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살림**한다

에세이와 함께 - 6. 우리가 쓰는 말들 2편

by 홍유

“고객님, 굳이 안 치워 놓으셔도 괜찮아요. 그냥 두세요. 제가 하는 일인데요.”


육아와 생업에 지쳐서 집이 엉망이 되어 버렸을 때, 업체를 통해서 가사를 도와주시는 매니저님을 모셨다. 첫 방문부터 입이 떡 벌어지도록 집을 말끔히 청소해 주시고 쓰레기까지 싹 버려주시는 모습을 보고 절로 존경심이 일어나던 차였다. 이후로는 매니저님께서 오시기 전날, 참으로 모자랐지만 집을 조금씩 정리하기도 했다. 아무리 일당을 드린다고 해도, 집이 너무 지저분하면 그것은 또 죄송했으니까. 임금에 비해 과도한 노동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매니저님께서 방문하시는 전날, 너무 더럽지 않게, 하지만 적당히 더러워 보이게 집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나름 일거리를 조절하려고 애썼다. 사실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면 굳이 매니저님을 모시지 않았을 것이지만, 비루한 나의 정리 정돈 솜씨를 그렇게라도 합리화해야만 할 것만 같았다. 물론, 현관에서 들어서신 매니저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단번에 꿰뚫어 보셨지만 말이다.


매니저님께서는 일 자체를 너무나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네 시간 안에,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이시는지. 제발 앉아서 커피라도 드시라고 말씀드려도 그 뜨거운 것을 벌컥벌컥 드시고는 할 일이 많다면서 다시 일에 몰두하셨다. 매니저님께서 잠시 앉으셨던 자리에 아직도 따뜻한 믹스 커피 향이 솔솔 올라오고 있는데도, 널브러진 살림들은 모두 제 자리를 찾아가고 빈자리는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매니저님께서는 분명 화장실을 청소하고 계셨는데, 어느 순간 냉장고를 열고는 “이거 버려도 되나요?” 하시면서 오래된 식재료를 꺼내셨다. 문득 들리는 물소리에 돌아보면 쌓아 놓았던 그릇들은 건조대 위에 차곡차곡 포개졌다. 물론 물기 하나 없이 닦인 화장실과 오래된 식품들이 모두 비워진 냉장고, 윤기가 반짝거리는 싱크대는 덤이었다.


세 시간 반이 지나면, 매니저님께서는 오시자마자 돌려놓으신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서 건조기에 넣어 주시고, 어제 해 놓은 빨래들은 차곡차곡 개어 장에 가지런히 정리하여 넣으신다. 네 시간이 되면, 분리수거를 해 놓았던 재활용 쓰레기들을 한 손에 들고 집을 나서신다. 다음 주에는 자기가 할 일을 줄여 놓지 말고 일부러 정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면서, 오늘 보니 고무장갑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남기신다. 매니저님께서 나서시는 뒷모습과 어제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집 상태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여기에서 쾌적하게 사는 일주일은 얼마 되지 않은 임금을 지급한 나의 권리이기보다는 매니저님의 호의이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까지 이 년간. 매니저님께서 오시는 날은 내게는 배움의 날이 되었다. 옷을 어떻게 접으면 옷장에 예쁘게 들어가는지, 어떻게 넣으면 최대한 많은 옷을 가지런히 수납할 수 있는지 배웠다. 나중에 쓰겠거니 하며 구석에 방치했던 물건들은 그때그때 버려야 집을 단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화장실의 물건들은 최대한 벽에 걸어서 바닥을 비워 줘야 화장실 청소가 쉽다는 것을 새롭게 깨우쳤다. 옷장은 주기적으로 먼지를 닦아 주어야 하고, 쓰레기를 포함한 모든 물건은 제 자리를 정해 주어야 하며, 쓰레기는 쌓아 두지 말고 최대한 바로 버리고, 그릇들은 쓰기 좋게 가지런히 수납장 안에 정리해야 한다는 것도. 바닥을 가끔 구연산 희석액으로 닦아 주면 미처 느끼지도 못했던 작은 먼지들까지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다는 것도. 지금껏 홀대를 받던, 집안일이라는 거대한 일들의 총집합을 왜 ‘살림’이라 부르는지도 새삼스레 깨달았다.


살림은 나를 살리는 말이었다.


2019년 기준으로 통계청에서 발표한 집안일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490조 9000억 원이다. 음식 준비 청소와 정리,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 대화하기를 포함한 61가지의 무급 집안일의 가치이다. 시간당 1만 3891원. 하루 6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월 250만 원 상당의 노동이라는 발표도 함께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는 집안일의 가치가 시장가치로 환산되는 것이나 화폐로 교환되는 단계는 아직 요원하다는 말도 덧붙는다. 즉 가치 있는 일은 맞지만, 그 대가는 열정페이로 지급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아직까지 우리 세대에서도 여자가. 살림이나. 이런 말들이 종종 들린다. 내 동갑인 동네 엄마가 떠오른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남편이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잘하면 된다고 했어요.”하며 배시시 웃던 얼굴이. 몸은 고되고 힘든데 그 대가는 측정 불가이고, 하루라도 하지 않아서 그 결과가 쌓이면 감당할 수 없어지는 일. 살림. 열정적인 감사로 페이가 지불되면 모르겠지만 살림 뒤에 붙는 조사는 대체적으로 ‘이나’가 아닌가? 나를 숨 쉬게 했던 그 단어가 누군가의 입에서 비루하게 언급되던 그 순간, 나는 가만히 입술만 빨았다.


그날 이후로, 아직까지. ‘여자가 살림 한다.’라는 문장의 살림 뒤에 붙일 조사를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이나’는 싫었다. ‘을’을 붙이자니 살림이 너무 을(乙)같이 느껴진다. ‘까지’나 ‘도’라고 하자니 그 거대한 일을 무엇인가에 곁다리로 얹어 놓는 것만 같다. ‘만’에도 ‘이나’의 어감이 스며드는 것 같아서 슬그머니 화가 난다. 어쩌면 살아가는 내내, 나는 이 조사를 놓고 끝없이 고민할 것 같다. 비록 통장에 찍히는 숫자도 없겠으나, 감히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그것. 정답은 없어도 각자의 몸에 맞는 방법은 있는 것. 누군가의 사랑과 열정과 희생을 연료로 흘러가는 그것. 우리를 계속 살게 하고, 일상이 동글동글 굴러갈 수 있게 테두리를 만들어 주는 것. 나는 그에 합당한 예쁜 조사를 반드시 찾고 싶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편안히 숨을 쉴 수 있는 문장이 완성되기를 바라면서.



커버 이미지 출처: 어린이 조선일보(https://www.chosun.com/kid/kid_economy/kid_honeybee/2021/06/24/IDWRNZS6EENAIPBDVJ25KGSC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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