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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Sep 25. 2023

35화 - 꽃집 특유의 은은한 향이 났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여자친구가 장미꽃을 좋아하나 보다.”

 “아... 아직 여자친구는 아니구요.”

 “그러면 좋아하는 친구? 내가 더 예쁘게 만들어줘야겠네! 이 장미꽃 받고 학생 고백도 받아주게.”     


 아주머니는 눈웃음과 함께 손놀림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으셨다.   


 “고백을 할지는 모르겠어요. 좋아하긴 하는데 아직 제 마음에 대한 확신도 없구요. 어렵네요.”     


 아주머니를 만난 지 5분밖에 안 지났는데 어느새 아주머니에게 내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워낙 상냥하게 대해 주시기도 했고, 꽃집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뭔가 아주머니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아주머니가 꽃을 묶을 리본을 꺼내는 사이 잠깐 꽃집을 둘러봤다. 들어오기 전에는 작아 보였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꽃과 화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꽃집 특유의 은은한 향도 느껴졌다.       

    

 ‘맞아. 라영이 옆에는 항상 이런 비슷한 향이 있었는데...’     

 이 꽃집은 이래저래 라영이 생각이 많이 나게 만든다.       


 우연히 구석에 있는 큰 화분 뒤쪽에 쌓여 있는 장미꽃을 발견했다. 어림잡아 세어 봐도 30송이는 돼보였다. 심지어 이미 곱게 포장이 잘 되어 있었다.      


 “어? 근데 저기 있는 장미꽃은 뭐예요? 누가 미리 예약한 거예요? 엄청 많은데요? 저걸 저한테 파시면 안 돼요?”

 “아 저거요? 저건 팔 수가 없는 거예요. 미안해요 학생.”   


 아주머니는 안타까운 표정과 아쉬운 표정을 합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왜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사실 오늘 우리 딸이 받아온 꽃들이거든요. 엄마가 꽃집 하는데 다른 꽃집 꽃을 참 많이도 받아 왔더라구요.”     


 아주머니는 딸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을 담아 계속 말씀하셨다.     

     

 “내가 아침에 딸한테 장미꽃 한 송이 예쁘게 만들어 주려 했거든요. 우리 꽃집 주인들은 오늘 무슨 날인지 모를 수가 없으니까요. 오늘 하루 매출이 생각보다 엄청 많이 나와서 한참 전부터 준비를 많이 해두거든요. 그래서 만드는 김에 우리 딸한테도 하나 예쁘게 만들어 주려고 했죠.

 근데 우리 딸은 학교에 무슨 꽃을 들고 가냐고 그러더라구요. 좋아하는 사람이 없냐고 물어봐도 대답도 없고. 맨날 보는 게 꽃이니까 지겨울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냥 빈 손으로 학교에 보냈는데... 글쎄 아까 저렇게 많이 들고 온 거예요.”          


 아주머니는 매우 지능적으로 딸을 자랑하고 계셨다. 하지만 난 그저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 꽃을 만들어주셔서 그런지, 아니면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그런지 아주머니가 하나도 밉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아주머니 딸이 그저 부러웠을 뿐.       

   

 “제 짝꿍이랑 비슷하네요. 오늘 얼마나 꽃을 많이 받던지. 혼자서 집까지 가져가지도 못할 정도로 받았더라구요. 거기에 제 꽃은 있지도 않은데. 제 짝꿍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아주머니의 자랑에 마땅히 쳐줄 맞장구가 없어서 라영이 이야기를 꺼냈다. 한숨과 푸념을 잔뜩 담아서.    


 “그래도 지금 이 꽃이 그 친구가 오늘 받은 마지막 꽃 아닐까요? 보통 이 시간에는 장미꽃이 다 팔려서 장미꽃을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어렵거든요. 학생들이니 꽃을 집에 보관했다가 저녁에 따로 주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그러니 학생도 이 꽃을 주면서 그 짝꿍한테 마음을 잘 전해 봐요. 원래 하이라이트는 맨 마지막에 나오는 거니까.”          


 아주머니는 내게 계속 희망을 주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묘하게 설득되고 있었다.    


 “근데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까 톡 보냈는데 읽지도 않았더라구요. 다른 남자 만나고 있으면 안 되는데...”

