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와 다른 제주도만의 독특한 결혼식과 장례식 문화
제주도는 한국의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독특한 경조사 문화를 가지고 있다. 결혼과 장례를 포함한 중요한 행사에서 제주의 전통적 관습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공동체 중심의 문화에서 비롯된 독특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 들어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제주도의 결혼 문화
1. 가문잔치
제주도의 결혼 문화는 일반적인 예식장에서의 단 하루 행사로 끝나는 육지와는 달리, 며칠에 걸쳐 진행되는 전통이 있다. 혼례 전날 진행되는 가문잔치는 제주 결혼 문화의 독특함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행사이다. 결혼식 하루 전날을 ‘가문잔치’라 하고, 결혼식 다음날을 ‘사돈잔치’라 했다. 신랑 신부 각자의 집에 가문(家門)인 친척만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잔치하는 것을 이른다.
결혼식 이틀 전 날은 돗(돼지)을 잡는다. 제주도에서는 결혼피로연에 반드시 돼지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혼례 2,3년 전부터 돼지를 기르는 게 관례였다. 지금은 돼지를 직접 사육하는 집이 거의 없으므로 양돈하는 곳에서 돼지를 직접 사서 쓴다. 보통 5~7마리의 돼지를 잡으므로 동네 사람들과 많은 친지, 친구들이 모여 들어서 남자는 돼지를 잡고 여자들은 음식 장만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음식은 이날 모두 만들어진다.
결혼식 전날은 전날 마련한 음식을 친지와 하객들에게 접대하는 날로 결혼 당일보다 이날에 더 축하객이 많고 분주하다. 대부분의 부조도 이때 하며 결혼식에 참가하지 못하는 마을 주민들도 이날만은 꼭 찾아와 축하와 함께 부조를 한다. 이때 신랑과 신부측에서 마련한 음식을 대접 받으므로 하객들은 이날이 되면 '잔치 먹으러 간다' 또는 '먹을 일 있다.'라는 표현을 쓴다.
가문잔칫날은 돼지고기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국’과 ‘가문반’을 나누어 먹는다. 옛날에는 가문잔치가 비중이 높았으며, 가문만 모여서 지내는 의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문잔치를 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잔치도 아니라며 흉보기도 하였다.
가문잔치는 과거처럼 가문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요즘은 신부집에서 잔칫날처럼 손님을 대접하는 날로 변하고 있으며, 3일 잔치가 하루로 단축되고 있다. 이는 통혼권과 생활권이 확대되면서 나타나는 변화로 본다.
이 과정에서 축의금을 받는 방식도 육지와는 다르다. 제주에서는 접수처가 따로 마련되지 않고, 혼주에게 직접 축의금을 건네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개인적인 감사 인사가 오가는 것이 제주만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 축의금을 전달한 하객은 답례로 상품권이나 소정의 선물을 받기도 한다.
2. 겹부조
제주 결혼 문화에서 가장 독특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겹부조'이다. 겹부조란 친분이 있는 신랑 신부, 그리고 그들의 부모에게 각각 축의금을 따로 전달하는 전통이다. 예를 들어, 신랑과 신부 모두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면 각각의 봉투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신랑 신부의 부모와 친분이 있는 경우에도 별도의 봉투를 준비해야 한다.
겹부조는 부모와 자식 간의 철저한 분가 제도와 부부 간 경제적 독립성이 강했던 제주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제주의 전통 가옥 구조인 안거리와 밖거리의 분리는 세대 간 경제적 독립을 상징하며, 이로 인해 가족 구성원 각각이 독립적인 축의금을 주고받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3. 오랜 잔치와 부신랑/부신부 제도
과거 제주에서는 결혼식이 5일에서 7일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에 와서 잔치 기간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최소 3일간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첫날에는 돼지를 잡아 음식을 준비하며, 둘째 날에는 가문 잔치로 친척과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인다. 결혼식 당일에는 하객들을 맞이하며 하루 종일 잔치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신랑 신부는 많은 하객을 직접 응대해야 하므로, 그들의 역할을 대신할 '부신랑'과 '부신부'가 지정된다. 이들은 하객 응대, 축의금 관리, 잡다한 심부름 등을 맡으며 결혼식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신랑과 부신부의 역할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며, 이 제도는 과거 대규모 잔치를 치르는 데 필요한 효율성을 높였다.
제주도의 장례 문화
1. 접수대와 방명록의 부재
제주의 장례식에서도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부의금을 받는 접수대나 방명록이 없다. 조문객은 친분이 있는 상제(고인의 가족)들에게 직접 부의금을 전달한다. 만약 고인의 자녀가 여러 명이라면, 각 자녀와의 관계에 따라 별도의 봉투를 준비해야 한다. 이는 겹부조 전통이 장례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례이다.
부의금을 받은 상제는 답례로 상품권을 준비해 조문객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방식은 장례식 비용을 충당하는 동시에 상제와 조문객 간의 직접적인 소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상제에게 많은 준비와 부담을 요구하기도 한다.
2. 일포제와 윷놀이 문화
제주에서는 출상 전날인 '일포'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일포제는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을 의미하며, 많은 조문객이 이 날을 선택해 문상을 온다. 제주에서는 장례식장에서 전통 윷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슬픔 속에서도 공동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위로를 나누는 제주만의 방식이다.
현대적 변화와 경제적 부담
전통적인 제주의 경조사 문화는 현대에 들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호텔 예식장과 전문 장례식장의 등장으로 잔치와 접대의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이다. 겹부조 문화는 경제적 부담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이를 완화하려는 사회적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부 마을에서는 겹부조를 간소화하거나 축의금 금액을 제한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오랜 전통과 공동체의 유대감이 깊이 뿌리내린 제주의 경조사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제주의 경조사 문화는 단순히 관습의 집합체를 넘어,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이 전통은 현대적 변화와 함께 적응해 가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제주 사람들의 삶의 철학과 가치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제주에서 경조사를 준비하거나 참석하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독특한 전통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