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아르의 영적 여행
1.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뭘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세상이 특별한 목적이 없이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그중 하나일 겁니다. 하늘의 별과 달이, 예쁜 강아지가 그리고 내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 뒤에 누군가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버려진 시계를 보면 누군가 이 시계를 만들었다 생각하며 그를 '신'이라 부릅니다.
2. 저도 그랬습니다. 인간 신체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메커니즘들. 우주의 미세조정에서 보이는 놀라운 조화들. 이런 모든 것들이 우연히 되었다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를 설계한 지적인 존재가 있다 믿었죠. 하지만, 그 생각은 한 가지 반론에서 깨졌습니다.
3. 이런 것 생각해보죠. 땅 속에 가는 구멍이 있습니다. 미학적으로 배분된 비율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곡선이 아름답습니다. 어떤 경우는 평탄한 듯 이어지다 갑자기 큰 획을 그으며 하강합니다. 음악으로 옮긴다면 따듯하다 갑자기 휘몰아치는 바람을 연상하게 될 것 같습니다. 분명히 누군가 놀라운 미적 감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구멍은 지렁이가 지나가면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런 목적이 없이 생존 본능으로 먹이를 찾아가며 만들어낸 길입니다.
4. 이 세상이 신이 없이 설명 가능함을 인정하게 된 계기입니다. 인간을 바라보면 이 놀라운 존재가 우연히 만들어질 수 있음을 부정하고 싶게 됩니다. 하지만 설계도를 가지고 인간을 바로 만든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 속에 나온 하나의 작품이 인간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창세 설화의 문자적 해석에 제한받지 않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신이 없이도 설명 가능합니다.
5. 그럼에도 저는 신을 선택했습니다. 신을 인정하는 쪽이나 신을 부정하는 쪽이나 객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6. 첫째, 마커스 보그가 '그 이상 (The More)'라 표현한 이해되지 않는 무언가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기도를 통한 치유를 몇 번 목격했습니다. 플라세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물리적 변화들입니다. 신의 임재 말고 다른 것으로 설명하기 힘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초월의 경험들. 무엇보다 신을 따르려고 할 때 이성적으로 100%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깁니다. 너무나 좋은 "우연"들이 생기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가치 있게 해석이 됩니다. 분석하면 이해되지 않지만 걸어가면 알게 되는 경험들, 그 개인적 체험은 신이 없이 설명 가능한 바깥 세계와는 다른 영역입니다.
6. 둘째, 저는 신을 절대선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이나 이타성의 근원이며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숙의 종착점이라 여깁니다.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기 인식(self-awareness)은 인간의 놀라운 특성이지만 기준이 되는 가치가 없다면 결국 각자 소견대로 행하게 될 뿐입니다. 인간의 탐욕에 브레이크가 되어주는 선에 대한 추구가 없는 세상. 신과의 절대적 단절. 그 세계가 바로 지옥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신을 가정하고 혹은 배제하고 설명 가능하지만, 신(절대선)이 있는 세상이 더 아름답습니다.
7. 셋째, 무엇보다 저는 그가 필요합니다. '신에게 작별'을 고했던 찰즈 템플턴이지만 '나는 예수를 그리워한다'라고 했다죠. 그를 의지할 때 저는 행복하고, 그를 생각할 때 그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그의 사랑을 느끼며, 저는 제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를 따르는 길에서 저는 제가 조금씩 더 '훌륭'해짐을 느낍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죠. 세상에서 사람처럼 변하기 힘든 것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신앙을 통해 변화된 사람은 종종 만납니다. 그 놀라운 변화는 기적이라 불려도 충분합니다.
8. 객관적으로 논증을 할 수 있는 증거는 없습니다. 내 개인적 경험이, 신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가, 그리고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저를 교회 안에 남도록 했습니다. '선택적 관찰' 혹은 '자기 세뇌'로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객관적으로 평할 수 없습니다. 직접 걸어가 보면 그 길은 더 이상 착각이나 망상, 혹은 자기 세뇌가 아니게 됩니다. 그 길은 현실이 됩니다.
9. 무신론자들의 기독교 비판이 수준이 낮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그들의 기독교 이해는 뭐랄까 종교를 책으로 배운 느낌이었습니다. 문자적 이해의 폐해에 대한 지적은 그렇지 않은 신앙을 가진 종교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종교가 저지른 온갖 죄악을 말하지만, 존경할 수 밖에 없는 훌륭한 분들도 많습니다. 인간의 필요 혹은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신이라는 비판은 설명할 수 없는 초월 앞에서는 무력해집니다.
10. 이런 이유들이 기독교에만 적용된다 주장하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의 역사 속에 절대자가 자신을 드러냈고, 인간들은 그 경험을 신앙 고백으로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기록에 그 진리의 파편이 담겨있다 믿습니다. 신앙은 이를 추구하는 과정이지요. (그렇다고 모든 종교가 가치 있다 말하지 않습니다. 사이비는 존재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 되면 나누죠.)
11. 스캇 펙은 <끝나지 않은 여행>에서 영적 성장의 네 단계를 말합니다. 영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 혼돈의 1단계와 규칙과 종교 형식에 집착하는 2단계를 지나 삶의 여러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지만 종교적으로는 회의적인 3단계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4단계에서 현상의 이면을 이해하는 신비의 단계에 이르죠. 내 종교만이 진리라며 다른 종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닌 열린 자세를 가집니다. 교회 가는 것이 취미요 특기였던 그 아이는 신을 부정하면서 3단계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The More를 바라보며 이 세상 바닥에 흐르는 신비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2. 무신론을 디폴트로 삼고 지낸 2년여의 기간 후에 다시 신앙으로 돌아왔지만, 그 신앙은 이전과 같지는 않더군요. 더 배우고 더 고민하며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