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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hyeon Rhee Apr 28. 2020

대한민국의 90년대생, 90년대생의 대한민국 Ⅰ

INTRO



우리 버릇없는 90년대생에게는 사명(使命)이 있다. 20C에 얽매인 대한민국(大韓民國)을 21C에 알맞도록 그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제 강점과 군부독재 등의 옛날이야기는 모두 쉰내 나는 꼬장이다.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 뭐 어쩌라는 소리인가? 우리는 조선인이 아니고, 독재 치하에 있지도 않다. 우리는 더 이상 100년 전 일제 강점과 50년 전 군부독재라는 과거에 얽매일 생각이 없다. 나의 이 버르장머리 없음에 해당 세대들은 충분히 불편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이 그야말로 당신이 꼰대라는 증거다. 부디 우리를 먼저 알아봐 주시고 혼낼 것은 혼내주시길 바란다.


우리 90년대생들은 당신들 같은 격동의 세대가 아니다. 개인의 영역을 지극히 중시하며 스스로가 추구하는 가치를 소중히 하는 세대다. 지금부터 필자는 '90년대생이 추구하는 가치들이란 무엇인가', 그것들에 대한 시리즈를 포스팅할 것이다. 평소에는 할 말 못 할 말 가려서 글을 써왔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그럴 생각이 없다. 가히 포르노 수준의 르포를 보여드릴 테니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좌측은 한국전쟁의 전쟁터의 사진이고 우측은 새마을운동 현장의 사진이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거리의 사진이다


우리 90년대생들의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은 이전 세대의 선배들의 피를 영양 삼아 세워진 국가다. 90년대생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에 저항하여 피를 흘렸다. 한국 전쟁 때는 한국군과 UN군이 낙동강 위로 단 1m 간격도 남기지 않고 핏자국을 남겨가며 이 나라를 지켰다. 민주화 운동 때는 군부 독재에 항거해 열사들이 광장과 거리에서 스스로를 불살랐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90년대생은 그들 선배들 덕에 이제는 공동체를 위해 피를 흘릴 일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감히 말하고 싶다. 선배들에게 드릴 우리의 감사는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뿐이다. 그 이상의 핏값은 치러드릴 생각이 없다.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독립 운동가가 지킨 민족, 한국군과 UN군이 지킨 대한민국이란 나라, 고속성장 시대의 부모님들이 일구어낸 산업, 운동권이 성취한 민주주의. 우리 90년대생들에게는 시큰둥하기 짝이 없는 가치들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그것들이 꽤나 충분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그런 가치들에 굶주렸지만, 우리는 이미 그에 관해 배부르다. 모두 부질없는 옛날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에게 그런 부류의 전래동화는 격렬히 시시콜콜하다.


#1_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의 90년대생


한국 사회의 어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6070은 산업화 부심에 4050은 민주화 부심에 썩어 문드러져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 참으로 버릇없는 말일 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셨으면 한다. 과연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2020년에 산업화와 민주화가 최우선 가치가 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그들은 20C의 낡은 가치다. 우리 90년대생들은 그 낡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어른들과 비교할 수 없이 예민하고 영리하며, 풍부한 감수성과 다양한 시각을 갖고 있다.


당신 선배들은 우리의 이와 같은 특출남을 결코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당신들은 사춘기가 오기 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해본 적도 없고, 학교에서 체벌이라는 통제 수단 없이 자라본 적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90년대생들은 이미 학부시절부터 유럽여행을 비롯한 해외여행을 숱하게 다녀오는 세대다. 당신들의 도그마와 우리의 도그마는 깊이가 짜칠지언정, 그 너비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다. 90년대생들이 선거에 진입한 이후의 선거들을 짚어보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20대들은 이미 이전 세대들에 세 번이나 결별을 통보했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20년 총선이다. 먼저, 2016 총선부터 알아보자. 새누리당의 압승이 점쳐지던 20대 총선 당시 되치기를 날린 것은 다름 아닌 20대였다. 20대들이 전교조에게 세뇌되어 밑도 끝도 없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여기는 어른들이 많다는 것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도 동의한다.  지난겨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윤석열 OUT”을 외쳤던 다섯 살배기 아이 수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무려 성인’ 20대들 정말 많다.


