뻑뻑한 일상을 물 없이 삼키고 있다
가끔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곤 한다.
매일 저녁 잠깐이나마 얼굴을 볼 수 있던 남편은 이제 3000km 떨어진 타국에 있다. 휴대폰 영상으로 가끔 생사를 확인할 뿐이다. 애틋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서로의 일상에서 멀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한국에 있으면 친구라도 자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각자의 삶으로 인해 얼굴 한 번 보기 쉽지 않다. 시시콜콜한 대화를 카톡으로 끊임없이 이어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톡을 보내기 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만두기가 일쑤다. 바쁜 삶을 사는 그들에게 자칫 방해가 될까 싶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나름 외로움, 고독과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이십 대에는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외롭다고 신세 한탄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주로 연애에 대한 고민이었고 내 투덜거림을 들어줄 이가 많았다. 전화 한 통이면 달려올 친구가 있었고 시시콜콜한 내 일상을 궁금해하는 엄마가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나 혼자. 뻑뻑한 일상을 물 없이 삼키고 있는 기분이다.
오늘 재밌게 본 넷플릭스 드라마 이야기도 하고 싶고, 혼자 맛있게 해먹은 점심밥 이야기도 하고 싶고, 미치도록 사랑스럽지만 속 터지게 말 안 듣는 아이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나눌 사람이 없다. 좀 더 감정 과잉상태가 되면 인스타그램에 몇 자 적어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청승맞아 보여 금세 지워버리고 만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아마 다들 비슷하지 않나? 이 감정, 이 외로움, 어떻게 해소하며 사는 걸까.
얼마 전 영화 <다가오는 것들>을 보았다. 중년 여성인 주인공은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평범하지만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산다고 믿고 있을 때, 남편이 외도를 고백하며 집을 떠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책의 출판마저 무산되고 그녀를 밤낮으로 찾던 어머니마저 숨을 거둔다. 이미 아이들은 그녀의 곁을 떠난 지 오래. 그녀는 좌절하고 흔들리고 외로워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처럼 교실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묵묵히 일상을 살아간다. 그녀에겐 철학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내게도 그런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부가 되면서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낸다. 사실 살갑고 다정한 남편, 마음 통하는 친구의 존재는 감사하긴 하지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내 삶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나 혼자니까. 혼자서도 충만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내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무언가에 기대어. 영화 주인공처럼 철학일 수도, 아니면 누군가에겐 취미생활 혹은 반려견, 식물일 수도. 나에겐 어쩌면 책 읽기와 글쓰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단단한 일상을 살고 있을 때, 내 옆에 누군가 다가오면 지금보다 넓고 포근한 곁을 내어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