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가에서 봄, 가을에 흔히 과잠을 볼 수 있다. 과잠은 학과 잠바의 줄임말로, 학교와 학과, 학번 등을 새긴 야구잠바의 형태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옷이다. 과잠은 단체티의 개념을 넘어서 대학생들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과잠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교환학생을 한 학생들에게도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핀란드의 집 근처에서, 궁서체로 "교환학생"이라고 적혀있는 아주대 과잠을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명지대, 연세대 과잠을 입은 외국인도 헬싱키를 지나다가 본 적이 있다.
스카이캐슬의 한 장면 (출처 : 디스패치)
스카이캐슬에서 하버드생인 척 연기한 차세리의 경우에도 하버드 과잠과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과잠이 야구잠바라서 왠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과잠이 학교의 문화로 자리 잡아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유럽은? 이곳에 오기 전 까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핀란드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교환학생을 맞이해주는 친구들이 비슷한 디자인의 스키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이 바지를 본 적 있냐며, 물어보기도 전에 소개해줬다.
오버롤(overalls)이라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과잠처럼 스칸디나비아의 대학생들이 즐겨 입는 옷이라고 알려줬다. (스웨덴은 확실한데, 다른 나라는 확실하지 않다고 이야기해줬다)
패치를 직접 바느질해서 다는데 패치가 많을수록 인싸의 증거라고 이야기해줬다. 그 뒤로, 한국인 친구들 사이에서는 오버롤(overalls)을 "인싸바지"로 부르게 되었다.
(overalls, coverall 등 말이 너무 다양해서 여기서는 overall로 통일해서 말할 예정이다)
다양한 색깔의 오버롤 (출처 : ESN uni Turku)
오버롤을 입는 것은 핀란드 학생들에게 큰 전통이며, 이 전통은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 오버롤은 공식적인 파티 복장이라, 공식적인 파티의 장소가 클럽이라면 클럽에서 다양한 오버롤을 마주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과잠과 비슷하게, 동아리나 학과별로 색상과 디자인을 달리하여 자신의 그룹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자신의 오버롤과 똑같은 오버롤을 찾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패치와 파티용 기구(병따개, 호루라기, 플라스틱 잔) 등으로 자신만의 오버롤을 꾸미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패치가 붙여지지 않은 오버롤은 볼 수가 없다. 있다면, 정말 허전하고 이상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이 패치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내가 어느 이벤트에 참여했고, 친구들이 누구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느 팀을 응원하는지 알려준다. 그래서, 이벤트에 참여할 때, 이벤트 주최자가 패치를 나눠주기도 하고, 이벤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패치를 맞교환하여 이 사람의 친구가 되었음을 알리기도 한다. 그래서 내 파견교에서는 교환학생들을 위한 이벤트, 행사의 일환으로, 바느질로 패치 붙이는 것을 진행하기도 했다.
원래 오버롤 착용 모습 (출처 : https://rakennusinsinoorikilta.fi/for-new-students/to-be-a-teekkari/)
위의 오버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많은 패치들을 붙이고, 벨트를 통해 파티용품(모자 등)을 부착해 나만의 오버롤을 입게 되는 것이다. 원래의 오버롤은 이렇게 상하의를 모두 덮는 형태이다. 하지만 이렇게 입는 학생들은 거의 없고, 상의 부분을 접어, 하의로만 입는다.
주로 상의를 접어 오버롤을 입는다 (출처:ESN FINT)
보통의 착용 모습이다. 물론 대부분 패치들이 가득한 상태로 입지만 말이다.
내가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매년 5월 1일 Vappu (바푸)라는 행사에서 학생들이 오버롤을 입고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우리나라 과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과잠은 상의에 걸치는 용도이고 오버롤은 상/하의가 모두 갖춰져 있지만 하의 대용으로 입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옷을 입는 빈도수가 다른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과잠만큼 이 옷을 즐겨 입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과잠을 집 앞에 나갈 때, 옷에 신경쓰기 귀찮을 때 막 입고 나가곤 하는데 이곳은 주로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입는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우리나라의 과잠 문화가 몇 년이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핀란드의 오버롤 문화가 30년이 넘은 건 너무 신기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소속감을 드러내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옷이 가장 좋다고 느끼고 이를 문화로 발전시킨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