어른들 말대로 전교조한테 세뇌되어 무뇌 투표를 하는 깨시민 20대들 세상천지에 널리고 널렸다. 그들은 스스로가 주체적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문조차 읽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혹시 신문을 읽을지언정 조중동은 멸시하고 한겨레와 경향신문만 찬양하지 않는가. 그토록 편협한 수용능력으로 어찌 정치를 꼼꼼히 살펴볼 수가 있을까. 이건 색깔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노력의 문제다. 해외 국가수반들이 한겨레와 인터뷰는 안 해줄지언정 조선일보와는 인터뷰를 해준다. 워렌 버핏이 유일하게 인터뷰에 응해준 국내 언론사 역시 조선일보다. 그렇다. 전교조 교사들이 하는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은 단 한 번도 주체성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세뇌당한 것이 맞다. 옳게 세뇌되었든 그르게 세뇌되었든 세뇌된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토록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게 된 일례가 있다. 필자는 군 복무 중에 수능에 응시하여 교육대학에 새로 입학하기 전까지 부산대학교에 다녔었다. 부산대학교가 공부를 잘하거나 똑똑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지방 국립대 중에서는 가장 알아준다는 학교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당시 부산시장의 이름도 몰랐다. 즉,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공동체에서 역할을 분담해야 마땅할 그들에게 네이버의 메인 화면은 구글의 메인 화면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그 아래의 뉴스는 읽을 일이 없으니까. 그런 그들이기에 나는 20대 총선에서 그들이 던졌던 표가 절대 책임 있는 민주시민의 표였으리라 여기지 않는다. 그들 대다수 정치적 백치들에게 선거란 파란 옷 입고 손등에 투표 도장을 찍어 SNS에 올리기 위한 놀잇거리에 불과했다고 확신한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그들에게 세상사란 세월호와 N번방이 전부다. 90년대생들 절대다수에게는 작금의 사회 이슈들에 관하여 5분 이상의 토론을 할 능력조차도 없다. 그딴 정치적 편식쟁이가 가꾸어온 민주적 영양소라는 게 어찌 풍부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당신 독자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과연 이 90년대생들이 신문도 읽고 공부도 했었다고 한들 새누리당에 표를 줬을까. 책임감 있는 90년대생들이라고 새누리당에 표를 줬겠냐는 말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논점이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부질없는 일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론은 무효하다. 어떡하겠는가. 20대들도 표를 갖고 있고, 인구 곡선의 극대점 부근에 위치하여 앞으로 50년 이상 투표를 할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 우리 한국사회는 90년대생들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한다. 2017년 대선을 돌아보자.


자유한국당은 왜 패배했을까. 박근혜가 무능해서 그랬을까. 문재인이 대단해서 그랬을까. 둘 다 틀렸다. 협소한 표본이지만 명문대생들에게서 그 해설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분명 나름의 시선으로 사회를 볼 수 있을 정도로는 꽤나 배운 친구들일 것이다. 과연 그들이 탄핵 분위기에 휘둘려서 그런 투표를 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그딴 분위기에 휘둘리기에는 충분히 고고하다. 그들의 투표는 결코 위의 인스타보터(InstaVoter)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2017년 대선에서 행한 투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심벌로 하는 산업화 세대에 보내는 결별선언이었다. 산업화 세력은 더 이상 이 나라의 미래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낼 그릇이 못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에게 산업화 세대는 감사의 객체일 뿐, 통치의 주체가 될 수는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그들 중 보수성향인 학생들이 지지한 정당은 바른정당이었다. 그들이 바른정당의 업적을 지지해서 표를 준 것일까? 절대 아니다. 그냥 바른정당이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시늉을 하는 걸 보고서 표를 준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바른정당이 비록 지리멸렬 그 자체였지만, 산업화의 심벌인 자유한국당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리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산업화는 이미 끝났는데도, 그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산업화뿐이었으니까. 물론, 지금 관점에서 그들의 선택은 철저히 틀렸었다. 투표 경력이 없던 그들은 '전략 투표'가 아닌 '가치 투표'를 하는 어리숙함을 보여 버렸던 것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어리숙함은 결국 ‘대통령 문재인’과 ‘586’이라는 막대한 청구서를 받고 말았다.


