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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작은 권리를 짓밟지 말아 주세요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건강한 창작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이야기

by 구르미

누군가의 그림 한 장, 누군가의 노래 한곡, 누군가의 글 한 줄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창작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자의 땀과 열정, 그리고 꿈과 혼이 담겨 있지요. 그 소중한 권리를 박탈당하는 순간, 누군가의 꿈과 미래가 박탈당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창작 생태계가 무너지고 무분별한 도용과 불법 유통이 일상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귀중한 창작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타인의 노력을 존중하지 않는 분위가 확산된다면 결국 창작의 의욕이 꺾이고 문화와 예술의 뿌리마저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저작권은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누군가의 창작물은 그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으며, 그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창작자를 지키고 문화의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리를 짓밟지 말아 주세요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어요. 학창 시절에는 미술부 활동을 하거나 미술대회를 나가는 게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었고 연필 한 자루와 스케치북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회사에서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또는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집에서 놀 때에도 작은 노트를 꺼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상사가 제 노트를 보게 되었고, 뜻밖에도 “정말 감각이 있네. 디자인팀에 있어도 되겠어”라며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상사의 칭찬에 용기를 얻는 전 틈만 나면 회사제품과 관련된 그림을 그려서 직원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고 소감을 들어보기도 하며 어떻게 하면 인사과로 지원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 뒤, 회사에서 발표한 신제품 디자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 그림과 매우 유사한 형태와 색감이 적용된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눈에 봐도 제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디자인이었지만, 정확히 똑같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고, 그림을 그릴 때 저작권 등록이나 어떤 공식적인 보호 장치를 해두지 않았기에 그 누구에게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그림이 회사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허탈하고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가 나중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또한,

저는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제 소중한 그림을 빼앗긴 경험이 있었기에

어른이 된 지금도 그림을 그릴 때면 괜히 소심해지고 망설이게 됩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의 일이었어요. 우리 반 학급 반장이었던 그 친구는 나보다 그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잘했지만 자유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자 생각이 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미술 학원을 다니는 학생이었기에 그림실력은 나보다 훨씬 좋았지만 창의력은 제가 더 뛰어났어요.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께서도 "어쩜 이런 생각을 했어?", "기발하구나?", "좋은 생각이야." 등 내가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칭찬과 공감을 아끼지 않았고 부모님도 "너는 창의적인 아이니까 무슨 일을 해도 잘 할거야."라며 격려해 주곤 하셨죠. 그날은 학교에서 열리는 그림 대회 날이었고, 1등에게는 상장과 함께 상금이 주어졌습니다. 처음엔 그 친구가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제 그림을 슬쩍 보더니 그대로 따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했지만, 어리기 때문에 그것이 부당하다는 말을 선뜻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너무도 뻔했습니다. 저보다 그림 실력이 훨씬 뛰어난 그 친구는 제 아이디어보다 훨씬 더 세련되게 완성했고, 결국 대상까지 받았습니다. 더 억울한 것은 선생님께서 제가 그 친구의 그림을 흉내 낸 것이라며 주의를 주셨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날 느꼈던 상실감과 억울함, 그리고 영혼이 송두리째 빼앗긴 듯한 기분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어요. 그 이후 저는 그림을 그릴 때면 괜히 숨기게 되고, 내 그림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생활 속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사람이었어요.


친구들과 캠핑을 가거나 함께 모여 놀 때도, 회사에서 동료들과 회식을 할 때도 그때그때 즉석에서 필요한 생필품을 만들어 불편함 없이 놀았고 그때마다 친구나 회사동료들은 "오! 기발한데?"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의 이런 재능을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누군가 제게 칭찬을 하면 "이거 어디서 봤는데... 그거 보고 따라 했나 보네?" 라며 핀잔을 주거나 말없이 보고 있다가 자신이 먼저 공개를 해서 자신이 만든 것처럼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요. 저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깟 일로 따지고 싸우고 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만들고 그리고 발명을 하고도 당당하게 내세우지 못했고 점점 소심해졌습니다.



이처럼 저작권은

한 사람의 창의력과 열정, 노력과 시간을 지켜주는 소중한 약속입니다.


작은 낙서 한 장, 사소해 보이는 아이디어 하나에도 그 사람만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권리가 무시되고, 누군가의 노력과 재능을 손쉽게 가로채는 일이 반복된다면 어떤 이도 더 이상 마음껏 꿈꾸고 창작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작권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창작자가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보호하고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고, 그 권리 위에서 더 크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작은 권리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더 공정하고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입니다. 아무리 작은 창작물이라도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믿음, 그것이 저작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표지사진]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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