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평화로운 밤을 보내셨는지요?
오늘은 층간소음의 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소음이 나면 윗집을 의심합니다. 위에서 ‘쿵’ 소리가 났으니 윗집에서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범인은 윗집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윗집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 생각보다 많습니다!
범인이 아닌데도 억울한 누명을 쓴 윗집이 있을 수 있고, 난 분명 피해자가 맞지만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범인을 특정하는 데는 신중해야 합니다.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날은 아파트에 가스 검침이 있는 날이었어요. 검침원이 곧 우리 집에 도착할 거란 연락을 받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 따라 윗집이 더 시끄러웠습니다. 대체 뭘 하는 건지... 드릴 같은 걸로 바닥을 뚫는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
귀는 괴로웠지만 가스 검침은 받아야 했기에 버티며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검침원 분이 오셨고, 검침을 마치고 가시는 길에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어? 근데 이상하네요. 왜 똑같이 소리가 나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제가 위에서부터 내려오면서 검침을 하고 있거든요. 근데 여기가... 1204호잖아요? 근데 1203호에서도, 1303호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났어요.”
“이 드릴 소리요? 이거 저희 윗집에서 한 거 아닌가요? 1304호?”
“아뇨! 1304호는 사람이 없어서 검침 못 했어요. 이 드릴 소리는 위에, 위에, 오른쪽이니까... 1403호네요. 무슨 공사하는 것 같더라구요. 근데 이 똑같은 소리가 났거든요. 옆집에서도, 1303호에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토요일 오전부터 시끄러운 소리에 윗집에 대한 원망이 한가득 쌓여가고 있었고, 가스 검침이 끝나면 경비실에 연락을 하거나 한 번 찾아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범인이 윗집이 아니라 다른 집이라뇨. 심지어 위에, 위에, 오른쪽 집이라뇨. 분명 소리는 바로 위 천장에서 나는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 아파트는 대부분 벽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벽식 구조의 특징 중 하나는 소리가 벽을 타고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집이 이 벽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구조상 아파트 내부에서 나는 소음은 같은 건물의 모든 집에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아파트에 살 때 일이 한 번 더 있었네요. 304호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했었거든요. 근데 너무 시끄러웠어요. 공사하는 진동이 저희 집까지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정말 바로 근처에서 공사하는 것 같은 소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1204호였습니다. 204호가 아니라...
저는 지금 벽식 아파트 탑층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옆집도 없는 탑층에 살고 있습니다. 저희 층에는 저희 집 1채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탑층은 단점이 많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오래 걸리고, 겨울에 다른 집보다 더 춥거나 결로가 생기기 쉽습니다. 위가 뚫려 있으니 그만큼 집이 바람을 그대로 맞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탑층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층간소음으로부터의 탈출.
아, 사소한 이유도 하나 있었네요. 팬트하우스에 사는 꿈을 이번 생에는 이루기 어려울 것 같으니 이렇게 라도 기분을 내보자는 마음도 아주 조금 있었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고 처음에는 절간에 온 것처럼 조용했습니다. 내 삶에 달라진 건 딱 이것 하나뿐이었는데도 하루하루가 행복했습니다. 이 집을 선택한 건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인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2년 정도는 그랬습니다. 밤이 되면 편안한 마음으로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완전 외향적인 줄로만 알았던 제가 집에서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갑자기 어느 날 깨졌습니다. 쿵쿵쿵쿵... 발망치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집 위에는 아무도 없는데 쿵쿵쿵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서 있는 바닥 아래쪽에서 퉁퉁 진동이 울렸습니다.
하나가 무너지기 시작하니 그때부터 와르르 다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밀대질을 하는 소리가 들렸고, 간헐적으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랫집에서 무얼 떨어뜨렸길래 윗집에서 이렇게 ‘쿵’ 소리가 날 수 있나? 제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범인은 아랫집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제가 범인을 잘못 지목한 건 아닐까 싶어 발품을 팔아 다 확인해 봤습니다만, 범인은 아랫집이 명백했습니다.
아래, 아래아래, 아래아래아래층 모두 저희 집처럼 한 층에 세대 수가 하나뿐입니다.
아래아랫집은 거동이 불편하신 노부부가 살고 계시고, 심지어 밤 9시도 되기 전에 주무셨습니다. 아래아래아랫집은... 거기서 물건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위위위집까지 들린다면 조금 많이 이상하고 충격적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음이 발생했을 때 불 켜진 집도 아래층 밖에 없었구요. 말소리도 종종 들려왔기 때문에 범인을 특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사실 다른 집이 범인이라고 해도 ‘밑집소음’으로 인해 제가 괴로워진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탑층이었고, 제 위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아,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누가 살고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 근데 이게 사실이 되는 순간...?! 소.름. 그만 상상하고 싶네요.)
너무 이상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웬걸... ‘밑집소음’이라는 검색어에 나오는 글만 해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도 윗집이라면 쉬운 거 아냐? 복수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다음 화에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범인을 섣불리 단정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범인은 여러분의 위에도, 아래에도, 옆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저 멀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구요.
내가 피해자고 너무 괴롭지만 일단 처음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유력한 용의자는 윗집이 맞겠지만, 그래도 항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합니다.
범인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형사들처럼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귀찮고 힘든 일입니다. 편하게 누워서 쉬어야 할 시간에 옷을 입고 밖에 나가서 여기저기 탐색을 해야 하니까요.
지피지기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입니다. 상대를 알지 못한다면 절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분들은 모두 알 것입니다. 이 소음을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집에서 편히 쉬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물론 원인을 알아도 해결 못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범인이 정말 이상한 이웃일 수도, 아니면 기계에서 나는 소리일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범인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층간소음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개념 없는 이웃을 만나게 된 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유달리 큰 것도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피해자입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닌, 외부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자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 글은 위로와 해결보다는 분노와 복수심이 많이 담긴 글이라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분위기를 이어서(?) 다음 글은 복수를 포함한 이웃과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 글은 위로와 해결보다는 분노와 복수심이 많이 담긴 글이라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분위기를 이어서(?) 다음 글은 복수를 포함한 이웃과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