#2_ 21대 총선(2020)에서의 90년대생


21대 총선의 관건은 누가 뭐래도 그 청구서, 문재인과 586이었다. 90년대생들의 586 혐오는 상당하다. 그 입에서 나오는 소시오패스적 꼬장은 고사하고서라도, 586의 인생 그 자체에 기시감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염병을 던지다 대기업을 갔다든지 할 일이 없어 공무원을 했다든지 하는 세계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명문대 학생이 아닌 이상 대기업은 꿈도 꿀 수 없고, 도서관에서 몇 년을 썩어나도 공무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허구한 날 그들이 떠드는 ‘부채의식’이란 말은 너무도 오만하기만 하다. 그들의 ‘부채의식’은 결코 이전 세대에 대한 감사가 아니다. ‘부채’란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얻은 이익을 보상해야 할 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들은 분명 ‘박정희 개새끼’를 매일같이 떠들어왔다. 즉, 그들은 이전 세대로부터 얻은 이익에 대한 감사는 고사하고, 아예 그를 부정해버리는 오만방자함을 보여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 세대의 의무는 강조했다.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의무를 말이다. 그게 어떻게 ‘부채의식’인가. 그냥 본인들이 질서를 주도해야만 되겠다는 폭거지.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위해 이전 세대를 팔아먹은 내로남불 신용불량자였단 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민주주의를 성취했음을 결코 부정할 순 없다. 산업화의 영광에 젖은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가치를 일깨워줬으니까. 하지만 산업화 세대에게 그들이 행한 바와 같이, 그들도 처분을 받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처럼 ‘감사합니다.’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신용불량자이지는 않다. 충분히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90년대생, 그 누구도,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하지만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거두었다. 무려 180석이다. 비록 자신들이 민주주의 악이라 피를 토했던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혜택을 잔뜩 본 것은 상도덕에 대단히 어긋나는 일이지만, 그들이 승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투표 조작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도대체 찾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세월호의 진실처럼 천만년을 찾아보라. 뭐가 나오나. 내 확신하건대, 선거 조작은 있었을 수도 없고, 혹여 있었다 한들 대세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조작을 하지 않았어도 민주당은 통합당에 압승하였을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다.


왜일까. 지난 탄핵으로 이미 심판을 받았던 미래통합당(구 자유한국당)은 왜 또 패했던 것일까.  '코로나 19 덕이다.' 또는 ‘대깨문이라 불리는 극성 지지세력 덕이다.' 등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정치’에 대하여 능동적인 관심을 폭넓게 가지고 있는 계층을 기준으로 판단해보자면, 아직 미진한 심판을 마저 하겠다는 의지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만 감옥에 갔지 아직 그 잔당들이 남아 있었지 않았는가. 그렇게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적폐 내지는 밉상으로 낙인찍힌 보수 인사들은 대부분 목이 달아난 것이다.


#3_ 앞으로의 정치, 그곳에서의 90년대생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한국인들에게는 조선의 나쁜 습성이 남아있는데, 과거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위인을 흠모하고, 소위 '국뽕'이라 불리는 장애 요소가 시도 때도 없이 발동된다. 한국인들에게 정치란 취지와 의도가 전부다. 결과에는 관심이 없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취지가 좋으면 만사가 장땡이다. 취지가 좋았으면 실패하더라도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구제불능의 종족이 한국인이다. 그런 헛짓거리를 결코 지랄이라 여기지 않고, 오히려 숭배한다.


우리 90년대생들은 바로 이 한국인들의 개버릇을 타파해야 한다. 이 지상과제의 달성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지배세력에 종속되면서도 뿌듯함을 느끼는 만성적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 90년대생들의 지상과제를 한 구절로 요약하자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실패한 역사는 해설지가 아니라 오답노트임을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이다. 2년 뒤면 스무 번째 대통령이 탄생한다. 이제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가 됐다. 미국이란 나라는 '자유'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된다. 단어 요약은 바라지도 않겠다. 한국은 한 문장으로도 요약이 되지 않는 나라라는 문제의식을 가지자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주의 정치학이 아니다. 브랜드 창출이란 현대 경영학이다.


