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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Nov 19. 2024

지나친 배려는 타인을 불편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표현한 만큼 이해해 주었으며 이해한 만큼 행동하였다.


  나의 배려는 때로 상대에게 부담이 되거나 불편함을 준 것 같다. 서로 배려하다 오히려 어긋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고, 어떤 오해가 생겼을 때, 상대가 내 변명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 나는 굳이 애쓰지 않았다. 그저 오해를 안고 살아가며 불편한 관계를 이어 갔다. 처음엔 그 불편함이 나만의 몫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해를 품고 살아가는 상대방 역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고, 혹여 잘못 풀다가 더 큰 오해를 낳을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단순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오해는 나비효과처럼 퍼져 나갔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내 아이에게도 나쁜 감정을 품었고, 그 감정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다. 그들의 미움은 나의 주변 사람들까지 향했고, 나 역시 그들을 미워하며,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면 “내 진심을 이렇게 몰라주는 사람이라면 나도 필요 없어! 이렇게 불편한 관계라면 이제 안 만나면 그만이지”라며 모든 관계를 자포자기하며 끊어내기도 했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마음을 나누면서도 마지막 한 겹 속마음으로 가는 얇은 막을 걷지 못한 채... 어쩌면 계속 겉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여차 하면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면서...     


 적당히 베풀고 적당히 겸손하고 적당히 친절하며 적당히 솔직하다면 아주 좋은 관계를 이루며 살 수 있을까?           



  몇 년 전 나는 아이 생일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그때 다른 친구인 미나가 우리 아이와 생일이 비슷해서 합동 파티를 하기로 했다. 세 아이가 만나는 자리에 두 명이 생일이라 고민이 되었다. 나머지 한 아이인 정훈이에게도 선물을 주어야 할 것 같았지만 나만 챙겨 주면 미나 엄마가 난처해질 것 같아서, 미나의 생일 선물만 챙겨가기로 했다.


  그런데 미나 엄마는 우리 아이와 정훈이의 선물을 모두 챙겨 와서 센스 있는 엄마가 되었다.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을 하면 미나 엄마가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질 것을 염려해 굳이 변명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 버렸고 나는 두고두고 정훈이 엄마를 볼 때마다 미안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미나 엄마를 생각한 지나친 배려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든 사례이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선물을 준비할 때 미나 엄마와 연락하고 충분히 의논했다면 이런 난처한 상황은 없었을 텐데 이 또한 아쉬움을 금할 길 없었다.          




  또 어느 날 큰아이가 학교에서 필요한 자격증 시험을 치는데 데려다주고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와 친분이 두터운 학모 한 분을 만났고 너무 반가워 함께 차를 마시기로 했다.

  그녀의 둘째 아이가 우리 큰 아이와 가까운 친구 사이라 유난히 정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보다 더 친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나와한 선약 때문에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나는 자리를 피해 주고 싶었고, 때 마침 내가 아는 지인들이 무리 지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합류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있었고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서 썩 동행하고 싶진 않았지만 내가 먼저 자리를 뜨지 않으면 그녀가 내게 미안해서 “차는 다음에 마셔요”라고 말하지 못할까 봐 먼저 선수 친 셈이다.     

  “저는 다른 분들과 차 한잔하고 올 테니 저분들과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라고 했지만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더 친한 사람들이 오니 나를 배척하고 가는구나’라고 생각한 걸까?


  그 뒤 그녀는 나를 피했다. 그녀의 행동이 냉랭해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많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내게 서운한 게 있는지 물어도 별일 없다고만 할 뿐 예전처럼 친절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그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지금도 가끔 인사하는 사이로 남았다.      


  그때 나는 표현의 방법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저와는 다음에 가셔도 괜찮으니 저분들과 다녀오세요”라고 하던지, “저분들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데 만나고 오세요. 저는 다른 분들과 함께 가도 됩니다.”라고 말을 하고 선택권을 그녀에게 주었다면 그런 서운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지나친 배려로 내가 불편해진 상황타인이 불편해진 상황을 떠올려 보고 표현의 중요함을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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