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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아르 Sep 24. 2020

프롤로그 #2

쉐아르의 영적 여행

1. 출장을 많이 다니던 때였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 경건하게 신앙서적을 읽었죠. 당시 많이 읽히던 리 스트로벨의 <The Case for Christ/예수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읽는다면 반론을 제시할 내용이 많지만 당시에는 참 좋은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내용과 상관없이 잘 쓴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2. 전직 법조계 기자인 스트로벨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변증 합니다. 믿지 않기 위해 필요한 믿음이 오히려 더 클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제게 전혀 감동이 없었습니다. '예수는 믿을만하다 그런데 뭐... 나와 무슨 상관이 있지? 세상은 아직도 더 나빠지고 내 문제는 아직도 그래로인데?' 당시 무슨 문제 때문에 힘들어했는지 기억은 안 납니다. 뭐 항상 그렇든 삶의 힘듬은 그때도 마찬가지였겠죠.  


3. 그러고 보면 그때까지 신앙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순종적 ^^ 성격 때문인가 봅니다. 이미 개신교라는 집단과 목회자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없었습니다만,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의 유일성, 구원과 부활 이런 부분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신앙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신앙에 대한 변증서를 읽고 오히려 신앙에 대한 질문이 한꺼번에 생겼습니다.


4. 개인적 고통이나 교회의 타락으로 신앙의 위기를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이미 여러 성도와 바람난 목사와 이를 비호하는 교단을 경험했습니다. 졸업한 딸의 등록금을 받아간 목사와 이를 지적한 성도의 출교를 보며 고향 같은 모교회를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오랜 병환과 빚보증으로 인한 압류의 지옥 같은 시간도 지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신앙을 떠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죠. '왜'라고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비행기 안에서 묻어두었던 모든 질문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5. 기독교에서 가르쳐 온 전통적인 신관이 있습니다. 무소부재. 전지전능. 개인의 삶을 세심히 살피시는 인격적 하나님. 세상 속의 악을 볼 때 하나님이 옳다는 믿음은 항상 도전을 받습니다. 전능한 신이라면 왜 악을 없애지 못하는가? 없을 수 있으면서 없애지 않는다면 과연 그 신은 옳은가? 전통적 주제이고 전통적 모범답안이 존재합니다. 그 답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특히 자신을 따르는 순진한 성도들이 삯꾼 목사들에게 농락당하는 걸 두고 보는 신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독교라는 신앙이 더 이상 믿을만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6. 그렇게 시작한 신앙에 대한 회의를 직면하기로 했습니다. 열린 결말. 앞으로 신앙을 떠나도 좋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첫 발자욱은 '신은 없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신앙 안에서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떠나지 않을 이유를 찾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무신론자의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부터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데이비드 밀즈의 <Atheist Universe> 등 대표적인 무신론자들의 종교 비판을 읽었습니다. 빌리 그래험의 동역자였다가 저와 같은 질문으로 무신론자로 돌아선 찰스 템플턴의 <Farewell to my god>도 있네요.


7. 교회를 계속 나가긴 했습니다. 영혼 없는 출석이었죠. 다행히 일 년에 8개월 정도 떠나 있던 기간이라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출장 기간 동안에는 교회를 안 가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런 시간을 2년 정도 보냈습니다.


8.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상에 왜 고통이 존재하는가. 악을 그대로 두는 신을 섬길 이유가 있는가. 찬양받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는데, 그러면 인간이 로봇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기적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창조 기사를 부정하는 진화론의 증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부활은 실재적 사건인가.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독선에서 생기는 수많은 폐혜는. 성경이 진리라면 이를 배우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은 왜 저 모양인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답이 있고 어찌 보면 기초적인 질문들이지만 당시에는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30년 동안 머물렀던 보수주의라는 우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9. 세상은 신이 없이도 훌륭히 설명 가능하다는 결론은 오래지 않아 내렸습니다. 물론 신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는 설명도 가능합니다. 어느 쪽도 결정적 증거는 없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더군요.


10. 그리고 선택을 했습니다. 그 선택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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