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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Oct 06. 2023

36화 - 그래도 아직 내게 기회는 있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라영이 어머니가 꽃집을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라영이와 짝꿍을 하기 시작하면서 들었었다. 아침마다 라영이에게서는 은은한 꽃 향기가 났으니까.     

 

 라영이가 현선이와 싸운 날, 라영이 뒤를 쫓아갔지만 놓쳐서 라영이의 어머니가 하시는 꽃집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었다. 그런데 라영이에게 줄 꽃을 찾아 꽃집을 뒤지고 뒤지다가 겨우 꽃을 살 수 있게 된 이 꽃집이 라영이 어머니께서 하시는 꽃집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이 꽃집 이름이 ‘영 플로리스트’였던 것 같다. 아까는 무심코 보고 넘겼는데 라영이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으셨나 보다.          


 “장유준?”

 내 얼굴을 보고 상황 파악을 한 라영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응. 라영아. 여기가 너희 어머니 꽃집이구나. 신기하다.”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머! 학생이 우리 라영이 친구였어? 혹시 오늘 꼭 꽃을 줘야 한다는 친구가 우리 라영이야?! 어머나! 이런 우연이 다 있네.”     

 꽃집 아주머니는, 아니 라영이 어머니는 나와 라영이를 번갈아 쳐다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정말 놀란 표정으로 말이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학생!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여기 좀 앉아요. 라영아! 가서 주스라도 좀 꺼내올래?”

 “어머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라영이 짝꿍 장유준입니다.”     


 나는 꽃집 아주머니가 아닌 라영이 어머니께 다시 한번 정중하게 인사드렸다.   


 “얼굴도 잘생기고 말도 참 예쁘게 잘하는 학생이다고 생각했는데 라영이 친구라니 더 반가워요. 내가 마음 같아서는 저녁도 사주고 하고 싶은데 지금은 라영이랑 둘이 이야기하고 싶겠죠? 밥은 다음에 먹는 걸로 하고 지금은 라영이랑 차분하게 이야기하다가 가요.”   


 꽃집을 마감하려면 아직 정리할 것이 많아 보였는데 라영이 어머니는 센스 있게 자리를 비켜주신다고 하셨다.           


 “라영아! 엄마는 선희 아줌마 가게 가서 저녁 먹고 있을 테니까 유준이랑 이야기 다 하고 연락해. 아니다, 그러지 말고 너도 유준이랑 맛있는 거 먹고 와. 가게 정리는 내일 아침에 조금 더 일찍 나와서 하면 되니까. 알았지? 유준이가 네 연락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 아이고, 내 입 좀 봐. 더 말하면 유준이가 민망할 것 같으니까 엄마는 먼저 간다!”       

   

 라영이 어머니는 그렇게 가게를 나가셨다. 가게 문 앞에 걸려 있던 간판을 ‘Open’에서 ‘Close’로 바꿔주시고. 그리고 이제 라영이와 나만 남았다. 처음부터 친절하셨던 꽃집 아주머니는 라영이 어머니로 바뀌어도 끝까지 날 배려해 주셨다.       

   

 “라영아! 너 어머니 많이 닮았구나? 얼굴도 성격도. 어머니 진짜 친절하고 좋으시다.”

 순간의 어색함을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바로 말을 꺼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꽃도 민망해지기 전에 바로 라영이에게 꽃을 줬다.          


 “꽃집에서 꽃을 주는 걸 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내가 해보게 되네. 자! 내 마음을 담은 꽃이야. 너희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꽃이기도 하고.”

 나는 긴장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라영이에게 꽃을 건넸다.     

 “정말 고마워.”     

 라영이는 꽃을 코에 가까이 가져가 살짝 향을 맡았다. 그리고는 내게 눈웃음을 짓다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근데 엄마가 오늘 장미꽃 다 팔았다고 하셨는데 꽃이 어디서 났지?”

 “꽃잎이 좀 상한 장미꽃 한 송이가 남아있었는데 어머니께서 그걸로 만들어주셨어. 그런데도 정말 예쁘게 만들어주셨어. 그치?”

 “우리 엄마가 만들었으니까 더 예쁘긴 한데... 이 꽃으로 엄마가 너한테 돈을 받으셨단 말이야?”

 “아니. 그냥 주셨어. 정말 감사하게도.”

 “휴. 그러면 다행이고.”    


 잠깐의 공백이 생겼다. 라영이도 살짝 어색했는지 주스를 내게 건넸다.          

