장학금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위해 나만의 프로젝트를 구축해야 했다. 춤 동아리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려놓아서 손이 많이 갔고 GRE(미국 대학원 입학시험)를 공부하며 교내 아르바이트도 두 개나 했다. 난 항상 왜 나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리며 스스로를 혹사시킬까 자책하면서도 이렇게라도 바쁘게 살아야 잡생각이 없을 것 같아 한 선택이었다. 


그래, 선택. 4학년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특히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선택. 졸업하고 1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며 재충전을 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내 성격상 마음 편히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아 대학원이며 장학 제도며 열심히 알아보고 지원했다. 그러면서 큰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왔다. 심리학과 연극. 대학 때까지만 해도 이 둘을 병행할 수 있었지만 대학원은 그렇지 않다. 난 둘 중 하나를, 또 그 전공들 중 안에서도 세분화하여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미루고 미루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걱정했던 것보다 단순하게 끝났다. 난 주저 없이 연극을 선택했다. 연극학과 내에서 다양한 경로로 대학원을 지원했고 Watson이라는 장학 프로그램 또한 연극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를 디자인해서 지원했다. 이 Watson 프로그램은 미국의 상위 리버럴 아츠 컬리지(Liberal Arts College - 미국의 특수 대학교 시스템으로 4년제 학부만 존재하고 대학원이 없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교육을 중요시 여기며 보통 대학의 크기가 작아, 한 수업의 정원이 평균적으로 15명 정도이다.)에서 졸업예정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에서 1~2명을 선정하여 3만 6,000 달러(약 4,000만 원)의 지원금을  준다. 이 장학금으로 전 세계에서 원하는 나라를 여행하며 스스로 디자인한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다. 경쟁이 치열한 것 또한 알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으며 지원서를 제출하였지만 매우 귀한 기회인 것 또한 알기에 한번 찔러나 보자는 마음으로 도전을 했다. 

 

이렇게 비교적 쉽게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외적인 요소를 다 무시하고 딱 내 마음만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 생각만 했다. 이 또한 아빠가 떠난 뒤 내게 생겨난 변화였다. 아빠는 참 현명하셨다. 많은 것을 알았고, 똑똑했고, 주도적이었으며 그렇기에 자기주장 또한 강했다. 우리 가정에서 아빠의 말은 거의 무조건적이었고 대부분의 경우 아빠의 선택이 옳았다. 그 아래서 자라며 많이 배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난 항상 아빠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이런 선택을 했을 때 아빠한테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아빠가 인정해 주실까. 무엇을 하든 이 마음이 뒤에 깔려 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의지를 많이 했던 것이고 어떻게 보면 그늘에 숨어 있을 수밖에 없던 것이겠지. 하지만 이제는 항상 우러러보던 그 존재가 사라졌다. 고민이 생겼을 때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항상 내 뒤에 있었던 그 커다란 나무 같은 존재가 없어진 것이다. 기대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은 무섭고 불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늘에서 벗어나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이다. 내 앞에 주어진 모든 선택은 이제 내가 한다. 나는 나만 믿으면 되는 것이고 주변의 조언을 잘 새겨듣되 그 누구한테도 내 선택을 맡길 수도, 맡겨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마땅히 그 결과 또한 책임지면서.  


이 생각이 드니 마음이 가벼워짐과 동시에 단단해졌다. 내가 나를 믿어주고 결정을 내린다는 것. 어른이 되는 큰 발걸음을 내디딘 느낌이었다. 혹시 내가 틀렸을까 불안했지만 그 불안을 이겨낼 정도로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일들이 일어났다. 5개의 대학원에 지원했는데 그중 세 곳에 합격했다. 떨어진 두 곳 중 하나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원서를 제출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나머지 한 곳은 입학생을 2~3명만 뽑는 곳이어서 무리하여 지원했는데 서류 전형을 합격하고 인터뷰 오퍼까지 받았다. 걱정했던 것보다 매우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비록 내 자존감은 남이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가끔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 상황을 평가해 주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이 시기가 딱 그런 때였고 적절한 때에 내가 바라던 결과가 나와 뿌듯했다. 


더 나아가 Watson 프로그램에 최종 합격을 했다. 내 학교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며 집안을 뛰어다녔다.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보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 같아서 더 기분이 좋았다. 이 장학 재단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점이 디자인한 프로젝트가 지원자와 얼마나 잘 맞는지이다. 연극 프로젝트를 구상해 내었는데 이 길이 나한테 잘 맞는 길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 같아 행복했다. 딱 필요한 때에 받은 다정한 토닥임이었다.  


지금도, 매 순간 선택은 어렵다. 오늘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인생의 중요한 선택은 어떠할까. 아무리 해도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결과를 맞닥뜨리더라도 그 후에 또 선택의 기회가 온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기에,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늘 필요한 선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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