 “꽃 많이 받았으면 그거 들고 가느라 폰 못 보지 않았을까요? 아까 우리 딸도 친구랑 같이 저 꽃 한가득 들고 왔더라구요. 너무 많아서 몇 송이는 친구 주고. 친구 그냥 보내기 뭐 하니까 음료도 사주고 하다 보니 폰 볼 시간이 없었을 것 같던데.”      

    

 아주머니는 꽃 장식을 달면서도 계속 나를 위로해주려고 하셨다. 라영이도 아주머니 딸과 같은 이유로 폰을 못 봤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따님 좋아하는 남자들이 준 꽃 일 텐데 그 꽃을 친구를 주는 건 좀 이상한데...”

 “몰라요. 우리 딸이 예전부터 따라다니는 남자들은 많았는데 그 남자들한테 한 번도 마음을 준 적이 없어요. 오늘도 저 꽃들 다 관심이 없는지 저렇게 구석에 모아 뒀잖아요. 우리 가게에 온 꽃 중에 가장 하대 받는 꽃들이에요.”     


 어디에나 인기 많은 여자는 있나 보다. 우리 학교에는 라영이가 있고, 꽃집 아주머니의 딸도 그 학교에서 라영이와 같은 존재겠지.  

        

 “자! 다 됐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죠? 오늘 이 꽃으로 꼭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얼마죠?”

 “아이고, 됐어요! 꽃 상태도 안 좋았고 내 딸 친구 또래 같아서 그냥 줄게요. 어깨 딱 펴고 진심을 담아 말하면 고백 성공할 거예요! 남자는 자신감! 내 눈에 학생이 참 잘생기고 성실해 보여서 충분히 성공할 것 같은데? 파이팅!”          


 파이팅이라는 단어... 참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아주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는 힘이 나는 것도 같다.  


 그나저나 꽃이야 상했다고 해도 이걸 싸고 있는 포장지 값은 있을 텐데. 게다가 예쁘게 포장하신다고 10분도 넘게 쓰셨는데. 공짜로 주신다니... 심지어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꽃값이 평소보다 2배는 비쌀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집이랑 조금 멀어서 자주는 못 오겠지만 다음에 꽃 살 일 있으면 꼭 여기로 올게요!”

 “말을 예쁘게 해 줘서 만들어 준 내가 다 뿌듯하네요. 그나저나 답장 왔어요?”       

   

 평상시 다른 어른이 이런 말을 했으면 오지랖도 참 넓다 생각했겠지만, 이 아주머니는 정말 진심인 것이 느껴진다.          


 “아... 방금 읽었나 본데 아직 답장이 없네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1이라는 숫자가 사라졌지만 라영이에게 답은 아직 없었다.  


 “힘내요. 학생!”

 가게를 나서려는 내게 아주머니는 마지막까지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셨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라영이에게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너무 많이 걸어서 어디 앉아 있고 싶지만,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그럴 수도 없다. 라영이 집이나 꽃집 위치라도 알면 거기서 기다릴 텐데... 난 정말 라영이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답을 찾지 못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며 가게 문을 열고 막 나가려는 순간, 내 뒤에서 말이 들려왔다.         

 

 “이제 가게 마감을 해야겠네. 딸! 아직 멀었어? 가게 정리하자!”

 “응! 엄마! 지금 나가!”     

     

 어쩐지 조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봤을 때, 한 여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미꽃보다 더 아름답고 더 진한 향기를 가졌을 것 같은 여자가.   

       

 “엄마! 미안미안! 방이 좀 어질러져서 정리 좀 했어. 가게는 이렇게 깔끔하고 예쁜데 방은 맨날 엉망이라니까. 엄마가 쉬는 공간이니까 방도 깨끗하게 하고 삽시다!”


 그 여자애는 눈웃음을 지으며 꽃집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아주머니의 눈웃음과 닮았다.   


 “근데 엄마, 손님이 아직 안 가셨는데?”

 “어? 학생! 아직 안 갔네? 좋아하는 여자한테 오늘 꼭 꽃 줘야 한다고 한다더니 아직 답장을 못 받았나 보다. 에구.”     

 “연락은 안 와도 될 것 같아요.”     


 나는 뒤를 돌아 몇 발 앞으로 걸어 아주머니와 여자애의 사이에 섰다.    


 “방금 만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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