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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아르 Oct 13. 2020

프롤로그 #4

쉐아르의 영적 여행

1. 고등학교 시절 꿈은 물리학자였습니다. 자연 속에 감추어진 원리를 알고 싶었죠. 극저온 현상에 대한 글을 교지에 써서 물리 선생님의 이쁨도 받았습니다. 신앙과 과학은 어울리지 않다 생각할 때였습니다. 과학이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렸죠.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으로 인해 신의 영역이 침범당한다면 그게 과연 신인가? 그렇게 침범당하는 신을 왜 믿지?


2. 점수에 맞추다 보니 원하던 물리학과 대신 공대에 갔습니다. 대학에서 물리를 배우며 안 가길 잘했다 안도하긴 했습니다. 너무 어렵더군요. 어쨌든 그렇게 어릴 적에 가졌던 과학에 대한 열심은 잊혀졌습니다.


3. 무신론자를 자처했던 2년여의 시간 후에 다시 신앙으로 돌아온 후 종교에 대한 제 시각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달라졌습니다. 하나의 축은 과학입니다. 아니 과학이라 말하자니 지식이 부족하네요. 과학적 사고를 배운 정도입니다.


4. 과학과 신앙에 대한 시각은 고등학교 이후 그대로입니다. 인간에게 지성이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자연 속의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미지의 영역이 줄어들수록 신의 영역이라 가정했던 부분은 줄어듭니다. 그렇다고 지적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인간에게 지성을 허락한 신의 선의를 무시하는 거죠. 또한 신이 있다면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 있을 겁니다.


5. 그렇기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반지성 뒤에 숨는 행위를 싫어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창조과학이 있지만, 교회 내에 존재하는 각종 음모론과 혐오 또한 반지성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조과학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과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창조과학이라며 '과학'을 붙이는 것도 과학에 미안하긴 합니다만 적당한 용어가 없네요.)


6, 여러 증거에 기반해 적당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타당한지 반복된 검증을 하며, 가설에 맞지 않는 증거가 있다면 그 가설을 포기하거나 수정하는 접근방법이 제가 생각한 과학적 사고입니다. 이에 기준하면 수집된 증거 몇 개만 들이대도 깨어지는 창조과학의 가설들은 고려할 가치도 없습니다. 왜곡과 거짓으로 순진한 교인들을 속일 뿐이죠.


7. 과학적 사고는 창조과학의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고 제가 가졌던 신앙의 각 영역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문서설을 지지하는 증거들과 문서설에 대한 반론을 위해 제시되는 증거를 고려할 때 어느 쪽이 타당한가 보게 됩니다. 성경의 기록에 반하는 고고학 증거들을 보며 어떻게 해석할지, 고대 근동의 신화와 성경 이야기의 관련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등. 신학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제게는 과학적 사고의 영역이었습니다.


8.  Non-overlapping magisteria (NOMA). 진화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제시한 과학과 신앙에 대한 관점입니다. 서로 간섭하지 말고 각자 갈 길 가자. 이런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가졌던 관점과 비슷합니다. 전 초월의 영역을 믿습니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요. 또 이를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신이 세상을 7일 동안에 창조할 수도 있고, 예수가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날 수도 있으며,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반하는 증거가 없는 한에서요.


9. 세상이 7일 동안에 창조되지 않았고 노아의 홍수는 없었다는 증거는 많습니다. 출애굽이 있었다 여겨지는 시점에 가나안이 이집트의 지배권 하에 있었다는 증거는 확실합니다. 초대 교회 문헌을 통해 예수에 대한 믿음이 시간이 흐르며 바뀌어 갔음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증거들에 들어맞는 가장 타당한 가설은 성경이 히브리 민족과 초기 기독교인의 신앙고백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10. '겸손함으로 성경을 읽으며' 말씀이 주는 가르침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창세 설화가 과학이 되지는 않지요. 이제는 이런 구분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문자적 가르침이 하나씩 해체되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땐 자연스럽게 제 신앙도 사라지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될까 걱정되지는 않습니다. 또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11. 그 '믿음'을 도와준 다른 축은 신학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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