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로의 오래된 카페
며칠 후, 유진은 도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유진 씨, 시간이 되시면 사무소로 와주세요. 더 알아낸 게 있어요.”
평소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어딘가 결의에 찬 느낌을 풍겼다.
탐정 사무소에 도착한 유진은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펼쳐진 자료를 보았다. 도훈은 사진 속 배경과 관련된 장소들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를 정리해놓고 있었다.
“이 사진, 오래된 카페에서 찍힌 게 맞는 것 같아요. 서울 중구 퇴계로에 있는 곳인데, 놀랍게도 지금도 운영 중이더군요.”
도훈은 사진 속 배경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리고 이 여성…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녀의 주변 인물들과 연결점을 찾는다면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 겁니다.”
유진은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그 카페에 가봐야겠네요. 혹시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곳에서 오래 일했던 김석진이라는 분이 근처에 살고 계세요. 당시 이 여성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튿날, 유진과 도훈은 영등포에 있는 오래된 카페를 찾았다. 낡은 목재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따뜻한 분위기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벽에는 빛바랜 사진들과 손님들이 남긴 낙서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여기, 정말 시간이 멈춘 것 같네요.” 유진이 작게 감탄했다.
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맞아요. 그런데 단서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두 사람은 카페를 둘러본 후, 김석진의 집을 찾았다. 김석진은 연립주택의 허름한 현관문을 열고 두 사람을 맞이했다. 도훈이 사진을 내밀자, 석진은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확히 이 여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은 있어요. 이 동네 카페랑 다방에서 일하던 여자로 기억해요. 15년 전쯤엔 동생이 죽었다고 하더니 한동안 자취를 감췄었죠. 몇 년 후 다시 나타났지만, 지금은 이 동네를 떠난 지 오래예요.”
유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김석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김혜수라고 했어요. 유명 연예인이랑 이름이 같아서 기억하고 있죠.”
유진과 도훈의 눈빛이 교차했다. 드디어 단서가 잡힌 것이다.
“혹시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 도훈이 물었다.
석진은 고개를 저으며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모르겠어요. 친하게 지내던 사람도 아니고, 그냥 인사나 하던 정도라서요.”
더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돌아서는 석진과 헤어진 두 사람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탐정 사무소로 돌아온 유진과 도훈은 작은 성과에 안도하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혜수라는 이름이 나왔으니, 이제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야 해요.” 도훈이 무겁게 말했다.
유진은 결심한 듯 입술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더라도 해야 해요. 이 비밀을 밝히지 않으면 제 가족 이야기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 같아요.”
도훈은 그녀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보며 미소 지었다.
“좋아요. 본격적으로 시작해 봅시다. 김혜수를 찾아내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어딘가에 있을 그녀, 김혜수를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날 진실은 두 사람 모두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