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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Dec 29. 2023

일시정지 그리고 2024년

잠시 소설을 쉬어 가려합니다.

겨울은 겨울입니다.      

눈이 쌓인 거리를 오랜만에 봤던 것 같네요.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신지요?    



      

12월에 소설을 한 편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44화를 올려야 하는 시기에, 44화가 아닌 안부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라영이의 폰 번호 뒷자리가 44라서 내가 44화를 올리려는 타이밍에 세상이 멈춘 걸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시간은 매우 멀쩡히 잘 흘러가고 있고 2023년도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44화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연말이라 회사에 일이 많았다는 것은 그저 핑계일 뿐이겠죠. 

부쩍 추워진 날씨에 전보다 잠이 쏟아진다는 것도 핑계일 뿐이겠죠.         

 

사실은...     


갑자기 현실의 벽을 실감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을 써보기 전에는 기존 작가들 비난을 많이 했습니다. 

개연성이 없다, 저 정도는 나도 금방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습니다. 

특히 초반에 깔아 둔 떡밥을 제대로 다 회수하지 못한 작가들을 보면서... 독자로서 매우 뒷맛이 깔끔하지 않아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제가 쓰면 절대 저런 일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더군요.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더군요. 


글을 쓰고 스토리를 진행시켜 나가다 보면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았어요. 그 새로운 생각을 넣어 하나를 수정하다 보면 한참 앞쪽에 있는 것도 수정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고치다 보면 엉망이 되어 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엉켜있는 줄을 풀려다 결국 더 엉켜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온종일 소설에만 몰두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날마다 글을 쓰지 못하다 보니 초반에 내가 어떻게 설정을 했었는지 기억이 흔들릴 때도 많아 다시 앞부분을 찾아 읽을 때도 많았습니다. 읽다 보면 시간이 많이 지나서 또 한 글자도 못 쓰고 컴퓨터를 끈 적도 많았구요.


그렇게 혼돈의 시간이 자주 찾아왔고, 제 자신과 타협하는데 점점 더 오래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좋아서 시작한 소설인데 어느 순간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리던 세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그 세상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습니다.     

소설 쓰는 걸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육아와 집안일을 하고, 밤 10시 넘어 육퇴를 하고 소설을 쓴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유명 작가처럼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루에 한 줄 이상 쓰겠다고 다짐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유달리 아이를 재우기 힘들었던 날 밤, 맥주 한 캔이 경쾌한 ‘딱’ 소리와 세상 밖으로 나와 제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다짐은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진 다짐은 쉽게 다시 세워지지 않더라구요.      


작심삼일이라도 하루 쉬었다가 다시 작심삼일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면 일주일에 6일이나 할 수 있는 것을. 글을 쓰다 생각이 멈추는 순간 바로 노트북을 닫았습니다. 제가 그렸던 큰 세상이 흐려지기 시작하자 그 세상을 다시 그려보지 않고 등을 돌렸습니다. 거짓말처럼 한 번 멈춘 세상은 다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멈췄던 세상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작동했는데, 진짜 제 세상은 계속 멈춰버렸습니다.


별 것도 없는 걸 쓰면서 혼자 세상의 고뇌를 다 짊어진 것처럼 행동했던 것 같네요. 



글을 못 쓰는 대신 소설책에 빠져 지냈습니다.


아이를 재우고 집에서 꽤 떨어져 있는 24시간 카페까지 달려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추운 날 카페까지 달려간 노력이 아깝기도 하고, 책도 재밌어서 카페에 한참을 머물다 집에 오면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글 쓰는 것이 두려워서 일부러 책을 더 늦게까지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책은 어찌나 재밌던지요! 시험 기간에는 뉴스만 봐도 재밌는 그런 기분이랄까요?


그중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정해연 <유괴의 날>이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렇게 쉼 없이 책을 내는데도 대부분 정말 재밌습니다. 비슷할 것 같지만 조금씩 다릅니다. 문장의 길이가 짧아 술술 잘 읽힙니다. 물론 훌륭한 번역가 분들의 능력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해서 호기심에 읽은 <유괴의 날>은 신선했습니다. 유괴와 살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쓸 수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소설책을 읽으면서 자주 드는 생각은

 "어쩜 저렇게 상세하게 묘사를 할 수 있지?"입니다.


글만 읽어도 장면이 눈에 훤히 그려지는 글들이 있잖아요. 글만으로도 그곳, 그 사람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 있잖아요.


그에 반해 저는 너무 세상에 무관심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장면을 쓰기 위해 그 장면이 일어나는 공간을 떠올리려고 하면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제 기억의 단편에 상상력을 더해 겨우 쓰곤 합니다. 지금 내 일상이 아닌 것들을 써야 하기에 제 속에 있는 N성향을 계속 자극합니다. 


게다가 저는 원래 추리소설 매니아입니다. 긴장감 있는 스릴 속에서 각자의 사연이 있고,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고... 그러고 보니 위에 언급한 책들도 모두 추리소설이네요.


그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것과 다르게 달달한 소설을 쓰려니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추리소설은 제가 감히 덤빌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로맨스 소설을 쓰는 건데 말이죠. 로맨스 소설은 별로 본 적이 없으니 저만의 개성 있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쓰는 건데 말이죠.



제 소설은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쓸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라며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도무지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과감하게 여기서 멈출 수도 있겠죠. 

     

다만 소설은 멈추더라도 글 쓰는 건 가끔씩이라도 이어가 보려 합니다. 생각해 둔 일상의 주제가 있는데 곧 쓰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곧! 

2024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직 나약한 저를 믿지 못하기에 언제라고 딱 말하긴 어렵지만... 여하튼 2024년에 시작하겠습니다! 



     


2024년은 ‘푸른 용’의 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옛날부터 느꼈지만... 솔직히 ‘용띠’는 사기 아닌가요?     



쥐, 소, 호랑이, 토끼, ,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그나마 호랑이 정도 겨우 용과 해볼 만할 뿐(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노릇 하듯이, 용 없는 세상에 호랑이가 왕노릇 하는 정도일 뿐이겠지만) , 다른 동물들은 용에게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어렸을 때는 용띠가 너무 부러웠답니다. 용띠가 되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이제는 제가 무슨 띠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살짝 슬퍼집니다.





살아 있음이 곧 불안이라는 감각을 꽤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의 이 깨우침은 '삶'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표시가 아닐까.
- <목숨을 팝니다> (미시마 유키오)

        

2023년 검은 토끼의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Blue Dragon처럼 푸르고 신비로운 날들이 가득한 2024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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