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이 괴로운 이유 중 하나는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는 공포인 것 같습니다. 어쩐지 오늘따라 너무 조용한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윗집 사람들이 집에 돌아온 소리가 들리고 다시 공포가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새벽 2시, 우연히 잠에 깨서 잠깐의 명상에 잠겨 있는 순간,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명상은커녕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해 다시 잠을 이룰 수 있을지부터 걱정해야 합니다.
전쟁이 나면 이런 기분일까요..?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쉽게 잠들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끝날 거라는 기약도 없구요.
오늘은 ‘층간소음 유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가 직접적으로 겪었던 사례를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오를 수 있고, 과거의 트라우마가 다시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심약자나 층간소음에 깊은 트라우마가 있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례들은 모두 실화입니다.
1. 대문 쾅! 족
옆집 아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헐크로 돌변하셨습니다. 평상시에는 한없이 다정하고 인사도 잘해주시는 분인데, 날씨가 추워지면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겨울에 외출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현관문을 있는 정말 힘껏 닫았습니다.
날이 추워서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세게 닫아야 하는 걸까요...? 그렇게 문을 세게 닫으면 당연히 그 진동과 소음은 고스란히 저희 집까지 전달됩니다. 다른 이웃들도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옆집 아주머니는 전업주부인데 외출이 잦았습니다. 주말이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문 쾅 소리를 당해야 했습니다.
밖에서 한참을 추위에 견디며 집에 왔을 텐데 1,2초 빨리 집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제가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저희 집에 신생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도 그걸 잘 아시는데도 왜 그러셨는지... 그분이 문을 닫을 때면 행여나 낮잠 자던 아기가 깰까 봐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2. 새벽 6시면 청소하는 족
이분은 청소를 늘 새벽에 했습니다. 새벽 6시 근처가 되면 어김없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강박인지 모르겠으나 그 시간이 되면 청소를 했습니다. 심지어 전날 밤 9시에 청소를 했는데 다음 날 새벽 6시에 다시 청소를 한 적도 있습니다.
나름 이웃에 신경을 쓰는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진공청소기가 아닌 밀대로 청소를 했습니다. 쓰윽싹 쓰윽싹. 워낙 고요한 새벽 시간대이다 보니 밀대질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전 잠이 들면 웬만하면 깨지 않는 편인데 쓰윽싹 소리가 계속 들리니 잠이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밀대질만 하면 그나마 참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물건을 옮기며 청소하는 바람에 우당탕 소리도 덤으로 들려왔죠.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이분의 윗집에 살았습니다. 아랫집 밀대질 소리가 윗집에 사는 저희 집까지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귀신 소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리도 아니었겠죠..? 진짜 귀신은 아니고 아랫집이 밀대질 한 것이 확실합니다. 아.. 아닌가..?설마..?
3. 크리스마스 이브의 전쟁
크리스마스 이브는 특별한 날입니다. 저도 케익을 사서 와이프와 기분 좋게 먹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브는 금세 전쟁터로 바뀌었습니다. 윗집에는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분이 혼자 사셨는데, 그날은 가족들이 총 출동한 것 같았습니다. 대충 10명은 되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은 뛰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였고, 크리스마스니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에서 우당탕, 또르르, 쾅 소리가 들려도 애써 웃으며 와이프와 케익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소음은 이브의 자정을 넘어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졌습니다. 제가 어느 수준까지 이해하고 상대를 배려해 줘야 하는 건지... 저 어릴 때는 특별한 날일지라도 어린이들은 일찍 재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아이들은 자정을 넘겨 떠들고 돌아다녔습니다. 어른들이 제지하지 않았으니 가능한 일이겠죠.
그래도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니까... 산타의 마음으로 최대한 너그럽게 생각하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은 밤이었답니다.
4. 공포의 피아노 소리
아이가 어릴 때 이야기입니다. 그 시기에는 보통 낮잠을 잡니다. 아기는 점심을 먹고 잠이 들어 보통 1,2시간 정도 낮잠을 자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주말이 되면 항상 문제가 생겼습니다. 특정 소리가 같은 시간에 들렸거든요. 평일은 괜찮았으나 주말이면 어김없이 시작됐습니다. 아기가 낮잠을 자기 시작하는 딱 그 시간 즈음 시작됐습니다.
그 소리는 ‘솔’로 시작하는 동요를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였습니다. 어느 집에 사는 어떤 꼬마인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항상 그 곡을 쳤습니다. 계속 그 곡만 쳤습니다. 1시간 내내 그 곡만 쳤습니다. 그런데... 정말 못 쳤습니다. 아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형편없는 연주를, 그것도 같은 곡을 반복하는 연주를 1시간 가까이 듣는 건 곤욕이었습니다.
가장 최악은... 그 피아노 소리에 아이가 낮잠에서 깨는 것이었습니다.
5. 우리는 모두 한가족이었던 시절
제가 대학교 때 아주 짧게 고시원에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고시원들이 그렇듯이 그 고시원도 매우 좁고 모든 방이 촘촘히 붙어 있는 구조였습니다. 얼마나 좁냐면 방 한가운데에 서서 딱 한 발짝만 내딛으면 어디든 도착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책상도, 침대도, 옷장도, 욕실도 모두 딱 한 걸음이면 충분했습니다.
방이 좁고 따닥따닥 붙어있는데 방음은 전혀 되질 않았습니다. 옆방 사람이 무얼 하는지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죠. 불행 중 다행으로 방이 너무 좁았기에 발망치는 별로 당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옆방 사람의 연애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TV는 어떤 걸 보는지, 몇 시에 일어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었죠.
네, 우리는 가족이었습니다. 사실 진짜 가족도 이 정도로 사생활을 공유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정말 친밀한 가족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였습니다.
힘들었던 건 옆방 사람의 알람 소리에 제가 항상 깨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더 자야 하는데 반강제로 일찍 기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옆방 사람은 유달리 목소리가 컸습니다. 발성부터가 남다른 그런 분들 있잖아요.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는데도 어찌나 호탕하게 하는지... 등치도, 목소리도 모두 큰 사람이 그 좁은 방에 살려니 힘들었을거라는 불쌍함도 아주 살짝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웃을 조금만 더 배려해 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사실 이분은 빌런까지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때는 방에 같이 있는 시간 자체가 길지 않아서 그렇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방이 좁아서 두 발 정도만 걸으면 더 이상 걸을 곳이 없기도 했구요.
이 밖에도 많은 피해를 봤지만 더 이상 열거하지는 않겠습니다. 오래전 기억이 많은데도, 다시 그때를 떠올리려니 괴롭습니다.
이들이 왜 시끄럽게 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나는 너무 시끄럽고 힘들다는 거죠. 편히 쉬어야 할 집에 왔더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두려워하고, 실제로 폭탄이 터지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중요한 거죠.
이웃집이 제발 여행이라도 떠나라! 하고 바란 적도 많습니다. 그날 밤에 안 들어온다는 것이 확인되면 어찌나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던지요. 마치 회사 팀장의 휴가날처럼 말이죠. 그날은 뭘 해도 기분이 좋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제가 미친 것 같았지만... 다시 이렇게 글로 적어보니 제가 확실히 많이 예민하다는 걸 깨닫지만... 그래도 층간소음으로 고통을 겪은 분들은 모두 느끼실 겁니다. 미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요. 매일같이 포탄이 터지는 전쟁 속에서 어떻게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다...
괴롭고 힘들지만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불운 속에서도 어쨌거나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