미래통합당의 참패는 더불어민주당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치 동력은 심판이었는데, 더 이상 심판할 건덕지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진보세력은 보수세력의 부정(不正)을 연료 삼아 정치를 해왔는데, 그 연료가 동이 나 버린  것이다. 이제 그 심판의 칼날은 오른쪽에서 방향을 돌려 그들이 있는 왼쪽을 향할 것이다. 깨 놓고 말해, 지난 3년 간 문재인 정부에서 해낸 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터져 나온 숱한 비리들은 국민들이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를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가 없다. 그들이 행한 비위들은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를 살리려면 박근혜를 살리게 되는 꼴이 되고, 박근혜를 죽이려니 스스로를 죽여야만 하는 꼴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자충수이자 자기부정인 양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머지않아 완벽한 폐족이 될 것이다. 보수는 더 이상 산업화로 대표될 수 없고, 진보는 더 이상 민주화로 대표될 수 없는 상황이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 바야흐로 새로운 세력이 출현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20대 당신, 민주주의가 부족해서 우리의 삶이 괴로웠던 것이더냐? 절대 아니다. 그렇다.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도 다 40년 전 옛날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586은 여전히 우리에게 그 갈증을 심어주려 애쓰지만, 우리는 극렬히 무감각하기만 할 따름이다. 우리의 아젠다는 오히려 공정과 남녀 갈등 등의 새로운 이슈들이다. 심상정과 조국을 비롯하여 소싯적 민주화운동을 주야장천 떠드는 브라운관 속의 ‘나 때는 말이야.’ 고관대작은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렇게 꼰대처럼 옛날이야기만 할 심산이면, 환갑잔치나 하러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 그들을 환갑잔치에 보낼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가 또 그들에게 표를 준다면 그들은 우리 90년대생이 30대가 되었을 때도 쌍팔년도 이야기(40-50년 전 이야기)를 쉬지 않을 것이다.


우리 90년대생들은 그런 꼰대들을 결단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비단 박근혜뿐만이 아니다. 조국과 임종석으로 상징되는 586도 우리의 발목을 잡았고 그들은 심지어 아직도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또, 뭐, 민주주의 유린이니 뭐니, 영원히 확인되지 않을 허무맹랑히 아름답기만 한 소리하시고 싶을 테다. 그런데 어떡하나. 문재인 정부가 돈 안 되는 정부임은 온 지구가 인정하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더군다나, 뭐, 문재인 정부가 민주적이라고? 오늘도 삶은 소대가리의 입꼬리는 쉴 틈이 없다. 패스트트랙과 검찰 인사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가 허락한 권력을 가장 활동적으로 사용한 권력자다. 전두환 정부보다 청와대 권력이 더 센 정부가 바로 문재인 정부다. 청와대 권력이 왜 강하면 안 되는지는 모두 잘 아실 테다. 청와대 인사는 국민의 대표이자 선출 권력인 국회의원이 검증하지 않지만, 장관은 국회의원이 검증을 하기 때문이다. 즉, 검증되지 않은 권력이 비대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청와대와 장관의 관계가 이해가 안 된다면, 차라리 투표를 하지 마시라. 바로 그 구분 못함이 당신의 민주시민으로서 일말의 책임감도 없다는 증거니 말이다.


박근혜를 기수로 하는 산업화 세력은 이번 2020년 총선을 계기로 완벽한 불구가 되었다. 그들은 결코 부활할 수 없다. 부활해봐야 좀비다. 좀비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 직무유기다. 우리 90년대생은 문재인과 586을 청산해야 한다. 그들을 청산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을 위한 선결과제다. 그렇게 20세기를 정리하고 21세기로 나아가자.


_____이 글을 시작으로 90년대생의 아젠다를 정리해나갈 것이다. 첫 번째 아젠다는 ‘교육’과 ‘입시’다. 내가 가장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보겠다. 이 사회의 의결권을 가진 분들이 꼭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아요와 공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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