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at Jul 28. 2023

집 주소가 New York이 되던 날

낯설었던 곳이 가장 익숙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뉴욕의 첫 번째 방문은 2016년 겨울이었다. 미국에서의 첫 번째 학기를 마치고 바로 뉴욕으로 날아왔다. 한국에서 같이 유학 준비를 하던 친구들 세 명은 모두 뉴저지로 유학을 나왔고 나만 저 멀리 남부 Tennessee에서 첫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나름 주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 산다는 자부심으로 친구들에게 큰소리 떵떵 쳤지만 뉴욕은 역시나 대도시였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아 미국으로 유학을 나왔지만 난 미국 안에서도 우물 안에 머물러 있던 느낌이었달까. 뉴욕은 확실히 달라도 많이 달랐고, 자칭 세계의 수도라는 말을 첫인상 만으로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2016년 12월의 뉴욕. 왜 찍었는지도 모르겠고 뭘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참 못 찍던 시절.


3주간의 긴 뉴욕 여행을 마치고 든 생각은, "뉴욕은 여행으로는 좋지만 살기는 좋지 않다"였다. 뉴욕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한적한 동네에 있었던 나는 복잡하고 사람 많은 뉴욕이 오래 살기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냄새나는 지하철은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더 강화시켰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 후 그곳은 내 생활 터전이 된다. 그리고 지금도 그 복잡하고 사람 많은 그곳을, 냄새나는 그 지하철을 타며 매일 활보한다.


대학원을 뉴욕으로 오게 되면서 작년부터 나와 아내는 뉴욕에서 살기 시작했다. 나는 뉴욕대학교 대학원 생으로 아내는 뉴욕대학교 병원 임상간호사로 그렇게 결혼 6개월 만에 두 번째 신혼집을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꾸리게 되었다.


뉴욕에서의 첫 보금자리였던 StuyTown
뉴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일 vendor. 값이 일반 마트보다 많이 저렴해서 자주 이용한다.
Manhattan Bridge와 그 뒤로 보이는 Brooklyn Bridge. 이곳에서 보는 뷰는 언제나 아름답다.
잊지 못할 Empire State Building에서의 야경
집 가는 길 East 14번가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노을


처음엔 뉴욕에서의 생활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지만 이제는 뉴욕에서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지 궁리 중일 정도로 이 도시가 좋아졌다. 도시를 싫어하는 아내도 뉴욕에서 오래 살고 싶다고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얼마 전 읽은 조승연 작가의 리얼하다에서 공감 가는 문구 두 개가 있었다.


처음 뉴욕에 간 사람은 비싼 물가, 불친절한 사람들 때문에 뉴욕에 질려서 다시는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워킹 투어를 하다가 자기가 어느 동네에 무슨 이유로 끌리는지를 발견하면서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기의 면모를 발견하는 도시가 바로 뉴욕이다. 뉴욕에서는 항상 어느 구석인가 나와 맞는 것이 있다.
사람은 원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뉴욕의 낡고 불편한 집은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장소이기 때문에 단순히 낡은 집만이 아닌 것이고, 뉴욕의 지저분한 지하철은 새로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열차이기에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정전이 잦지만 마음 놓고 타고 간다.


뉴욕에 있으면 많이 걷게 된다. 그렇게 오래 걷다가 정말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발견하고 그걸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에 대해서 한 번 더 배우게 된다. 그리고 뉴욕의 집들은 정말 대부분 다 비좁고 냄새나는 지하철은 종종 인상을 찌푸리게까지 한다. 그런데 나에게 매번 새로운 꿈을 심어주는 뉴욕을 이런 표면적 단점 몇 가지로 미워할 수 없다. 이상하게 오히려 더 끌린다.


나는 아직 초짜 뉴요커다. 그래서 언제는 관광객처럼 언제는 진짜 뉴요커처럼 뉴욕을 매번 새롭게 바라본다. 아직 뉴욕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지만 하나씩 알아 갈 때마다 이 도시의 매력을 느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