 “배고프겠다. 일단 이거라도 마실래? 냉장고에 마땅히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없네.”

 라영이 집안은 베푸는 것이 일상인 것 같은 느낌이다.    


 “고마워. 잘 마실게! 목말랐는데 이걸로 충분해!”

 정말 목이 말랐다. 집에서 나온 이후로 3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물 한 모금 못 마셨으니까.   


 “근데 엄마가 뭐 이상한 이야기 한 건 아니지? 꽤 오랫동안 이야기 하는 것 같던데?”

 “네 자랑 많이 하셨어. 아까는 내가 누구신지 모르셨으니까. 내가 저기 쌓여있는 저 장미꽃을 발견했거든.”

 “저거... 곧 가게 문 닫을 거라 급하게 숨긴다고 숨겼는데 생각보다 잘 보이는구나.”

 “저걸 오늘 다 받은 거야?”

 “응...”          


 라영이는 약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꽃 많이 받은 건 자랑이었으면 자랑이었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물론 저렇게 많으면 민망하긴 하겠다. 저 많은 꽃들을 학교에서 여기까지 가져오는 것도 상당히 민망했을 것 같다.     

     

 “저거 들고 오기도 힘들었겠다.”

 “은아가 도와줬어. 같이 택시 타고 왔거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혹시 오늘 다른 일정은 없어?”

 “다른 일정?”

 “뭐 누구를 만난다거나 그런.”

 “아니. 원래 엄마랑 꽃집 정리하고 집에 들어가려고 했어.”

 “그럼 나랑 저녁 먹을 수 있어?”    


 난 긴장하면서 라영이에게 물어봤다.    


 “그럼. 엄마가 너랑 먹으라고 자리까지 비켜줬는데 안 먹으면 안 되지. 맛있는 거 먹자!”    

  

 사실 저 많은 꽃들에 대해 궁금했다. 누가 줬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학교에서 내가 본 건 10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내가 안 본 사이에도 많이 받았나 보다. 학교가 끝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런 걸 물어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나만 더 구질구질하게 보일 뿐이겠지.  


 그래도 아직 내게 기회는 있다. 난 라영이에게 로즈데이의 마지막 꽃을 줬고, 무려 저녁 약속까지 잡았다.          


 “근데 어머니께서 가게를 정말 예쁘게 해 놓으신 것 같아. 내가 오늘 부득이하게 꽃집을 꽤 여러 군데 들렸는데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아. 너희 어머니 가게여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엄마가 어릴 때부터 꽃을 너무 좋아해서 결국 꽃과 함께 하는 직업을 선택하셨대. 엄마에게는 이게 직업이 아니라 그냥 삶 그 자체지만. 그래서 금전적으로 손해 볼 때도 많아. 여기 있는 꽃이나 화분이 팔려야 돈을 버는 건데 엄마는 맨날 내 새끼들 떠나간다고 하시거든. 엄마는 늘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사시는 것 같아.”       

   

 문득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화분 같은 건 귀찮다고 하시던 엄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끔씩 집에 화분이 생겼지만 며칠 안에 모두 사라졌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버려지는 화분도 많았고, 엄마가 다른 집에 줘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집에 꽃과 화분이 가득했다면 엄마와 나 사이가 조금은 달랐을까...   

  

 그런데 아까부터 느꼈던 거지만 눈 상태가 좋다. 전혀 건조하지 않고 선명한 느낌이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여기서 시력 재보면 더 잘 나와? 평소보다 눈이 선명해지는 것 같아서. 바보 같은 질문 같지만...”

 “아마 그럴 거야. 여기 아가들을, 아니 화분들을 위해서 습기 조절도 충분히 해주니까. 그리고 화분이 많으니까 아무래도 다른 곳보다는 산소가 많겠지?”    

 

 이 정도 눈 컨디션이면 눈싸움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라영이의 폰 번호 44초에 도전해 볼만하다고 느꼈다.     


 “그러면... 조금 뜬금없지만 나랑 눈싸움 한 번 안 할래? 진 사람이 저녁 사주기 어때?”


 라영이에게 꽃을 줬지만 아직 고백다운 고백을 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분위기는 어색함이 한 번씩 생겨나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싸움을 제안해 버렸다. 장미꽃을 주고 내 마음을 보여줘야 하는 시간에 눈싸움이라니...     


 “나 눈싸움 엄청 잘하는데 괜찮겠어? 내가 진짜 비싼 저녁 사달라고 할 수도 있어.”

 내 걱정과 다르게 라영이는 쿨하게 나와의 대결을 받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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